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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나 Oct 19. 2020

#2 첫 촬영, 코피가 났다.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

3월의 마지막 일요일, 드디어 첫 브이로그 촬영을 하기로 했다.


무엇을 찍을지, 어떻게 찍는지, 전혀 경험이 없던 우리는 나름대로 역할 분담을 했다. 우선 나는 기획자 역할을 하기로 했다. 대략적인 스토리라인을 잡고, 필요한 정보가 있다면 검색도 하고, 사야 할 게 있다면 구매도 하는 역할. 영상의 자막을 쓰는 것도 나의 몫이었다. 남편은 촬영과 편집, 그리고 영자막을 맡기로 했다.




첫 영상은 주말에 홈카페 브런치를 만들어 먹는 일상을 찍기로 했다. 나는 메뉴를 정하고, 레시피를 찾아보고 대략적인 자막을 먼저 썼다. 그러면 남편은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읽어 내려가며 어떤 장면이 있으면 좋을지 촬영 계획을 세웠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남편의 의견을 반영해서 내용을 조금씩 수정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원래는 집에서 요리를 하는 장면만 찍으려고 했는데, 이미지가 단조로울 것 같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아침에 빵을 사러 나가는 것부터 찍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첫 촬영.


오전 11시쯤 빵을 사러 집을 나섰다. 하지만 처음부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장면을 찍는데 어떤 구도가 좋은지, 소리는 적당하게 나는지, 어색하지는 않은지, 이것저것 생각하며 찍고 또 찍다 보니 평소라면 10초가 걸릴 일이 10분이나 걸렸다. 밖으로 나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중간중간 들어갈 B컷이 필요하다며 매 순간을 매우 세심하게 촬영하다 보니 단지 내에 있는 빵집에 가는데 생각보다 아주 많이, 아주 많이 오래 걸렸다. 처음이라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흐르는 시간 앞에서 조급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후 1시, 겨우 빵을 사들고 집에 도착했다. 드디어 촬영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촬영을 하려고 보니 우리 집 주방은 조리 공간이 좁아서 촬영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정된 각도도 문제였지만, 구석 쪽 공간이라 빛이 부족한 것도 이슈였다. 잠깐의 고민 후, 우리는 거실에 있는 식탁을 가져다 조리 테이블로 활용하기로 했다. 무광의 하얀 상판이 촬영하기엔 딱이었다. 어렵사리 요리할 준비를 하고 시계를 보니 어느새 2시. 이제 목표는 해지기 전에 이 샌드위치를 먹는 것이 되었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어서 배도 고프고 상당히 지친 내 머릿속에는 빨리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마음 같아서는 효율적으로 빠르게 요리를 해서 먹고 싶었다. 하지만 촬영 담당인 남편은 나중에 편집할 때 어떤 영상이 필요할지 모른다며 어김없이 꿋꿋하게 매 순간을 정성껏 촬영했다. 재료를 꺼내는 장면. 재료를 써는 장면. 그릇에 옮겨 담는 장면. 클로즈업. 와이드 앵글. 심지어 촬영하는 순간에는 대화도 할 수 없었다. "쉿! 조용히." 너무 힘들어서 요리가 재미 없어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지친 가운데 완성된 가지 샌드위치, 감자수프, 그리고 연근 구이. 시계를 보니 어느덧 5시였다.


아침부터 쫄쫄 굶은 상태였던 나는 지칠 대로 지쳐서 일단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부엌으로 옮겼던 식탁을 다시 옮길 정신도 힘도 없어서 그냥 소파 테이블에 널브러졌다. 이 와중에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맛있다.




다음 날, 평소처럼 일어나서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양치를 하려고 하는데 입안 가득 피가 고여 있었다. 엄청난 공포가 밀려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나는 황급히 문을 열고 남편을 불러서, 회사 말고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며 걱정 가득한 얼굴로 얘기를 했다. 남편도 많이 당황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코에서 코피가 주르륵 흘렀다. 정말 큰일이 난 것 같단 생각에 내 눈에는 눈물이 고이려고 하는데, 남편의 표정은 되려 괜찮아졌다. 코에도 피가 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잘 때 코피가 난 게 목 뒤로 넘어간 것 같다며, 괜찮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남편의 말을 듣고 검색해보니, 나 같은 분들이 그래도 꽤 있는 모양이었다. 다행이라며 마음을 쓸어내리며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 어제의 촬영이 정말 피곤했나 보다.


머릿속으로 상상만 할 때는 몰랐던 사실들을 실천 하루 만에 알게 되었다. 직장인의 2대 허언이 "퇴사하고", "유튜브나 할까?"라던데, 실제로는 유튜버가 되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앞으로는 어디 가서 저런 소리는 절대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유튜버가 되는 것은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체력과 부지런함, 꾸준함, 그리고 섬세함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만큼 힘들고 지쳤던 첫 촬영. 이제 겨우 첫 발을 떼었을 뿐이지만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는 설레는 느낌이 참 좋다. 오늘의 소중한 감정을 오래 기억하며, 앞으로도 우리의 도전이 우리 두 사람에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주길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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