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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을 나와 저녁을 먹기 위해 폴란드 식당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메뉴를 두 가지 시켰다. 아무리 봐도 우리나라의 만두와 갈비찜과 닮아있었다. 재료나 레시피가 달 라서 맛은 비슷하지 않았지만 사람 먹고사는 모습은 인종과 국적을 불문하고 비슷한 구석이 많다. 식사에 곁들인 와인이 아쉬운 느낌이었는데 지수가 한 잔 더 하자며 재즈클럽에 가자고 했다. 강 건너에 있어 걸어서 십 여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다리를 건너다 강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에 몸이 휘청거렸다. 그때 지수가 나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보기보다 힘도 세고 키도 더 커 보이는 것 같았다. 갑자기 얼굴이 후끈거렸다.
메인 공연시간인지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다행히도 무대 앞에 테이블 하나가 남아있었다. 지수는 버번을 나는 미도리 샤워를 주문하였다. 우리 테이블 담당 서버는 민머리에 안 경을 쓴 흑인이었다. 영화 ‘간디’의 벤 킹슬리와 쏙 빼닮은 얼굴이었다. 생김새와 어울리지 않게 하이톤의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재즈 공연은 그럭저럭 무난했는데 신기했던 건 드러머가 눈을 감고도 다른 악기들에 맞춰 귀신같이 연주를 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눈을 뜨고 연주하면 실수를 할 것만 같았다.
두 세곡 연주가 끝나고 브레이크 타임이 찾아왔다. 오늘 공연의 리더로 보이는 트럼펫 연주 자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누군가에게 손짓을 했다. 그의 손짓을 따라간 끝엔 바로 ‘벤 킹슬리’가 있었다. 테이블 이곳저곳에서 손님들의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서버는 수줍은 듯 손사레를 쳤다. 박수소리가 클럽 안을 가득 채우자 그는 마지못한 표정을 짓고는 무대 위로 올라왔다. 서버는 스탠드 마이크 앞에 서더니 헛기침을 한번 했다. 그 다음 순간 서빙을 하던 때와 전혀 다른 눈빛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재즈바를 가득 채웠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놀라 소리가 들렸다. 감미로운 그의 노랫소리에 드럼과 베이스가 반주를 깔아주었다. 중간 중간 터져 나오는 애절한 고음에 그가 평범한 서버가 아니라는 것 증명해 주었다. 노래가 끝나자 그는 다시 처음보았던 모습으로 돌아와 새로 들어온 손님을 맞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수가 로비를 구경하고 싶다며 호텔까지 따라왔다.
“고급 호텔 로비는 이런 모습이군요. 제가 묵는 저렴한 호스텔이랑 비교가 안 되네요.”
“남편이 예약 해 준거에요. 사실 난 이곳보다 지수씨가 묵는 호스텔을 더 가보고 싶은데요.”
“막상 와보시면 남편 분한테 고마워할걸요. 밤마다 쥐들이 경주하는 소리가 장난아니거든요.”
“정말이요?”
“당연히 농담이죠. 제가 여행을 많이 해본 건 아니지만 이만큼 괜찮은 호스텔은 찾아보기 힘들거예요. 직원들도 친절하고 음식도 나쁘지 않죠. 하지만 이런 고급 호텔에 비할 바는 못 되죠.”
“지수씨 혹시 일요일 아침에 뭐해요?”
“일요일이라... 저녁에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니까 짐정리를 하고 있을 거 같은데요.”
“혹시 시간되면 세례식에 오지 않을래요?”
“그 친한 친구 분 아기 세례식을요? 제가 가도 괜찮나요?”
“성당 미사는 누가 와도 상관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