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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성당에서 세례식 리허설을 진행하였다. 다니엘의 부모님도 오셨는데 한국 결혼식 때 뵌 적이 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성당에 나가지 않은지 오래되었는데 신기하게도 미사 진행에 따라 몸이 먼저 반응했다. 리허설을 도와준 신부님은 다니엘의 부모님과 막역한 사이인 것 같았다.
“아버님이 성당 개인 기부자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셔.”
민지가 내가 궁금해 할 것 같은지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다. 다니엘의 아버지는 대형로펌의 대표변호사이고 어머니는 대학병원 내과 교수라고 했다. 민지는 누가 봐도 시카고 상류층 집안으로 시집을 잘 갔다.
“뭐라고? 그 남자애를 불렀다고?”
성당의 고요함을 깨뜨리는 민지의 목소리에 다니엘의 품속에서 자고 있던 주리만 빼고 모두들 우리를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놀래? 원래 신자가 아니어도 미사나 세례식에 참석할 수 있잖아.”
“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그 남자애랑 자기라도 한 거야?”
“말이 좀 심한 거 아냐?”
“상진씨 문제로 애가 안 생기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야. 그래서 다른 남자한테 끌릴 수도 있다는 거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우리 주리의 대모인 네가 눈맞은 남자애를 세례식에 데려 오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다니엘이 심각해진 분위기를 알아차리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자신의 품안에 있던 주리를 민지에게 맡기고 커피를 사오겠다며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다니엘은 성당 건너편 코너에 오래된 카페로 나를 데려갔다. 종업원이 다니엘을 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다니엘이 나를 민지의 ‘베스트프렌드’라고 소개해주자 종업원은 나를 보고 주리의 대모가 드디어 나타났다며 민지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민지가 자랑한 것 보다 더 미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매장 구석에 서서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는데 다니엘이 나의 눈치를 보다가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주리가 이 성당에서 세례를 받기로 결정된 날부터 민지가 예민해지기 시작했어요. 최근에는 잠도 제대로 못자더라고요. 그동안 미국에 와서 이 도시와 우리가족에 적응하는데 정말 고생이 많았을 거예요. 게다가 주리까지 태어나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쉴 틈이 없었어요. 한국이었으면 좀 더 편했을 텐데. 하지만 민지는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엄청 노력했지만 저는 다 알 수 있었어요. 사실 이번 세례식은 어쩌면 주리가 아니라 민지에게 정말 중요한 행사에요. 우리 가족 그리고 이 도시의 진정한 일원이 될 수 있는지 민지 가 자신을 시험하는 무대인거죠.”
종업원이 다니엘의 이름을 불렀다. 우리는 커피를 들고 카페를 빠져 나왔다. 나는 다니엘에게 호텔로 먼저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는 알겠다는 눈빛을 보내며 내게 커피를 내밀었다.
“이거 가져가. 추워.”
다니엘의 서투른 한국말이 귀여웠다. 민지가 왜 이렇게 춥고 바람이 많이 부는 이역만리까지 오게 되었는지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호숫가 산책길로 접어들었다. 왜 자꾸 바다 같은 투박한 호수로 오게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성당에서 민지가 했던 말을 곱씹어 보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하지만 굳이 반박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일렁이는 물결이 바다인지 호수인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