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어라운드 #쓰다 #만남 #연애 #사랑
호기심. 첨엔 그랬다. 너무나 달라 묘하게 끌리는 매력.
"인욱, 연말인데 뭐해? 모임 겸 소개팅 할래?"
10년지기 친구가 2008년 11월 겨울, 너무도 불안하고 우울했던 그때, 내게 말을 건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정규직을 찾지 못하고 언론사 임시직, 알바를 하던 불안한 청춘. 연애도 쓰디썼다. 간단히 말하면 좋아하던 선배를 그 비밀을 유일하게 공유하던 후배에게 빼앗겼던. 아니 둘이 사랑에 빠져 내가 비참하던 춥고 시린 겨울. 따뜻한 입김이었다.
후일담이지만, 그때에 난 꽤나 사랑에 아팠다. 울면서 회사 근처 조계사에 가서 탑을 뱅뱅 돌며 이 슬픔에서 빠져나오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믿지도 않는 부처님에게 떼를 쓰기도 했다. 술에 취하고, 먼 기억 속에 처박아두고 싶던 아리한 삶에 변화를 빌던 찌질한 나날들.
"넘 부담 갖지마. 그냥 내 남자친구 친군데, 그쪽도 헤어진 지 얼마 안됐어. 이선균 느낌있고 재밌는 오빠야. 맘에 안들면 술이나 한잔 한다 생각하면 되지 뭐."
"그랴그랴. 에잇. 맘에 안들면 술이나 진탕 마시자."
그렇게 흔하고 흔한 만남. 그 중에 하나였다. 그러니 근사한 장소도 필요없었다. 동네 둥그런 드럼통 테이블에 온돌방이 있는 술집. 김치전에 쏘맥. 칼칼한 조개탕이 맛난 허름한 집이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20대 중후반 남녀가 만나는 자리니, 나름 다들 치장은 한껏 했을 터였다. 가는 버스안에서 거울을 보고, 또 봤다. 왠지 모르는 설렘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나올까.'
기대를 안한다 했지만 솔직히 내심 사랑받고 싶었다. 짝사랑만 주로 하는 내가, 말이다.
오호. 근데 이게 뭔가. 남자는 괜찮은데, 이선균은 아니었다. 이목구비가 몰린게 비슷한거지. 그리고 난감한게 있었다. 말.랐.다. 난 덩치가 있어서, 글렀다. 다시 난 초심으로 돌아갔다. '술이나 진탕 마시자.'
그랬다. 내숭 제로. 좋아하는 사람한텐 긴장해서 하지도 못하는 말들을 쏟아냈다. 그쪽도 나를 썩 맘에 들어하는 것 같진 않았다. 긴장 보다는 수다가 있는 자리. 소개팅이 아닌 술자리가 이어졌다. 맥주와 소주병이 쌓이고, 안주로 배를 두둑히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