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꿈을 찾아 나서다...
내가 경기도민이 된 건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결혼을 하면서 회사와 가까운 곳에 신혼집을 구하면서부터였다. 남편과 나는 회사의 첫 사내커플 1호로 남들의 질투와 부러움을 사며, 비바람이 몰아치는 장마가 한창인 7월에 사장님의 주례와 회사 동료들의 축가 속에서 정말 잊지 못할 결혼식을 올리게 된 이유였다. 그렇게 나는 아줌마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다. 결혼한 지 1년 만에 예쁜 아이를 얻었지만, 그 아이가 돌이 채 되기도 전에 나는 암 선고를 받았고, 의사의 말에 따르면 그 당시 내 상태는 정말 심각했다. 전이로 인해 수술실에 들어가 봐야 상태를 알 수 있고, 수술로는 다 제거가 되지 않아 최소 6차례나 되는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는 말에, 나는 눈앞이 깜깜해지고 머릿속이 하얗게 텅 비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태어나 첫 생일을 앞둔 딸아이의,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돌잔치를 챙겨야 했고,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며 한 발짝 한 발짝 걷는 아이를 보면서 끔찍한 항암치료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아줌마의 힘으로 기적적으로 일어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프기 전에 잘나가던 워킹 맘이었던 나조차도, 다시 회사로 복귀하기에는 육아휴직과 병가로 보낸 그동안의 빈자리가 너무나 컸다. 처음엔 열심히 하면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내 체력은 예전 같지 않았고, 업무 상 잦은 야근과 스트레스는 다시 나에게 독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출근 길에 문득 잊고 있었던 사실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암 선고를 받고 수술대 위에 누웠을 때, 내가 다시 살 아 날 수 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내 인생을 살아보리라 마음먹었던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나는 올해 3월, 7년 동안 근무했던 나의 첫 직장을 그만 두었다. 그리고 그 동안 해보고 싶었지만, 못했던 것들에 대한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하나하나 해보기 시작했다. 너무나 즐거웠다. 내 인생을 통틀어 그렇게 달콤한 휴식은 처음 맛보는 듯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친정 부모님의 이사를 돕다가 초등학교 때 일기장을 발견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부터 중학교 때까지 쓴 일기로 어림잡아 50권은 넘는 듯 했다.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을 때마다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너무나 재미있어서 낄낄거리며 밤을 새서 읽을 정도였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지?
대학교 졸업이후 까맣게 잊고 살았던 나의 꿈... 바로 작가였다. 초등학교 때는 글짓기로 중학교 때는 독후감으로 상도 꽤나 많이 받아, 고등학교 때는 나의 이야기로 소설을 써 보는 것이 가장 큰 꿈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고, 평소에 자주 읽던 좋은 생각의 공모전에 내 글을 적어 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좋은 생각 제 10회 생활문예 대상에서 입선을 하게 되었다. 너무나 기뻤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내 꿈을 향해 한 발짝 내딛는 계기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용기를 얻어 전국 주부수필 공모전에도 도전하였고, 가작에 당선되어 시상식에도 참석하는 행운을 얻었다. 내 글이 수필집에 실려 많은 사람들에 읽힐 수 있다니, 정말이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리고 수필로 인한 수상경력으로 인해 우연히 받게 된 경력단절여성들을 위한 동영상 제작 강의가 나에게 또 다른 꿈을 하나를 더 갖게 만드는 작은 불씨가 되었다. 그것은 바로 UCC 제작이라는... 나에게는 엄청난 새로운 도전이었다. 짧게는 1분 길게는 3분이라는 시간 속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간단하게 요약하며 사진과 함께 만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팀을 짜서 공모전에 나오는 다재다능한 대학생들을 상대로 나와 같은 아줌마가 경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꾸준히 도전한 결과, 2번의 공모전 낙방을 바탕으로 마지막 3번째 도전한 UCC 공모전에서 드디어 입선을 하게 되었다. 남들이 볼 때는 입선이라고 하면 별거 아닐지 모르지만, 나는 너무나 기뻐서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 얼마나 기쁘고 소중한지, 아직 상금은 쓰지도 못하고 고이 모셔두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회사를 그만두기 전 나의 생활은 항상 무미건조했다. 그저 상사가 시키는 일에 열심히 매달려서 잘 하면 그냥 넘어가는 거고, 잘 하지 못하면 쏟아지는 질타 속에서 나 스스로에게 너무나 가혹하게 채찍질을 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난 이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암 선고를 받고 난 이후의 지금... 내 인생에 꿈을 찾았고, 하루하루가 너무나 감사하고 기쁘다. 그래서인지 어떤 사람을 만나던지, 모임에 나가면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나에게서 해피 바이러스를 전해 받게 된다고 한다. 얼마 전 우연히 만나게 된 고등학교 동창에게서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예전의 내 모습과는 너무나 달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이다. 예전의 나는 욕심이 없었다. 꿈도 없었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아졌다. 지난달에 인연을 맺은 목도리 봉사활동을 통해 알게 된 사회적 기업들을 방문하며 또 다른 꿈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꿈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평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꿈을 못 찾는 이도 분명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이 바뀌는 순간, 내 인생이 바뀌고, 바뀐 인생을 통해 더 많은 경험과 좋은 인연들로 내 꿈을 찾을 수 있는 길이 한 발짝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경기도시공사 제 9회 수필공모전_입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