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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사라 Sarah LYU Nov 25. 2022

영어실력을 뛰어넘는 아버지의 달걀구입법

도저히 영어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한 남자의 생존방식

6.25가 발발하기 전이었다. ‘웅이’라 불리게 될 사내가 태어났다. 그는 평생을 항만 공무원으로 착실하게, 어느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조용히 일하다가 조용히 조기 은퇴했다.


그의 인생에 있어 그다지 큰 변화나 심각한 문제는 없었다. 단지 4대 독자가 딸만 내리 넷을 낳은 것과 평생 허약했다는 점은 홀어머니의 마음을 심히 안타깝게 했다.


그 네 딸들 중 장녀였던 나는 항상 ‘웅이’가 회사일로 바쁘거나, 아니면 거실에서 TV를 마주하고 영어책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만을 보며 자랐다.


TV를 켜놓은 채 영어공부를 하던 웅이는, 옆에서 누가 불러도 전혀 미동조차 없었다. TV 시청에 몰두한 건지 공부에 몰두한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끝내주는 집중력만큼은 높이 사고 싶다. 주변 사람들의 속이 터지거나 말거나 그 집중력은 일생을 통틀어 한결같았다.


결혼하기 전엔 장편소설도 썼던 그가 결혼을 하고 딸린 식구가 늘자,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고자 영어를 붙잡았댔다. 영어라는 괴물은 승진 자격 요건에 꼭 포함되었던 필수 과목이었기 때문이다.


웅이 옆에서 영어책을 만지작거리며 놀았던 나는 카셋 테이프도 그와 함께 들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누런색 재생 용지로 된 표지에 <English 900>이라고 적힌 제목이. 무슨 <900 돈가스>도 아니고, 왜 900이란 숫자가 영어책 표지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900개의 기본문이라고? 그러니까, 왜 1천개가 아니라 9백개냐는거지! 그것도 '아홉수'!!)


사진출처 : '보물섬'님의 네이버 블로그 (하단 링크 참조)


그의 목적이 있는 영어공부는 그가 아닌, 내가 영어를 자연스럽게 말하도록 만들었다. 말하자면, 웅이의 영어공부에 덩달아 얻어걸린 최대 수혜자는 나였던 거다.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살게 되었던 초반이었다. 그 시기는 내가 웅이의 오랜 영어 공부의 허상을 마주하는 시기였다.


일요일이 되었다. 우리는 영국인 목사님이 계시는 ‘International Chuch’에 가기로 했다. 예배를 마친 후, 목사님이 한 사람 한 사람 악수를 청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웅이에게도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Hello”(안녕하세요)

“…….”

“My name is Mark.”(저는 마크입니다.)

“…….”

“I am the pastor of this church.”(이 교회 목사예요.)

“…….”

“You are probably new here.”(처음 오셨나 봐요.)

“…….”

“Nice to meet you!”(만나서 반갑습니다.)

“…….”


웅이 옆에 나란히 서서 목사님 얼굴만 바라보고 있던 나는 아무 대답이 없는 웅이를 쿡 찌르며 말했다.

“아빠! 뭐해? 목사님이 이야기하고 있잖아!”


그리고 고개를 돌려 웅이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까무러치고 말았다. 그의 얼굴은 영락없는 호인의 상으로, 싱글벙글 미소가 걸려있었다. 입은 굳게 다문 채…….


아니, 웅이는 왜 입을 그렇게 걸어 잠그고 있었을까?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했던 영어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거냐고?


집에 돌아와 물으니, “Hello”라는 말은 했단다. 그러나 내 귀엔 안 들렸었다. 아마 마음속으로만 가열차게 외친 게 아닐까 하는 심증만 있다.


그 뒤로도 영어를 말해야 하는 상황은 무척 많았으나, 웅이는 단 한 번도 영어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주방에서 요리를 하던 엄마가 근처 아랍인 가게에 가서 계란을 사 오라는 미션을 내렸다. 가족들이 눈치만 보고 있는데, 갑자기 웅이가 나섰다.

“내가 다녀오마.”


한참을 기다렸다.

10분이 지났다.

20분이 지났다.

30분이 되었을 무렵에야 웅이는 한 손에 계란을 들고 나타났다. 좀 오래 결었지만 미션을 무사히 완수한 것이다.


“아빠, 계란 사 오셨네요?!”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내가 불어는 못하지만 영어는 웬만큼 하잖냐!!”


‘앗, 정말?’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였다.


웅이가 계란을 사 왔던 그 아랍 가게에 이번엔 내가 밀가루를 사러 갔다. 키가 작고 다부지게 생긴 주인이 반갑게 인사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그분 잘 계시냐고. 난 살짝 의아한 마음으로 누굴 말하는 건지 물었고, 주인은 갑자기 양손을 옆으로 '퍼덕 퍼덕' 하며 이렇게 소리질렀다.


“꼬~끼~오~~¹”






각주 1 <좀 더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신 분을 위해>

나의 부친이신 ‘웅이’님은 아랍 가게 주인과 불어나 영어로 소통하지 않았다. 계란을 사기 위해 우리의 웅이는 주인 앞에서 그의 양손을 퍼덕이며, 닭의 소리를 흉내 낸 한국어 의성어인 “꼬끼오”라고 외쳤던 것이다.

불어나 영어에서 닭 울음소리가 “꼬끼오”가 아님에도, 그 주인은 찰떡같이 알아듣고 계란을 건넸던 것!


사진출처 : '보물섬'님의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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