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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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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Feb 06. 2019

여덟. 추어탕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인삼으로 유명한 곳. 내가 태어나고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그곳에는 재래시장도 있었고, 5일장도 섰었다. 할머니들이, 아줌마들이 빨간 대야를 앞에 놓고 땅바닥에 주저앉아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 대야 안에는 직접 잡았다고 자랑하던 미꾸라지들이 가득이었고, 그것들은 물을 튀겨가며 맹렬히 움직였다.


그 시절 찬바람 불고, 가족들 체력이 떨어지는 계절이 돌아오면 엄마는 미꾸라지를 사 오셨다. 어린 눈에 무채색의 미끄덩거리는 그것은 전혀 맛있어 보이지 않았다. 녀석은 어찌나 힘이 센지 소쿠리에 담아놓으면 튀어올라 탈출을 일삼곤 하였다. 그걸 보던 아빠는 항상 말했다. 저렇게 힘이 세니까 추어탕 끓여먹으면 힘이 불끈 솟을 거라고. 아마도 미꾸라지를 보고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 아이들에게 모양은 저래도 좋은 음식이 될거라고 알려주시고 싶으셨던 걸까?


  나는 읍에서 자랐고 신랑 너는 면도 아닌 리에서 자랐으니, 더 시골 놈이라 했었는데.  나보다 더 시골 촌놈인 우리 신랑은 어릴 적 집 앞 개울에 들어가 그렇게도 미꾸라지를 잡으면 놀았었단다. 잡은 미꾸라지를 호기롭게 장에 가지고 나가 팔기도 했었단다. 신랑에게 미꾸라지는 놀잇감, 나에게 미꾸라지는 먹잇감. 미꾸라지에 대한 기억이 각자 이리도 다르다.


  이 곳에서 먹고 싶은데, 절대 먹을 수 없는 음식 중 하나를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추어탕을 꼽겠다. 일단 추어탕의 주재료인 미꾸라지를 구할 수가 없다. 아마 미국인들은 그런 식재료가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 기억 속의 추어탕은 항상 집에서 끓이는 음식이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추어탕은 식당에 가서 먹는 음식이었다. 한국에서조차 도시에 살면 추어탕 끓이기 위해 미꾸라지를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그것을 깨닫고 나서 기억을 더듬어보니 과연 그러했다. E마트나 홈플러스 같은 대형 마트에서 미꾸라지 파는 것을 본 적이 있던가? 오늘은 그런 추어탕을  한국으로부터 만 마일 떨어져 있는 집에서 끓여 먹었다. 이 귀한 음식을 혼자 먹기 아까워 한 솥을 끓여 지인들과 나눠 먹었다. 식사 시간 내내 이 귀한 추어탕이 어떻게 오늘의 식탁에 올라오게 되었는지가 화제가 되었다.


  "이 추어탕은 제가 이번에 한국 출장 가서 가져온 겁니다. 하... 사연 많은 추어탕이에요."

  

신랑은 매번 저렇게 시작을 했다. 사연 많은 추어탕. 신랑의 이번 출장은 몇 달 전부터 잡혀있던 일정이었다. 한국에 계신 친정부모님은 그래 뭐가 제일 먹고 싶냐며, 황서방 편에 뭘 싸서 보내주면 되겠냐고 물으셨다. 그 날 저녁 날이 쌀쌀해 오래간만에 추어탕을 끓여드셨다던 부모님 말씀에 나도 모르게 입맛을 쩝쩝 다셨다.


"오, 추어탕 정말 맛있었겠다. 나도 추어탕 먹고 싶다."


한번 생각하니 먹고 싶은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신랑이 출장 가기 전까지 부모님과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추어탕 노래를 불렀다. 엄마는 미꾸라지를 삶아서 꽝꽝 얼려놓으시겠다 하셨다. 그걸 보낼 테니 배 터지게 끓여 먹으라 하셨다. 아빠랑 엄마는 실한 미꾸라지 2kg을 사다 삶으셨다. 신랑이 한국에 도착하기 2주 전부터 냉동고에 넣어놓고는 애지중지 하셨다. 신랑이 출장 가는 날, 나는 신신당부를 하였다. 미꾸라지 삶은 거 잘 넣어오라고. 내게 필요한 건 오직 첫째도 추어탕, 둘째도 추어탕이라며.


  신랑이 수원에서 일정을 마치고 친정이 있는 대전에 내려갔다. 빡빡한 일정으로 출장을 다니는 신랑은 다음날 다시 서울로 떠나야 했다. 엄마는 신랑이 서울로 떠나는 날 아침, 이게 추어탕이라며 아이스 가방에 아이스팩까지 더해 넣어주셨다. 그리고 신랑이 서울 가는 버스를 타기 20분 전 전화벨이 울렸다고 했다. 장인은 사위에게 급박하게 물었다. 버스 탔냐고, 그거 타면 안 된다고, 다음 버스 타라고, 추어탕이 안 실렸다고.


엄마는 사위를 떠나보낸 후 부엌을 정리하다, 냉동고를 열고 기겁을 하셨다 했다. 분명 사위 가방에 추어탕을 넣었는데, 냉동고에 추어탕이 그대로 들어앉아 있는 모습이라니. 엄마는 거의 기절할 뻔하여 손까지 벌벌 떨며 아빠에게 전화를 거셨다 하셨다. 오랜만에 서울에서 친구들과 약속이 잡혀있던 신랑은 황망하였다. 주말이어서 다음 버스표를 쉽게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딸 먹고 싶다던 그 귀한 추어탕거리를 넣지 못한 장인, 장모는 털끝만큼도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무조건 돌아와서 미꾸라지를 가방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까스로 매표소 앞에서 다음 버스표를 가진 아줌마와 표를 바꾸고 나서 신랑은 나의 친정집으로 되돌아갔다. 거듭 확인한 추어탕을  가방에 고이 모셔넣고 나서야 신랑은 서울로 떠날 수 있었다. 물론, 신랑은 친구들과의 약속 시간에 2시간 이상은 늦었다. 아마 10년은 우려먹을 이야깃거리이다.


 그렇게 가방에 넣어온 추어탕 이건만, 이번엔 미국에 도착해서가 문제였다. 댈러스 거쳐 세인루이스까지 도착하는 비행기 편이었다. 세인루이스에 도착한 신랑은 댈러스에서 가방이 실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사고가 처음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때 같으면 배송해달라고 하고 돌아오면 그만이지만, 그 가방 안에 미꾸라지가 들어있단 말이다. 배송을 맡기면 적어도 내일 오후는 돼야 도착할 텐데, 그때까지 추어탕이 잘 견뎌줄지 의문이었다. 하는 수 없이 신랑은 다음 비행기로 가방이 도착할 때까지 공항에서 2시간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친정집을 떠난 미꾸라지가 36시간 만에 내게 도착했다.


 다행히 추어탕은 녹지 않고 적당히 얼어 있는 상태였다. 사실 끓여주는 것만 먹어봤지, 직접 끓여본 적은 없는 추어탕인지라 미꾸라지가 얼마나 들어가는지 감이 없었다. 엄마, 아빠가 엄청 많은 양이라 했으니, 그 말을 생각하며 적당히 소분해서 포장하고 신줏단지 모시듯 냉동고에 모셔놨다. 다음 날 참을 수가 없어 추어탕을 끓이기로 하였다. 신랑이 돌아오는 길에 한인마트에 들러 부추며 깻잎 장을 봐다 준 덕에 바로 추어탕을 맛볼 수 있었다.


추어탕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자면 대강 이러하다. 물론 처음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은 산 미꾸라지 손질부터 해야 한다. 산 미꾸라지에 소금을 쳐서 뚜껑을 덮어둔다. 이것으로 해감이 된다고 한다. 미꾸라지가 힘을 잃으면 소쿠리에 담아 깨끗이 헹궈 냄비에 물을 붓고 약한 불에서 충분히 고아낸다. 아마도 엄마가 제일 어려운 이 과정을 하셨을 것이다. 나는 그다음 과정부터 하기 시작했는데 먼저 물을 넣어가며 너무 곱지 않은 체에 삶은 미꾸라지를 으깨가며 걸러낸다. 둘째, 적당한 양의 물을 넣고 된장, 마늘, 생강가루를 넣어 끓인다. 셋째,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삶은 시래기 또는 우거지, 토란대, 고사리 등을 넣어 한소끔 끓여낸다. 고춧가루를 더해준다. 넷째, 충분히 끓은 추어탕에 부추, 깻잎을 많이 많이 넣고, 파와 고추도 넣어 더 끓여준다. 마지막으로 들깨가루와 소엽 가루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해준다. 움푹한 그릇에 넉넉히 담아내고 그 위에 부추를 썰어 얹어주니 그럴싸해 보인다.


 민물에 사는 것을 넣어 끓이는 탕에 꼭 빠져서는 안 될 것이 소엽 가루이다. 빨간 깻잎, 어릴 적부터 소엽이라고 듣고 자란 이것의 존재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차조기라고 불리는 이것은 중국이 원산지라고 하기 무색할 만큼 한국에도 지천으로 널려있다. 미국 땅에 사는 나도 올여름 밭에 심어 수확했다. 소엽은 거칠고 향이 너무 강해 쌈 싸 먹기 적당치 않으므로 뜯어다 말리고 갈아 가루를 만들어 두었다. 대개 추어탕 식당에서는 초핏가루를 넣어 맛을 낸다고 하던데, 식당에서 추어탕을 거의 먹어본 적 없는 나는 그 맛이 어떤지 잘 모르겠다. 그저 내 입에는 매운탕이든, 추어탕이든 이 소엽 가루를 넣어야 그 맛이 나는 것이다. 늘 집에서 먹던 기억 속의 그 맛. 정겹고 따뜻한 맛. 온몸이 데워지는 맛. 추어탕을 먹다 보니 뜨거워진 기운이 주체하지 못하고 밖으로 흘러내린다. 땀인지, 눈물인지, 콧물인지 알 수 없는 그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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