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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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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Feb 01. 2019

일곱. 김밥

  한국에 살 때 김밥은 집 앞 분식점에서 사 먹는 음식이었다.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춰버린 김밥OO에 가면 단 돈 천 원으로 한 줄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말아주는 김밥은 나에게 영양학적으로나, 가성비 면에서나 꽤 괜찮은 음식이었다. 김밥에 대한 기억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래 소풍날이다. 소풍날이면 어김없이 엄마는 김밥을 싸주셨다. 엄마가 싸주는 김밥의 맛은 한해도 거르지 않고 단연 으뜸이었다. 소풍날 아침의 엄마는 항상 바빴다. 전날 재료 준비를 대충 해 두어도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나셔야 했다.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는 항상 7가지 이상은 됐으므로 김밥 싸는 식탁 위는 발 디딜 틈 없이 만석이었다. 내 기억 속의 김밥은 재료를 준비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음식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사 먹는 음식이 되었다. 결혼하고도 단출한 두 식구일 때는 만들어 먹는 것보다 사 먹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가끔 만들어 먹을라치면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맛에 실망했었다. 엄마가 만들던 그 김밥 맛은 도대체 어떻게 나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엄마가 만들던 것처럼 빠짐없이 속을 다 넣었는데도 싱겁거나, 재료들이 겉도는 실망스러운 맛이었다. 


  결혼한 지 10년, 전업주부로 산 지 8년, 아이 셋 엄마인 지금의 나는 해 먹을게 마땅치 않은 날, 간단하게 김밥을 만다. 이 얼마나 간극이 큰 변화인가. 간단하게 김밥을 말다니. 그런데 나에게도 그런 변화는 오고야 말았다. 지금에 와서는 김밥처럼 세상 간편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는 것이다. 김밥만 말면 더 간단하게 계란국 끓여 김치 내어 먹으면 되니까. 다섯 식구가 먹다 보니 재료값도 적게 드는 메뉴가 되었다. 


  우리 집 김밥은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로 때마다 속이 다르게 구성된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단무지, 계란, 당근, 우엉조림, 시금치, 햄, 맛살 정도를 넣고 만든다. 더 넣고 싶으면 소고기 볶음, 김치볶음, 오뎅볶음, 깻잎, 마요참치, 돈가스 등을 더한다. 단무지와 우엉조림, 햄, 맛살은 마트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 놓기만 하면 되니까 이건 일도 아니다. 입이 작은 막내를 위해 재료 중 두세 개씩은 더 얇게 자르는 수고를 더해주기만 하면 그만이다. 김밥을 싸겠다 마음을 먹으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시금치를 깨끗이 닦아내는 일이다. 그리고는 시금치 데칠 물을 올린다. 물이 끓는 동안 당근을 채 썰어 볶고, 계란을 풀어 지단을 만들어낸다. 그리고는 끓는 물에 시금치를 데쳐내 무쳐낸다. 당근과 계란이 지나갔던 프라이팬에 소고기와 오뎅, 김치를 순서대로 볶아낸다. 이 순차적인 과정들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어 고민하지 않아도 손이 움직이는 것이다. 요즘은 재료 준비하는데 30분 내외로 걸리는 것 같다. 소고기나 김치볶음을 더하면 더 걸리긴 하지만. 


  김밥에 중요한 것은 밥이다. 질지 않고 고슬고슬하게 지어낸 밥. 초반에는 이것도 애를 먹었는데 내 밥통과 쌀의 느낌 아니까. 내 감을 믿어 의심치 않고 지어낸 알맞은 밥에 가는소금과 참기를 적당히 뿌려 섞어낸다. 밥주걱을 세워서 자르듯 섞어낸다. 생각보다 소금을 많이 해야 간이 알맞게 된다. 질 좋은 김밥 김까지 꺼내 놓으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김발을 펼쳐놓고 그 위에 김을 올린다. 밥을 짓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김밥에 까는 밥의 양이다. 밥알이 뭉치지 않게, 두껍지 않게, 김밥 가득 밥을 깐다. 역시 이것도 기술이라고 점점 실력이 는다. 적당한 밥양에 대한 감이 생겨 주먹으로 한 움큼 쥐어 깔면 대강 맞아떨어진다. 그 위에 순서대로 준비한 재료들을 다 넣어 공간이 생기지 않게 말아준다. 이것 또한 중요한 기술이다. 넓적한 재료를 밑에 깔고, 채 썰거나 자잘한 크기의 재료들을 안으로 넣어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은 기본이고. 다 말고 난 다음에는 다시 김발에 넣고 눌러가며 한 바퀴 돌려준다. 말린 끝이 아래로 내려가게 두고 위에 참기름을 바른다. 


  아이들 것 먼저 말아 가늘게 잘라 내어 준다. 계란국까지 더해주면 아이들은 한 자리에서 뚝딱 먹어치운다. 야채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도 신기하게 김밥은 다 먹는다. 알록달록 예뻐 보여서일까? 아이들이 먹는 동안 부지런히 신랑과 내 것도 싼다. 어른 것은 도톰하게 잘라 좋아하는 통깨를 많이 뿌려준다. 맛있게 익은 김치랑 먹으면 꿀맛이다. 보통 한 번에 열 줄 정도의 김밥을 싼다. 큰 아이가 두 줄, 둘째랑 막내가 한 줄씩. 나와 신랑이 4-5줄 정도를 먹는다. 보통 한 두줄 정도가 남는데 다음 날 점심으로 라면과 함께 하면 그만이다. 


오늘 저녁, 간단하게 자알 먹었다. 

김밥은 손기술의 음식이다. 자꾸 말다 보니 김밥은 참 한갓진 음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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