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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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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Dec 26. 2018

여섯. 누룽밥과 오징어채 볶음.


모름지기 누룽밥은 아침 메뉴로 먹어야 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누룽밥은 솥에 딱 달라붙어 누른밥에 직접 물을 부어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만들어진 누룽지를 으깨 넣어 만드는 누룽밥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역시 누룽밥의 진가는 밥을 지어낸 솥에 있는 것이다. 


학창 시절, 어둠을 가르고 홀로 새벽에 일어난 엄마는 항상 압력솥에 새 밥을 지어내셨다. 압력솥 추가 돌아가는 소리에 잠이 깨곤 했다. 아침은 늘 그렇듯 입맛이 없는 법이다. 게 중에는 정말 밥알이 넘어가지 않는 날이 있기 마련이다. 엄마는 나의 그런 날을 귀신같이 알아채곤 하셨다. 솥에 누른밥, 거기에 적당히 물을 붓고 뭉근히 끓여 누룽밥을 내놓는 날이 그런 날이다. 누룽밥은 후룩후룩 잘 넘어가니 이거라도 먹고 가라며 무말랭이나 오징어채 볶음을 함께 내놓곤 하셨다. 마지못해 먹기 시작한 아침 식사가 그리도 맛날 수가. 등교시간이 더 남았더라면 한 그릇 더 먹고 싶은 여운이 남곤 했다. 


신랑은 지구 반대편에서 일하고 있고, 홀로 힘겹게 아이 셋을 등교시키고 돌아온 날. 추위와 감기 기운에 입맛이라고는 전혀 없는 날. 어제저녁밥을 하면서 솥에 누른 밥에 물을 부어 불을 올린다. 누룽밥이 끓는 동안 오징어채 볶음을 만들어보기로 한다. 누룽밥에는 김치보다 쫀득쫀득 씹히는 식감의 반찬이 안성맞춤이다. 무말랭이가 더 좋을 것 같지만, 무말랭이는 불려서 무쳐내는데 시간이 걸리므로, 오늘은 오징어채 볶음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오징어채를 뜨거운 물에 푹 담갔다가 꺼내 물기를 빼낸다. 그리고는 마요네즈를 골고루 묻혀놓는다. 오징어채 볶음에 들어갈 양념장을 만든다. 고추장, 고춧가루, 간 마늘 약간, 설탕이나 올리고당, 오일과 물 조금을 더해 팬에서 바르르 끓여낸다. 양념이 끓기 시작하면 불을 끄고 마요네즈 옷을 입은 오징어채를 넣어 골고루 양념을 입혀낸다. 마지막으로 참기름과 통깨를 더하면 완성이다. 

아, 누룽밥을 잊으면 안 된다. 끓기 시작하면 솥이 넘칠 수 있으므로 불을 약하게 줄이고 저어가며 충분히 끓여낸다. 내가 먹는 누룽밥은 한결같이 밥알이 푹 퍼진 것이어서, 누룽밥은 그런 것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서른이 넘어 다른 가족들과 여행을 갔다가 누룽지에 수분이 스며들 정도로만 끓여먹는 방법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들은 퍼진 밥알에 행복해하는 나를 이상해했다. 나는 그럴 거면 차라리 누룽지를 먹지, 그건 진정한 누룽밥이 아니라는 아우성을 속으로 삼켰었다. 뭐 누룽밥 하나를 먹는데도 가지가지 방법이 있는 것이다. 누룽밥은 물의 양이 참 중요하다. 다 끓여냈을 때 남아있는 물의 양이 누룽밥의 등급을 정하는 것이다. 물이 너무 많으면 숭늉 같은 느낌에 밥을 퍼먹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반대로 물이 너무 적으면 너무 되직하여 죽을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내게 딱 알맞은 A++ 등급의 누룽밥을 끓여냈다. 


누룽밥을 푸짐하게 한 그릇 떠내고 막 만들어 놓은 오징어채 볶음을 곁들인다. 아삭한 깍두기도 꺼내었다. 분명 입맛이 없었는데, 먹다 보니 열아홉 그때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한 그릇을 비워냈다. 속은 뜨끈해지고, 입안은 구수하고 달달해졌다. 고기반찬도 아니건만, 동장군도 물리칠 기운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잠시 외로움과 우울이 몰려오려는 순간에 방어벽을 쳐 둔 것 같은 든든함이랄까. 누룽밥이랑 오징어채 볶음과 함께 그런 하루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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