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맹이 씨는 이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은 때에 따라 비겁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에나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직장에서나, 부모에게나, 시부모에게나.
꼬맹이 씨는 직장에서 싸가지없는 년. 소리를 들었었다. 그래, 꼬맹이 씨는 계속 싸가지없는 년으로 살겠다 다짐했었다. 꼬맹이 씨는 친절했다. 깍듯하게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그러나 해야 할 말은 하는 사람이었다. 아랫사람에게든, 윗사람에게든. 특히 윗사람에게는 더욱 해야 할 말을 똑 부러지게 했다. 그래야 제대로 사람대접을 받는 거라고, 무시당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꼬맹이 씨는 부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어김없이 예의 있는 사람이었으나 할 말은 하는 자식, 하고 싶은 말은 하는 자식이었다. 부모에게 그건 틀린 거라고 정확히 짚어주는 자식이었다. 나는 부모님의 자식이기 전에 하나의 개별 된 인격체라고, 그러니 내 인생은 전적으로 내가 선택할 것이라고 말하는 자식이었다. 동생들을 위해 선구자가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꼬맹이 씨는 시부모에게도 예외 없었다. 본인 할 도리는 틀림없이 하는 사람이었으나 입바른 소리 하는 며느리였다. 이 집에 독불장군으로 있는 시아버지께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며, 아버님도 어려운 사람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며. 따박따박 다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불혹이 된 꼬맹이 씨는 요즘 말하곤 한다.
그때는 그게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어,라고.
예전에 꼬맹이 씨가 부모에게, 시부모에게 화가 나 당신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냐고 따지고 들면 꼬맹이 씨의 남편이 늘상 하던 말이 있었다.
“부모를 이겨서 뭐 하려고. 노인네들을 이겨서 뭐 하려고.”
“그러게, 이겨서 뭐 하려고.”
불혹이 된 꼬맹이 씨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승리는 얻는 것.
청춘의 승리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
불혹즈음의 승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