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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Feb 28. 2019

아홉. 김치 만두

만두 만드는 날.

김장할 때가 다가오면 김치냉장고에 남아 아직도 자리를 잡고 있는 신김치를 꺼내어 만두를 만들곤 했다. 일 년 행사 중 하나였다. 엄마의 음식에 길들여진 입은 밖에서 사 먹는 만두를 허락하지 않았다.

고기만두도 No. 중국집에서 배달을 시키면 서비스로 나오는 군만두도 No. TV마다 이 집 만두가 예술이라며 쉴 새 없이 먹방을 보여주는 시대에도 절대 흔들림 없는 나의 미각. 모름지기 만두는 김치 만두지. 김치 만두는 직접 만들어 먹어야 하는 것이지.


이곳에서는 김치가 귀한 음식이다.한국에서 보다 더욱 자주, 많이 김치가 땡긴다. 김치가 귀하니, 김치 만두를 만들 수가 없다. 줄곧 마트에서 만들어진 봉지 만두를 사다 먹다, 느닷없이 만든 김치만두가 먹고 싶었다. 상상만 하는데도 침이 꼴깍 넘어갔다. 어느 새 입안 가득 김치 만두 맛이 그득했다. 미국에 온 지 3년 반 만에 김치 만두를 만들었다. 김장을 20포기나 해서 여유가 있었다. 마침, 딱 알맞게 시었다.


김치만두는 김치가 다인 음식이다.

맛있게 신 김치가 맛의 8할은 차지한다.

나머지 2할은 나머지 재료들의 비율.

재료는 김치, 간 고기, 두부, 당면이 전부이므로 소박하기 그지없다.


김치는 6쪽(한쪽은 배추 한 포기를 4등분 한 것 중 하나),

고기와 두부는 김치의 반(고기는 돼지고기와 소고기 간 것을 1:1로 섞는 것이 좋다.)

당면은 고기와 두부의 반 정도가 적당하다.(물론 순전히 개인적인 입맛에 따른 비율이다.)


김치 만두를 만들 때 가장 필요한 것은 팔의 힘과 인내심이다.

첫째, 김치를 잘게 다져야 한다. 식감이 중요하므로 너무 잘게 다지면 안 되고, 다른 재료와 섞일 것을 생각하면 너무 커서는 안된다. 적당히, 그 감이 중요하다. 김치 속을 깨끗이 털어낸 다음 김치를 다지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꽤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둘째,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 있으니, 그것은 다진 김치를 면포에 넣어 물기를 짜내는 일이다. 이 단계를 확실히 거치지 않으면 만두소가 질퍽해져서 원하는 식감이 나오지 않으므로, 반드시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하여 짜내야 한다. 다진 김치에서 충분히 물을 빼내고 나면 다음은 두부이다. 두부도 면포에 넣어 위아래로, 좌우로 으깨어 눌러가며 물기를 빼내야 하는 것이다.

셋째, 김치와 두부를 준비하고, 팔이 후들거리는 지경에 도달한 다음 마무리해야 하는 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당면 자르기이다. 일단 당면은 따뜻한 물에 충분히 불려야 한다.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지 못한 당면은 자를 때 사방으로 튕겨져 나가기 일쑤이다. 그런 사단이 벌어지고 나면 아무리 청소를 하여도 계속해서 주방 곳곳에서 잘라진 당면 조각이 발견되는 귀찮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가위로 잘라도 보고, 야채 다지기에 넣고 돌려도 보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따뜻한 물에 충분히 담가 뒀다가 칼로 자르는 것이다. 당면을 너무 길게 자르면 만두를 빚을 때 속이 다 삐져 나와 매우 성가시게 되므로 유의하는 것이 좋다.  만두를 만들기로 결심했다면 주방으로 가서 제일 먼저 당면을 따뜻한 물에 담가 두시라.



다진 고기를 큰 대야에 넣고 후추와 생강가루를 뿌려 섞는다. 준비된 김치, 두부, 당면을 대야에 넣고 파를 잘게 잘라 더한다. 간 마늘, 소금을 넣어 치대가며 한번 더 골고루 섞어준다. 만두소가 모두 완성되었다. 만두소가 완성되었다면 다음 할 일은 큰 찜통에 물을 충분히 넣어 불에 올리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본격적으로 만두를 빚기 시작한다. 만들면서 계속해서 만두를 쪄낸다. 냉동실에 들어갈 것도 모두 쪄내야 한다.


만두가 한 판 쪄지면 바로 초간장을 만들어 찍어 먹는다. 첫 번째 판은 원래 만들면서 먹어야 제 맛인 것이다. 그것보다 더 맛있는 만두를 먹어본 적이 없다. 만들면서 쪄낸 만두를 먹으면 한 끼가 해결된다.

그리고 그다음 끼니는 무조건 만둣국이다.국물을 좋아하는 가족이어서 그랬을까, 만두를 만드는 날에는 무조건 저녁으로 만둣국을 끓여먹었다. 멸치, 다시마, 무를 넣어 우려낸 소박하고 진한 육수에 쪄둔 만두를 넣으면 김치 맛이 배어져 나와 간이 된다. 간 마늘을 조금 더 넣고 모자라는 간은 국간장, 소금으로 한다. 김이나 계란 고명 따위는 필요 없다. 그저 파만 넣어주면 된다. 수저로 만두를 잘라 국물과 함께 입에 넣으면 여기가 천국. 계속해서 손이 가 한 그릇을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하고, 남은 것은 빈그릇뿐이다.


만두를 한번 만들 때는 정말 많다 싶은 양을 빚는다. 시작이 어려운 음식이므로 일단 판을 벌렸으면 끝장을 보자는 심사일까? 그저, 손이 큰 것뿐일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세끼를 내리 찌고, 굽고, 국 끓여먹어도 남는다. 쪄둔 만두를 소분하여 냉동실에 넣으면 그리도 뿌듯하다. 어느 날 갑자기, 문득 엄마의 맛이, 고국의 맛이, 추억의 맛이 떠오를 때 꺼내 들 수 있으니, 입맛만 다시지 않아도 될테니, 기쁘지 아니한가.



이 정도 양은 빙산의 일각이다. 한번 만들 때 최소 100개는 빚어야 올해 만두를 빚었네, 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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