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적덕 식당이라고 있었다.
내가 아는 제일 맛있는 양념 족발집이다.
허름한 옛날 집, 그 옆 오래된 건물.
주문한 족발을 시키면 비닐장갑과 부추김치, 무우김치가 함께 나오는 곳이었다.
아이가 아파 혼자 시간 없었던 요 며칠,
정신 못 차리게 바쁜 하루를 보낸 후 밤,
부부가 먹방을 보다 급작스럽게 그 생각이 났다.
"아, 양념 족발 먹고 싶다."
"어, 진짜 맛있겠다. 거기, 그 식당 족발, 거기 이름이 뭐더라?"
"적덕식당."
"맞어. 거기 부추김치랑 일케 해서 먹으면 진짜 맛있겠다."
한국에서라면 시간 따위는 상관없이 어디에서든 배달시켜 아쉬움이라도 달래겠지만, 여기가 어디던가. 9시가 되기도 전에 온 마을이 깜깜 해지는 곳. 돼지 발을 요리해 먹는 이들을 낯설게 바라보는 곳.
"사다 놓은 족발 없지?"
"없지. 그게 어디 있어. 아, 저번에 만들어둔 족발 냉동실에 좀 남아있는데."
"그래? 그거 어떻게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긴. 해동을 해야지. 근데 그거 그때 잘 못해가지고 껍데기에 털 있어. 기억나지?"
(한인마트에 가면 삶아 놓은 뼈 없는 돼지족을 판다. 한 덩어리가 이만 원 가까이하므로 매우 비싸다. 그래서 나는 족발도 만들어 먹는다. 중국 장에 가면 우리가 먹는 웬만한 종류의 고기는 다 있으므로... 가끔, 아주 가끔 돼지 족을 사다가 족발을 만든다.)
신랑은 말만 그렇게 하고는 엄두가 안 나는지 입맛만 다셨다. 나는 나대로 이불 밖으로 나가 움직이는 것이 귀찮아 뭉기적 거렸다. 그런데 먹방을 바라보는 이 남자의 눈빛이 어찌나 간절한지, 안주 없이 맥주를 홀짝거리는 그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조용히 이불 밖으로 다리를 빼내고야 말았다.
1. 냉동실에서 만들어 둔 족발을 꺼낸다.
2. 족발을 전자레인지에 3분, 3분, 총 6분 정도 돌려 해동을 한다.
3. 칼과 가위로 눈에 띄게 보이는 털을 제거한다.(쉽지 않다. 만들 때 진즉에 손질했어야 하는데...)
4. 장갑을 끼고 뼈를 발라낸다.
5. 저녁 반찬으로 만든 오징어채 볶음 양념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한다.(고추장2, 고춧가루1, 마늘0.5, 물엿1, 맛술1, 물1, 오일 약간)
6. 남은 양념에 간장과 매운 고추장, 후춧가루, 생강가루, 마늘, 물엿, 물을 더한다.
7. 프라이팬을 예열하여 양념을 부르르 끓여내고, 발라낸 족발을 넣은 다음 불을 끈다.
8. 수저 두 개를 이용하여 뒤적뒤적, 족발에 양념이 잘 묻게 고루 섞는다.
9.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한 바퀴 휘 둘러 섞어낸다.
10. 내가 좋아하는 코스타 노바 그릇에 담아내고, 좋아하는 통깨를 듬뿍 뿌린다.
맥주 한 병을 더 꺼내서 족발과 함께 안방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이불 안에서 태블릿을 끌어안고 맥주를 홀짝 거리는 신랑 앞에 짜잔, 대령한다.
"이게 뭐야?"
"양념 족발."
"쥔짜? 진짜 금방 뚝딱도 만들었네?"
"당신, 너무 먹고 싶어 하는 거 같아서, 내가, 좀 했어."
정말 감동한 표정으로 한 젓가락 먹은 그가 더 감동한 표정으로 내 입에 족발을 넣어준다. 마지막 물엿은 넣지 말걸, 너무 달다. 하는 생각이 따라온다. 그래도, 고것만 빼고는 급작스럽게 만들어낸 요리 치고 꽤 괜찮다. 그러다 캬... 내가 만들었지만 예술이다. 까지 넘어온다.
"맥주 줘봐 여보."
콸콸콸. 꿀꺽꿀꺽.
맥주가 시원하게도, 계속해서 들어간다.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먹을 때는 배부른지도 모르게 코 박고 먹었는데, 이런. 젓가락을 내려놓자마자 포만감이 넘쳐 더부룩하다. 역시, 잠자리에 너무 많이 먹는 건 아니다. 그런 후회를 하면서도 역쉬, 스트레스 만빵일 때는 매콤하고 달달한 자극적인 음식이 최고지. 술이 술술술 넘아가면 최고의 안주인 거지.
먹고 싶은 걸, 먹고 싶은 때, 있는 재료로 술술 만들어 낸 스스로가 많이 기특한 날. 옆에 있는 사람이 먹고 싶다는 걸, 먹고 싶은 때, 있는 재료로 뚝딱뚝딱 만들어, 그 사람을 기쁘게 해 줄 수 있어 뿌듯한 날. 행복하다. 그런 것 같다.
갑자기 분위기 양념족발. 한 접시에 마음도 뱃속도 그득그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