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뱅이 무침은 술안주.
나에게는 줄곧 그랬다. 결혼하기 전까지 살던 친정집에서는 골뱅이 무침이 식탁에 올라온 적이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골뱅이 무침을 영접한 것은 대학가의 어느 술집에서였다. 그러니까 나는 20년 가까이 골뱅이 무침 맛을 모르고 살았더랬다. 혹시 먹어봤는데 기억이 없는 걸까?
결혼하고도 골뱅이 무침은 술안주.
그러므로 친정집에서 독립을 하여도 내 식탁에 골뱅이 무침이 올라오는 적은 없었다. 통조림 안에 들어있는 식재료로 음식을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새댁이었으므로 더더욱 골뱅이무침을 만들 기회는 없었다.
미국 중부에 살면서 신선한 회 구경은커녕, 냉동이나 통조림이 아니면 물에서 사는 것들은 맛볼 수가 없었다.
가는 한국 마트마다 골뱅이 통조림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진열되어 있곤 했다. 그렇게 6개월쯤 지내니, 자연스레 골뱅이 통조림에 손이 갔다. 지금은 마트에 갈 때마다 한 두 캔씩 꼭 사다 쟁여둔다. 언제든지 생각날 때 바로 만들 수 있는 잇템이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정확한 계량 레시피를 적어 보겠다.
골뱅이 무침.
재료: 골뱅이 통조림 1캔. 오이 반 개 또는 한 개. 깻잎이랑 당근 있으면 넣고 없으면 말고.
양념: 고추장 3 수저, 설탕 3 수저, 간장 3 수저, 식초 3 수저, 통조림 국물 3 수저, 고춧가루 1 수저, 간 마늘 0.5 수저, 참기름 1 수저, 깨 조금.
색감을 생각하면 당근을 넣어주면 좋겠지만 안 넣어도 그만이다. 깻잎을 넣으면 향이 나서 좋겠지만, 여기서는 구하기 힘든 식재료 중 하나이니 안 들어갈 때가 더욱 많다. 대신 오이는 꼭 넣어준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이기도 하거니와 개인적으로 아삭하게 씹히는 식감이 골뱅이의 쫄깃한 식감과 어우러져 궁합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뭐, 그냥 아삭한 오이를 좋아해서일지도.
처음에는 술안주로 만들어 먹기 시작했지만, 요즘은 한 끼 식사로 먹는다. 한 끼 식사로 먹으려면 꼭 소면을 삶아 곁들여야 한다. 김치 못지않은 국수 애정자인 신랑은 소면 없이 먹는 골뱅이무침을 거부한다. 뭐 물론 먹으라면 먹겠지만. 그의 식성을 너무도 잘 아니 골뱅이 무침엔 항상 소면이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한 시간 반 동안 영어로 수업하고 지친 날 점심이나 일주일 내내 시간을 분으로 쪼개 일하고 긴장이 풀린 금요일 저녁. 오로지 신랑을 생각하며 그가 좋아할 골뱅이 무침을 만들어낸다. 물론 족히 3인분은 될 양의 소면도 정성껏 삶아낸다. 골뱅이 무침이라 불리지만 먹고 나면 골뱅이가 남는, 남들은 이해 못할 취향. 맛있다, 담백하기 짝이 없는 표현이 전부이지만. 그래도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신랑을 보고 있으면, 이것으로 조금이나마 스트레스가 풀릴까 싶은 마음이 들어 짠해지는 것이다. 그럼 괜스레 짠해하는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내가 만든 골뱅이 무침이 맛없던 적 있었어?' 하고 우쭐거려본다.
나의 골뱅이무침, 소면에는 평생을 함께 하겠다 약속한 사람을 위하는 마음, 오롯이 그것이 담겨있는 것이다.
듣는 푸드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