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고 있었다.
미아 씨는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보며 '정말 예쁘구나. '하고 생각했다.
“눈이 참 예쁘게 오네. 꼭 영화나 드라마에 걸어놓은 슬로 모션처럼 천천히 내려.”
“그렇지? 눈이 많이 오네.”
미아 씨의 바깥사람이 옆에 와 나란히 섰다. 미아 씨는 바깥사람에게 따뜻한 쌍화차를 건네며 말했다.
“여기로 이사 오고 부터는 눈이 오고 비가 내리는 모습을 가만히 내다보는 시간이 많은 것 같아.”
“여기가 뷰가 좋잖아. 산장 뷰 저리 가라지 않아? 그 뭐냐, SKY캐슬에 영재 아빠가 산장 들어가잖아. 거기보다 우리 집 뷰가 더 좋지 않아?”
“응, 그러네. 눈이 내리는 모습도 어쩜 저렇게 다양할까. 난 몰랐지, 눈이 내리는 모습도 이렇게 수만 가지 일지는.”
미아 씨는 내리는 눈을 보고 예쁘다고, 아름답다고 하는 날이 나에게도 오다니, 싶은 생각이 들어 엷은 미소를 지었다.
“여보, 눈 내리는 게 너무 예쁘다고 말하는 날도 오네. 어렸을 때는 눈이 오면 마냥 신났는데.”
바깥사람은 정작 아무 말 없는데, 미아 씨는 바깥사람이 돌연 너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냐고 물어올까 봐 눈치를 보며 덧붙였다.
“나한테도 그런 시절이 있었어. 눈이 오면 신나서 뛰어나가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하던 시절. 분명 그랬었네. 눈이 오면 옥상에 올라가서, 마당보다 옥상이 눈사람 만들기 딱 좋았어.”
그랬었다. 눈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어린 시절의 미아 씨가 있었다. 20대 중후반부터 30대로 불쑥 건너뛰면 눈이 오는 날을 싫어하는 미아 씨가 있다. 눈이 오면 교통 체증이 심해지는 걸 걱정하던 때, 집 밖에 세워져 있는 자동차 위에 쌓여있는 눈을 치울 일이 끔찍하던 때, 눈이 오면 추워서 만사 귀찮아지던 때, 눈이 오면 신발이 젖어 얼굴을 찡그리던 때, 쌓인 눈이 녹고 나면 질퍽거려져서 또 얼굴을 찌푸리던 때.
미아 씨는 불현듯, 사라져 버린 중간의 시간은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거기에는 설렘이 있었다. 눈이 오면 뭔가 특별한 일이 찾아올 것 같은 설레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낭만적일 것 같다고 상상하는 두근거림,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는 더할 나위 없이 멋진 데이트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 눈 쌓인 길 위를 찰싹 달라붙어 걷는 므흣함.
눈에 대한 감상도 이리 달라지는데, 지금껏 얼마나 많은 미아 씨가 흩어져 존재했을까?
눈에 신나 하던 미아 씨도 미아 씨.
눈을 싫어하던 미아 씨도 미아 씨.
눈에 감탄하는 미아 씨도 미아 씨.
적당한 때가 되면 한 꺼풀 허물을 벗고 나오는 미아 씨.
넌, 변했어.라는 말은 잘못된 건가?
너를 또 알게 됐네.라고 말해야 하나?
너에게 때가 왔구나.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미아 씨는 뭐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따뜻한 차를 홀짝 거렸다. 내리는 눈을 보며 계속해서 예쁘다, 천천히, 예쁘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지천명의 눈은 어떤 나를 만나게 할지 기대하면서. 과연 곤충처럼 완전변태를 하는 날이 올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것도 나, 저것도 나, 그것도 나.
모든 나를 조금씩 인정하게 되는,
당신의 수만 가지 모습도 생각해보는,
불혹 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