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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Mar 20. 2019

동그라미인 거.

자려고 자리에 누워 불을 껐다. 깜깜한 방 안에서는 눈을 감고 있어야 한다. 눈을 감고 있어도 맞은편에 꽂혀있는 책들이 보인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 디디의 우산, the story of the world, 어른의 맛, 사피엔스. 그러니까, 나의 정신이 너무 말똥거린다는 말이다. 누운 채로 기기의 손에 깍지를 낀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세상은 이상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거야."

 

내가 무슨 얘기 끝에 저 말을 했더라. 그래, 기기의 지인들에 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응? 이상한 사람들은 아니지. "


"아니, 모두 자기 기준에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잖아. 물론 '이상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그저 '서로 다르다'이지만, 우리는 그런 의미로 ‘이상하다’를 사용하지 않으니까. 예를 들면 그 굼벵이 씨는 깐깐이 씨를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깐깐이 씨는 물음표 씨를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물음표 씨는 워커홀릭 씨를 이상하다고 생각하잖아. 누구든지 자기 시선에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둘씩 다 있잖아. 그렇지 않아?"


"응, 그건 그렇지. 나도 그렇고, 미미 너도 그렇고."


"그러니까.... 이상한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어있는 거야. 그러다 보면 말이야, 이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결국은 하나로 연결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결국, 이 세상은 이상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거지."

 

나는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의기양양해졌지만, 기기는 대답이 없었다.  기기가 내 말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건지, 잠에 빠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한동안 고요함이 흘렀다. 기기 네가 잠에 빠지고 있었다면 미안. 난 잠시 후에 또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이상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이 말은 곧 이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로 바꾸어 말할 수 있는 거 아닐까? 그래, 그런 것 같아. 기기, 그런 것 같지 않아?"


"아!... 그러네."


"이런 추론? 논리? 수학식?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기기, 이런 걸 설명할 수 있는 수학식은 없어?"


"난 수학자가 아니거든. 그런데 미미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알겠어. 그래 그게 맞는 말인 거 같다. "


"흠....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결국은 자기 자신, 개인만 남는 거야.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인 속도와 거리를 가지고 이 우주를 움직이는 거야. 그러니까 말이야. 누군가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건… 슬픈 일이다. 그러네."

 

기기는 졸린 듯했다. 그래서 나는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조용히 생각만 했다.

 

'누구나 자기만의 우주가 있어. 무수히 많은 개개의 작은 우주들이 둥둥 떠다니다 이상한 사람이 살고 있는 다른 우주를 만나게 되는 거야. 슬픔을 겪게 되는 거지. 그러다 보면 알게 모르게, 크게 작게 교집합이 생기는 법이거든. 결국 작은 우주들이 다 연결되고, 커다란 우주가 되고, 혼자 살 수가 없는 거야. 다 같이 살게 되는 거지. 좋든, 싫든 그런 거구나.'

 

꿈을 꿨다. 기기와 내가 만나 반짝이는 우주를 만드는 꿈을. 저쪽에 굼벵이 씨가 사는 우주도 있고, 깐깐이 씨네 우주도 있고, 물음표 씨네와 워커홀릭 씨네 우주도 있었다. 각자의 우주가 서로 부딪혀 튕겨져 나갔다가 다시 부딪히기를 반복했다. 슬펐다. 그런데 자꾸 부딪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서로의 우주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의 우주는 다른 우주가 없이는 빛을 내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어느 틈엔가 작은 우주들이 중심을 향해 모여들었고, 작은 우주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우주가 튕겨져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온 마음과 힘을 다해 부둥켜안았다. 그런 꿈이었다. 결국엔 크나큰 하나의 동그라미가 남겨진 슬프고도 아프고, 따뜻한 꿈이었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었던 청춘,

내가 세상의 일부임을 알게 되는 불혹 즈음.

쪼오끔 더 넓은 마음을 갖게 되는, 반짝 현자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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