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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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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Apr 19. 2019

열아홉. 골뱅이 들깨 볶음(ft. 배추)

터벅터벅.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립니다. 신랑이 오늘의 마지막 미팅을 마치고, 안방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아이들은 모두 잠들었고, 9시가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안방으로 랩탑을 끌어안고 들어왔습니다.


"랩탑은 왜 가지고 들어왔어?"

"일 하려고."

"또?"


신랑이 책상 위에 랩탑을 세팅하고는 책상 옆 스탠드를 켭니다. 나는 침대 위에 앉아 글쓰기를 하고 있다가 말했습니다.


"저녁으로 누룽밥 먹어서 그런가 배고프네."

"배고파? 뭐 해줄까?"

"어맛, 당신 대답이 어쩜 그래?"

"응?"

"배고프다는 말에, 뭐 먹고 싶어도 아니고, 뭐 해줄까라니!! 난 어쩜 당신 같은 사람이랑 결혼을 했을까, 당신 같이 착한 사람이랑."


칭찬받는 일에 어색해하는 신랑이 눈을 흘기며 나를 바라봅니다. 그 눈빛에서 '넌 어쩜 그런 말을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하냐?'라는 신랑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 그 말 녹음해놨다가 나한테 화났을 때 들려줘야 하는데."

"ㅋㅋㅋ 내가 당신한테 화를 낼 때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거나, 당신에 대한 나의 이런 마음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 그냥 상황에 화가 났을 뿐이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응, 나 그거 먹고 싶다. 양배추랑 골뱅이랑 들깨 넣고 볶은 거."

"오케이, 접수."


신랑이 먼저 주방으로 나가고, 나도 뒤따라 나갑니다. 왜냐고요? 음, 알기 때문입니다. 곧, 저를 부를 거라는 걸 말입니다. 틀림없이 저를 부를 거거든요.


"골뱅이는 여기에 있고, 양배추가 있는 줄 알았는데 배추였네?"

"배추로 해도 돼?"

"그럼. 여기 골뱅이, 배추, 들깨 가루. 이제 됐지?"


나는 필요한 주 재료들을 찾아 내주고는 다시 안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음식이 완성되길 잠잠히 기다리는 마음도 매우 좋습니다. 음식을 만들면서 느끼는 뿌듯함과 만족감도 있지만, 오로지 나를 위해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을 받는 것은 더욱 큰 행복입니다. 이 행복감으로 가족을 위해 매일 식탁을 차려낼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합니다. 잠시 뒤 신랑이 안방 문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음식이 준비되었음을 알립니다. 


오, 그럴듯합니다. 

사진을 찍으니, 비주얼이 별로인데 괜찮냐고 묻습니다. 네, 네, 암요, 암요, 괜찮고 말고요. 캔맥주 하나, 무늬만 병맥주 하나씩을 꺼내 들고 짠! 부딪힌 다음 시원하게 한 모금 들이킵니다. 캬~ 좋네요. 그리고는 골뱅이랑 배추를 함께 집어 입에 넣습니다. 맛있습니다. 빨갛게 무친 골뱅이도 좋지만 이렇게 볶아 먹는 것도 담백하니 아주 좋습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심심한 맛이 생각날 때 딱입니다. 배추의 달달함과 들깨의 고소함이 환상 궁합입니다. 신랑이 알아서 찾아 넣은 고추의 매콤하고 알싸한 맛이 혀 끝에 흔적을 남기네요. 거기에 골뱅이의 쫄깃거리는 식감, 제가 원하는 것은 다 갖췄습니다. 이 요리의 화룡점정은 피곤할 텐데도 아내를 위해 기꺼이 주방 앞에 서서 태블릿 바라보며 요리하던 신랑의 사랑입니다.


얼마 전 아는 동생이 그랬습니다.

결혼 정보 회사에 등록할 때 위로 누나가 다섯이 있으면 무조건 마이너스 100점으로 시작한다고요. 그랬더니 우리 신랑이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네, 저희 신랑은 위로 누나가 다섯 있습니다.)


"그거, 뭐 무슨 상관이에요. 당사자가 1000점 짜리면 되죠."


네, 1000점짜리 배우자 맞습니다. 1000점짜리 신랑이 만들어준 야식은 더할 나위 없이 1000점입니다. 

잘 먹었습니다. 


<양배추 골뱅이 들깨 볶음>'냉장고를 부탁해'에서 김풍 작가가 '뱅뱅뱅'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었던 메뉴입니다. 양배추 없으면 배추로!  개인적으로  저는 배추가 더 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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