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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망고 May 03. 2022

샤갈이 내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

<샤갈 특별전: Chagall and the Bible> 마이아트뮤지엄


"나 이거 보러 가고 싶어"



불쑥 내민 킴벨의 휴대폰 화면에는 전시 예매 완료 문구가 띄워져 있었다. <샤갈 특별전> 어디서 분명 들어본 이름이었다.



'샤갈.. 샤갈..'



몇 번 되뇌어보니 빨간색, 파란색이 연상되었다. 중간중간 흰색도 보이는 듯했다. 그 이상 떠오르는 게 없어 스마트폰을 꺼내 눈을 맞추었다. 마르크 샤갈의 이름 옆에 색채의 마술사라는 수식어가 눈에 띄었다. 이미지를 선택하니 대표작들이 줄지어 나타났고 독특한 그림체와 함께 색 배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푸르스름한 포스터와 불그스름한 관객의 만남


킴벨과 설레는 마음을 양손에 붙잡고 마이아트 뮤지엄으로 향했다. 티켓을 교환하고 전시관의 첫 번째 섹션(Section)에 입장했는데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기대 밖의 두 가지 일이 발생했다.


첫째로는, 도슨트는 어제부로 종료되었다는 사실이다. 한산한 오전 시간,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그림을 감상하려 했건만 기댈 곳이 사라졌다.


둘째로는, 전시의 주요 그림들이 흑백이었던 것이다. <Chagall and the Bible>이라는 전시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서 배경의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는데 그중 105점의 성서 연작은 색채가 없는 에칭 작품이었다. (Etching: 동판의 표면에 바늘로 형태를 새긴 후 부식액을 이용해 각기 다른 깊이의 홈을 만들고 잉크를 찍어내는 판화)


<모세와 놋뱀> Park West Gallery 출처

예상했던 그림은 아니었지만, 예사로운 그림도 아니었다. 마주한 적 없는 성서 속 수많은 인물들을 자신만의 그림체로 형상화한 샤갈의 작품을 보며 전하고 픈 메시지가 있음을 발견했다. 특히, 두 명의 인물을 그릴 때 그의 의도는 더욱 두드러졌다.



모세 MOSES


에칭 105점 중 모세를 그린 작품이 17점으로 가장 많았다. 또한, 샤갈의 색채가 고스란히 드러난 대형 태피스트리(Tapestry: 다양한 색상의 씨실과 날실을 짜넣은 직물공예) 모세 작품도 내가 세어본 작품만 9점이었다. 태초 이야기가 담긴 창세기를 포함해 모세오경으로 분류되는 성서 다섯 권(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주요 인물이자 저자이다 보니 자주 등장하는 줄로만 알았다.


<모세> 샤갈은 신성시된 인물의 머리 위에 뿔을 그렸다. 마이아트뮤지엄 출처


그 배경을 조사해보니 흥미로운 사실 몇 가지를 발견했는데, 먼저 마르크 샤갈의 개명 전 이름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본명인 모이셰 샤갈(Moyshe Shagal)이 모세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라 유독 모세를 자주 그렸다는 것이다.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 Park West Gallery 출처


다른 하나는 성서 출애굽기의 이집트 탈출 일화와 관련된 것이었다. 1930년대 나치당이 정권을 잡기 시작하면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독일에 전시된 샤갈의 작품은 철거되고 동족들은 학살당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킨 것처럼, 나치 핍박으로부터 해방될 날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이다.




예수 JESUS


성서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인류를 구원할 예수의 오심을 예언하는 구약 성서와, 이미 오신 예수를 전하는 신약 성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유대교는 예수를 선지자 중 하나로 여기며 신약 자체를 믿지 않지만 샤갈의 신앙은 달랐다.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희생에 유대인과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기도 하고, 나치의 핍박을 딛고 일어날 믿음을 예수에 담았다. 유대인 출신이지만 그의 신념과 해석을 오롯이 그의 작품에 풀어낸 것이다.


인상 깊었던 그림 중 하나는 샤갈이 종종 그렸던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 사랑을 나누는 남녀, 다리 등 파리를 연상시키는 배경에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그린 그림이었다. 자신의 일상과 현실의 삶 속에서 예수를 소망하는 내면을 표현한 듯한 인상을 받았다.  


<강기슭에서의 부활> 마이아트뮤지엄 출처



그리고 샤갈로부터의 말


전시의 마지막 섹션에는 샤갈이 쓴 시와 말년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98세에 그린 샤갈의 마지막 작품 <또 다른 빛을 향하여>에 한동안 시선이 머물렀다.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등 뒤엔 날개가 달려 있고 그의 머리 위 천사의 모습이 샤갈의 에칭 작품 속 성서 인물들의 기도하는 모습과 연상되었다. 굳게 담은 입술, 반쯤 감긴 눈은 예술가로 살아간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는 덤덤한 마음이 느껴졌다.


<또 다른 빛을 향하여> 마이아트뮤지엄 출처. 샤갈은 이 작품을 완성한 다음 날 세상을 떠났다


전시 큐레이터는 성서에 담은 사랑의 메시지가 코로나 시대 희망적 메시지를 전달하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보도자료에 담았다. 2022년 봄을 맞이한 이 시점에서 기획의도와 다르지만, 전쟁과 학살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감과 소망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샤갈의 마지막 작품은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네고 있었다.



당신은 삶의 마지막 순간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건가요?
안타깝지만 당신은 자신의 마지막 순간이 언제인지 알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던 말, 꼭 해야 할 말을 뒤로 미루면 안 되지 않을까요?
그 말을 바로 오늘 하기 위해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나요?





모든 생명이 필연적으로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그것을 물들여야 합니다. - 마르크 샤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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