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어느 날, 도시 전체가 반짝이는 네온 불빛으로 가득 찬 밤이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종이 지폐를 사용하지 않고, 모든 거래는 손목에 박힌 작은 칩 하나로 이루어졌다. 이 칩은 각자의 계좌와 연결되어 있어, 결제와 신분 증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기기였다. 이 도시에서는 지폐나 동전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그것들이 아예 존재한 적 없던 것처럼.
리나는 항상 돈에 집착해 왔다. 부와 성공이 그녀의 삶의 목표였고, 끝없이 일하며 점점 더 많은 '숫자'를 쌓아갔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는 문득 자신이 쌓아온 그 숫자들이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카드나 칩을 통해 거래하지만, 그것들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왜 그 숫자가 가치를 가지는지 누구도 설명할 수 없었다.
리나는 일을 마치고 택시를 타려고 했지만, 택시 앱이 에러를 내며 결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지갑에서 먼지가 쌓인 옛날 종이 지폐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이거로 택시를 탈 수 있나요?" 그러나 택시 기사는 그녀를 비웃었다. "이젠 그런 건 소용없어요. 돈은 시스템 안에만 있지, 손에 쥘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리나는 혼란스러웠다. 손에 쥐어진 것이 분명 돈인데, 아무도 그것을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날 밤, 리나는 거리를 걸으며 오래된 골목길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전통 시장이 자리 잡고 있었고, 나이 든 상인들이 물건을 팔고 있었다. 놀랍게도, 이곳에서는 여전히 종이 지폐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리나는 이들에게 물었다. "왜 아직도 지폐를 사용하세요?" 상인 중 한 명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돈의 진짜 가치는 우리가 믿는 데 있어. 우리는 여전히 이 종이가 가치를 가진다고 믿으니까."
그러나 그 순간, 시장의 반대편에서 한 남자가 등장했다. 그는 이 도시에서 가장 큰 은행 시스템의 설계자였다. 그는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는 칩의 시스템을 보여주며 외쳤다. "돈의 실체는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신뢰의 숫자일 뿐, 이 시스템 안에서 우리가 동의한 것일 뿐입니다. 종이 지폐, 금속 동전, 심지어 이 칩까지도 전부 허상입니다. 우리가 시스템에 동의하지 않으면 돈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시스템을 의심하기 시작한 순간, 거래가 멈추고 칩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숫자로 가득 찼던 세상이 그 순간 무너져 내렸다. 그제야 사람들은 깨달았다. 돈이란 것은 그저 그들이 믿고 있는 하나의 허구였다는 것을. 돈의 진정한 가치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신뢰와 사회적 계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리나는 그 혼란 속에서 시장의 상인을 다시 찾았다. 상인은 평온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돈의 실체는 없어도, 우리의 믿음은 실체가 있지. 그리고 그 믿음이 있는 한, 세상은 굴러갈 거야."
리나는 그 말속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돈이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어떤 신뢰를 쌓아가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
---
리나는 다시 도시로 돌아갔고, 이제는 더 이상 숫자를 쌓아 올리는 데에 집착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돈의 실체가 없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대신, 그녀는 사람들과의 관계와 신뢰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