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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대 Mar 03. 2016

있을까

일본 MUJI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검은색 펜을 만났다. 한 움큼 집어오고 싶었지만 소심하게 2자루.

손에 감기는 굵기와 굴러가는 펜 끝의 감촉, 적당한 번짐까지 지금까지 만난 펜 중 최고라는 생각을 사용할 때마다 한다.

아아. 1호가 수직으로 떨어져 끝이 나갔고, 2호는 늘 그렇듯 어딘가에서 행방불명되었다.

서울에 있는 MUJI 매장은 모두 뒤졌건만 너를 만날 순 없었다.

나에게 쓰는 행복을 준 너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 오롯이 나의 불찰로 빚어낸 일방적인 끝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아.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처럼, 그냥 펜에게 '너'라는 호칭을 붙인 것처럼.

어디선가 새로운 너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관계의 끝을 생각한 적이 있다.

연인과의 끝은 헤어짐.

친구와의 끝은 절교.

가족과의 끝은 죽음.

정말 그럴까.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더라도 내 안의 너는 끝난 존재가 아니다.

너를 생각하는 시간엔 오롯이 우리의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일방적이건 그렇지 않던.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에겐 아직 끝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정말 끝이 오는 순간은 우리가 우리를 포기하는 때이다.

어쩌면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끝은 오지 않고 너만 보냈나 보다.

어디선가 새로운 너를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에

오늘도 삶의 여행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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