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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대 Jan 09. 2021

낮잠

토요일 한낮 오후의 낮잠이었다.


각자 앉은 곳에서 옆으로 뒤로 기대어 이야기하고 훌쩍거리다 어느새 낮은 코골이 소리만 났다.
그새 아주 짧은 꿈을 꾼 것 같다.
모두 무채색인 공간에 상 가운데 놓인 된장찌개만 선명히 끓고 있었고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 후루룩 목 뒤로 넘기는 소리가 찌개의 김과 섞여 미지근했다.
모두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게 얼마만인지 생각하는 찰나 꿈에서 깼다.



그리고 2시간 후 아빠가 돌아가셨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며 전화를 받고 병원을 찾은 지 이틀만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처치실에 누워계시는 아빠를 보고 정신없이 울었고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차분히 설명해주시는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침을 계속 삼켰다.
알고 있었다.
곧 돌아가실 것도 이런 상황이 올 것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아빠만 몰랐다.


그해 설에 만난 아빠는 급격히 야위어 있었고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기력이 없었다.
같이 걸으며 요즘 어떠냐는 물음에 그냥 힘이 없어. 입을 열지도 않고 말씀하시던 목소리가 생각난다.
병원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퇴원하라는 말을 들은 지 1년 반만이었다.
주환이 돌잔치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때 아빠는 다시 입원하셨다.
입원 후 통증이 잡히자 수술할 수 있으면 하겠다고 했다.
절대 수술하지 않겠다던 아빠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가 너무 가슴이 아팠다.


아빠는 매일 매시간 희미해져 갔다.

그때라도, 아빠가 말도 하실 수 있고 들을 수 있을 때
눈 맞추고 고개를 끄덕하실 수 있을 때 얘기했다면 어땠을까.
아빠 이제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고 해요.
아빠 우리한테 하고 싶은 말 없어?
아빠 돌아가시면 어디에 주무셨으면 좋겠어?
아빠 할 말이 많은데 내 말 듣고 있지?
아빠 미안한데 뭐라도 얘기해주세요.


처치실에서부터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3번 아빠와 눈을 맞출 수 있었다.
깊은 잠에 빠져 계시다가 간호사들이 석션을 하거나 자세를 바꿔줄 때 아주 잠깐 눈을 뜨셨는데
처음엔 우리를 찾고 계시는 눈빛으로,
그다음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눈을 맞췄고
마지막은 조금 흐릿하지만 그래도 나를 똑바로 바라보시고 다시 눈을 감으셨다.


원망스러웠다.
속으로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으실까.
아직 괜찮을 거라고 그런 얘기는 조금 있다가 하자고 시간만 흘려보내다가 모르핀에 아빠의 말도 귀도 눈도 뺏겨버리고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아빠는 뭐든 괜찮은 사람, 속으로 삼키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병원에서는 마지막 가시는 길 가족끼리 계시라고 2인실을 내주었다.
오빠도 나도 결혼하고 나서 엄마 아빠와 한 곳에서 그렇게 오래 있어본 건 처음이었다.
처음엔 정신없이 울기만 하다가 차례로 아빠 옆에서 손 잡고 얘기도 하고
엄마가 갑자기 털어놓은 연애시절 얘기에 웃기도 했다.
우리 만났던 진보에 애들 데리고 백숙 먹으러 가야 하는데 결국 못 갔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목이 뜨거워서 혼났다.
미안하다고. 사는 게 바쁘고 고돼서 너무 힘들었다고. 당신을 너무 미워해서 미안하다고 울 땐 엄마 아빠를 안아주고 싶었다.


누구라도 한마디 더 꺼내면 터질 것 같은 순간이 지나가고
우리 넷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짧은 낮잠을 잤다.
잠에서 깨어 모두 멍하니 있을 때 시끄러운 기계음이 울리기 시작했고
심장이 두근거려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야기하세요. 아버님은 다 들리세요.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아빠.
엄마는 연신 미안하다며 목놓아 우셨다.
아빠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처음 본 아빠의 눈물이었다.



5월 어느 날, 화창하다 못해 눈부셨던 토요일 한낮의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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