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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대 Apr 21. 2016

아쉬운 나날

나는 크고 있는 걸까 이미 멈춘 걸까

역시, 아쉬운 봄은 어느새 끝나가네.

생각해보면 봄은 항상 시험기간 이었고, 회사에선 가장 바쁜 첫 분기를 마무리하는 시기인 탓에

허둥지둥 여유가 없는 내 삶에서 더 빠르게 지나갔던 것 같아. 내 맘 알 리 없는 꽃들은 한껏 예쁨을 자랑하다 어느 새 흙냄새 나는 봄비에 옷을 벗어던지고.


혜화야,

난 요즘 붙잡고 싶은 봄과는 다르게 아쉽지 않은, 어서 지나갔으면 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어. 미래를 계산하지 않고 살아온 내게, 계산하지 않으면 오늘이 불안해지는 삶을 자연스럽게 강요받으니 오는 무게는 오늘도 나를 쉽게 잠들지 못하게 하네.


대학을 졸업하고부터는 정말 쉼 없이 일을 하며 지내왔는데, 사실 그게 싫진 않았어. 내가 움직이고 노력하는 만큼 있는 분야에서 인정받고 그 안에서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 보람되기도 재미있기도, 내가 더 크고 있구나 하는 것 같아서. 물론 그 안에서 겪어야 하는 폭풍 같은 스트레스는 빠른 노화를 불러왔지만.

그렇게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을 하는 과정에서는 항상 누군가의 평가와 협력이 있었고 내가 선택한 길의 끝과 시작을 정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했는데. 분명 그땐 그런 것들이 부담이 되어 고민의 핵이었는데. 난 지금 그 어떤 선택도 협력도 나를 조율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 같아.


작년 이맘때 덜컥 시작해 버린 결혼생활과 사업.

물론 모두 나의 선택이었지만 인생에서 겪어보지 않은 것에 대한 염려, 미래를 향한 계산을 너무나 미뤄둔 탓일까. 하루하루가 자라긴커녕 무너지는 날의 연속이었어. 모든 순간에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앞으로 나가지 않고, 내가 하지 않아도 될, 몰라도 됐을 것들을 알아가면서 마주치는 우연들, 사람들, 생각들은 분류할 새도 없이 들어차 버려서 어느새 내가 그것들을 다시 던지지 않으면 안 되는 비즈니스라는 세상.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중한 시간들을 무언의 타협 하에 비즈니스에 몰아야 하고 절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돈의 힘에 무너지고 살아나는 피동적인 삶들. 타인이 보기엔 부부가 같은 일을 하며 오손도손 살아가는 모습이 부럽다고도 하지만, 물론 무한한 시간 속에 그런 반짝거리는 순간들이 없다면 참으로 불행하겠지만. 웃으며 지내는 우리의 날들 속에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 동굴을 파는 빈도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자주 일어나. 그때마다 참지 않고 맘껏 울기도 하고 화도 내면서 아, 난 아직 멀었구나. 대체 나란 인간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걸까. 난 왜 이렇게 멈춰있을까 생각해.  


자신이 택할 수 없는 것의 결과에 대해서는 모든 일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지진이 싫다고 한들 천재지변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고, 아무리 오래 살고 싶다고 해 봤자 수명이 다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것을 지나치게 머리 싸매고 고민해 봤자 오히려 그것이 더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모든 일은 신의 뜻대로.'라고 생각한다. 신이라고 하면 뭔가 종교적인 느낌이 드니까 '해님의 뜻대로.'라고 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

내일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해결해야 하는 일의 순서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이 행복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사실은 누군가에게 재촉당하거나 뭔가에 쫓기거나 하는 생활은 아니라는 것뿐이다.
'인간은, 상상하는 그대로보다는 가끔 반전이 있는 쪽이 훨씬 재미있구나.'

<일하지 않습니다.>, 무레 요코  


내일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해결해야 하는 일의 순서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을 꿈꿨던 내가 지금 너무 과식하고 있는 걸까. 해님의 뜻대로, 그저 해님이 비춰줘서 감사하다고 하는 교코처럼 그런 무던함을 가지고 살아온 나에게 미래라는 단어는 아직 너무 먼 이야기일까.

이런 고민을 하기엔 난 내일도 답이 없는 세상에 나가서 숱한 선택으로 비즈니스의 고리를 채워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다툼을 피할 수 없고. 고요히 들어앉아 나를 위한 생각을 채우는 시간들이 너무나 버겁게 느껴져. 나를 향한 자존감도 자신감도 너무 낮아져서 이렇게 조용히 편지를 쓰는 것 외에 다른 곳에 에너지를 쏟기가 싫을 만큼.


걸음마를 막 뗀 아기처럼 하나하나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 순간이. 설레야 할 지금이 난 왜 이렇게 두렵고 차가울까.

이 모두가 내가 선택한 것인데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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