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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ytripper Mar 27. 2016

아직 깨어 있는 너에게

사려깊고 사적인 편지의 시작

나는 그런 친구를 갖고 싶었다. 가족에게는 차마 하지 못하고, 연인에게는 결코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 나의 작은, 너무도 사소한 역사를 한 사람쯤은 기억해줬으면 했다. 나의 아직 살아있는 과거와 살아가고 있는 오늘과 언젠가 살아가게 될 날들을 기억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내 삶의 목격자가 있었으면 했다. 또 내가 한심할 때에도, 실패를 되풀이한다 해도 책망하거나 함부로 충고하지 않고 그저 응원해주고 위로해줄 친구가 있었으면 했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친구들은 어떤 시기에 몹시 친밀했다가 멀어지기도 하고, 아무 이유없이 천천히 소원해지기도 하고, 해를 거듭하며 관계가 단단해지거나 느슨해지기도 했다. 친구를 사귈 일이 많고, 쉬웠던 학창 시절이 지나고 회사 생활을 하면서 좋은 친구는 고사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조차 여의치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내가 기다렸던 친구를 우연히 필연처럼 만났다.


"댈님"이라고 부르며 어색하게 함께 점심을 먹었던 직장 동료가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지를 주고 받는 친구가 되고, 누구보다 열렬히 서로를 응원해주고 위로해주는 절친한 사이가 되는 동안 우리는 여러 겹의 이야기를 쌓아나갔다. 책과 일, 사랑, 가족, 삶. 우리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말하지 못했던 내밀한 이야기들을 서로의 기억처럼 나누어가졌고 누구보다 서로를 가장 가깝게 이해하려고 했고 그것이 가능했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나를 이해 받는 일, 그건 아주 신기하고 벅찬 경험이었다. 가족도, 연인도 주지 못하는 정서적 위안과 만족을 나는 미송을 통해 얻었다.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또 얼마나 기적과도 같은 희소한 희망인지.


내게 기꺼이 곁을 내주고 손을 잡아주고 힘껏 안아준 내 친구. 아무도 닿을 수 없는 곳에 유일하게 다녀갈 수 있는, 만질 수 없는 것들을 어루만져주고 가는 나의 애틋한 친구에게 나는 늘 뭐라도, 뭐든 해주고 싶다. 나의 숨을 틔워주고 울음을 가만히 들어주는 나의 친구에게, 내게 그렇게 해주었던 것처럼 나 역시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단단한 어깨가 되고 어떤 말도 들어주는 수화기가 되고 싶다. 헤어진 쌍둥이처럼 완벽히 이해하고 위무해주고 싶다.


우리는 거의 늘 새벽이라는 시간에 함께 또 따로 깨어 있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이 시간에 함께 깨어 있어서 서로의 부름에 기꺼이 응답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를 외로움으로부터, 차가운 고독으로부터 구원한다. 이 새벽에 나는 또 불러본다. '아직 깨어 있는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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