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붕괴 28년,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러시아 사람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국가이자 미국과 함께 20세기를 주름잡았던 소비에트 연방이 공식적으로 사라졌고 새로운 헌법을 모태로 하는 러시아 연방이 소련의 지위를 계승했다.
2005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은 소련의 붕괴"라고 말한 바가 있으며 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던 2018년 3월에도 "러시아의 역사에서 바꾸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소련의 붕괴"라고 말했다. 이러한 발언이 국민적인 지지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꺼내지 않았을 이야기인데 애국주의적 지도자 이미지를 자처하는 푸틴 대통령이 이와 같은 발언을 한 것을 보면 소련을 그리워하거나, 소련의 붕괴에 대해서 안타까움의 정서를 공유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2016년 유라시아 모니터에서 조사된 위 그래프를 보면 소련의 붕괴에 대해서 아쉬워하는 비율은 구소련 국가마다 다른데 현재 국가가 처한 상황의 영향을 받는다. 러시아의 경우에는 63퍼센트가 '그렇다'로 답했고 '그렇지 않다'가 23퍼센트를 기록했다. 나머지 14퍼센트의 응답자는 '잘 모르겠다'로 답했다.
소련을 구성했던 공화국중 하나인 아르메니아에서도 56퍼센트가 소련의 붕괴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했고 31퍼센트가 '그렇지 않다'로 대답했다. 현재 러시아와 갈등관계에 있는 우크라이나는 32퍼센트만 '그렇다'라는 대답을 내놓았고 49퍼센트가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위 그래프는 앞서 응답했던 사람들의 연령분포를 나타낸 그래프이다. 위 표를 보면 '그렇다'로 답한 사람의 비율이 고령층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점을 볼 수가 있다. 60세 이상의 응답자 중 85퍼센트가 '그렇다'로 답했고 단 11퍼센트만이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45세부터 59세까지의 응답자 중에서는 74퍼센트가 동의했고 25세부터 34세의 연령층 응답자로 42퍼센트가 동의했다.
이러한 경향은 18세에서 24세까지의 응답자의 경우 상당히 낮아지는데 27퍼센트만이 소련의 붕괴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답했고 가장 많은 대답은 39퍼센트로 '그렇지 않다'였다. 소련 시기를 경험하지 않거나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겪은 젊은 세대로 갈수록 소련의 붕괴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어졌다.
이 같은 사회적 현상을 '소비에트 노스탤지어'라고 부른다. 이 같은 추세는 소련이 붕괴한 1991년 이후로도 현재까지 28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며 63퍼센트의 러시아인은 왜 소련의 붕괴를 아쉬워할까?
대부분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은 국내적인 경제상황이 악화되면 집권세력의 지지율이 급격하게 악화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이는 그 국가의 국민이 생각하는 '먹고사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보여주는데 소련의 경우에는 서민 경제의 기본적인 안정성을 보장했다. 소련국민이 잘살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소련은 결코 잘 사는 나라가 아니었다. 공산권 진영이 무너진 이후 대부분의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어버렸고 서방의 제품이 물밀듯이 들어온 점에서 볼 수 있듯이 소련에서 생산했던 재화들은 다양하지도 않았고 품질이 좋지도 않았다. 다만 기본적인 생활수준은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보장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밋빛 미래가 그들 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찾아온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고, 참혹했다. 기존의 경제시스템이 붕괴하며 사회적인 혼란을 야기했고 루블화의 가치는 폭락을 계속했다. 물가 상승률은 일 년에 수백 퍼센트가 상승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계속됐고 러시아 사람들의 생활은 불안해져만 갔다, 2000년대에 들어서 러시아의 경제상황은 안정되어 갔지만 새로운 경제체제는 이전 소련 시기와 같은 안정성을 주지는 못했다.
소련이 붕괴가 누군가에게는 재앙이었지만 소수의 누군가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로 찾아왔다. 상대적으로 정보에 대한 접근이 쉬웠고 돌아가는 상황을 빠르게 간파한 소수의 사람들은 당시에 싼값에 민영화되던 국영기업들을 인수해 단시간에 거부가 되었고 대부분의 경우 부정부패와 범죄에 연루되어있었다. 이들이 경제력을 이용하여 행태를 부리는 것에 많은 러시아 사람들이 반감을 가졌으며 90년대 대부분의 러시아인이 심각한 경제난을 경험했던 것에 비해 단시간에 거대 재벌로 성장한 올리가르히를 보며 박탈감을 느꼈을 것임에 분명했다.
2000년대 푸틴이 러시아의 새로운 지도자로 집권하며 올리가르히에 대한 정리 작업이 시작되었고 지금은 예전과는 다른 성격의 올리가르히가 러시아 사회에 남아있다.
소련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기 전까지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진영으로 이분화되어 있었고 이 같은 냉전의 배경에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 사이의 대결에 있었다. 경제력에서 미국은 항상 소련을 앞서 있었지만 소련 또한 막강한 힘을 가진 국가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소련은 전 세계로 사회주의를 수출하려 애썼고 미국은 이를 막기 위해 대립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리틀보이'가 투하된 지 근 5년 뒤인 1949년 8월 29일 핵실험에 성공했고 이는 냉전을 더욱 격화시켰다. 동유럽의 공산화와 NATO의 설립과 같은 사건이 진행되며 양국의 대립은 심화됐고 최초의 대리전인 1950년에는 한국전쟁이 터졌다.
1961년 4월 12일, 세계 최초로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 1호'가 1시간 29분간 지구의 궤도를 돌았고 우주선에는 소련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탑승했다. 소련의 국가적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고 소련 정부는 이 사건을 소련 체제의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한 것으로 이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소련은 마치 골병을 앓는 환자처럼 사회의 가장 깊숙한 부분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고 곧이어 사회는 활력을 잃고 경제성장률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소련사회에 '결근 상습자'와 '알코올 중독자'와 같은 단어가 자주 들려오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나서서 해결해야 했다. 소련의 마지막 서기장 고르바초프가 총대를 맸다. 그는 과감한 개혁들을 추진했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로 불리는 그의 개혁은 병자인 소련에게는 극약으로 작용했고 소련은 결과적으로 회생이 불가할 정도로 기울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부분은 고르바초프가 처음부터 그런 결과를 바라고 개혁을 단행했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을 무너뜨릴 마음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소련의 지위를 계승한 러시아는 실질적으로 국력이 상당히 감소했고 국제사회에서 2등 국가 취급을 받기도 하면서 체면을 상당히 구겼다.
러시아인이 소련에 대한 향수를 갖는 것에는 분명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 기반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 번째로 소비에트 노스탤지어는 소련을 회생시키려는 시도가 아니다. 현재 소련 시기를 경험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소비에트 노스탤지어는 대부분 소련 붕괴 이후의 경제적 상황에 타격받고 정치적 혼란에 의해 실망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생기는 일종의 도피적 성격을 지니는 환상에 가깝다. 실제로 소련 시기 시스템은 강압적이고 동시에 전능한 국가권력과 빠르지만 비효율적인 하향 평준화된 경제시스템으로 대변될 수 있고 이를 되돌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련국민들은 서방세계가 경제적으로 부유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이러한 점에서 북한과 사뭇 달랐다. 소련의 붕괴를 우려해 공산당 내부의 보수파가 일으킨 쿠데타에 반대해 거리로 나와 리를 저지한 것도 소련국민의 뜻이었다. 그들은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찾아오면 서방국가들이 나서서 도와줄 것이라고 믿었고 삶의 질 또한 더욱 향상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일자리를 잃고 무너진 나라의 경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희망을 잃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통제적이었고 모두가 함께 이만저만한 삶을 살았던 소련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위 그래프를 참조하자면 소련의 회생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2016년 기준으로 23퍼센트로 기록됐으며 '불가능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68퍼센트에 달하는 것을 보면 소련의 붕괴에 대한 아쉬움이 소련의 회생에 대한 희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러 소련을 구성했던 국가들, 차례로 러시아, 아르메니아, 우크라이나, 몰도바, 카자흐스탄의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이 '가능하다'가 각각 23%, 24%로 가장 높고 우크라이나가 9%로 가장 낮다. 모든 국가에서 60% 이상의 응답자가 '불가능하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놓고 보았을 때 소련의 붕괴로부터 한 세기가 지났다. 소련이 붕괴할 당시에 태어난 아기가 지금은 30이 다 된 성년으로 사회에 이바지하고 있을 것이다. 글의 앞에서 보았던 그래프에서 알 수 있듯이 소련에 대한 향수는 젊은 세대로 올라갈수록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18세에서 24세까지 통계에서는 소련에 붕괴에 대해 별다른 감정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소비에트 노스탤지어는 아직도 러시아 사회의 큰 특성 중 하나로 남아있다. 러시아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런 뉘앙스를 풍기며 이야기할 때가 많다. 하지만 소련에 대한 향수는 이제 과거에 대한 추억으로만 남았고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이용하는 슬로건으로만 남았다.
어떤 이는 소비에트 노스탤지어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