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문학·문법 스터디를 꾸리고, 스터디원들과 매주 2~3번씩 모여 함께 공부를 했다. 그러던 중 어느 오후에, 과방에서 문법 스터디를 준비하면서 기출문제를 풀다가 막혀서 동기에게 풀이를 부탁했다. 물론 나의 휴학 때문에 사실상 선배인 동기였지만. 아무튼 동기가 문제를 푸는 과정을 보니 기가 찼다. 완벽한 풀이와 설명에 놀랐고, 내가 생각도 못했던 접근 방식에 또 놀랐다. 그때 느꼈다. '이런 애들이 선생님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애써 외면했던 것들이 다가왔다. 내가 중학교 수학 선생님에게 바보 소리를 들으며 수치심을 느낀 적이 있기 때문에, 나는 절대로 공부 잘하는 학생보다 못하는 학생을 더 좋아할 수 있는 교사가 되겠노라는 다짐은, 너무도 감정적인 꿈이었다. 전공 성적이 낮아도 '그래도 교직 적성이나 교육철학은 누구보다도 뒤지지 않을 자신 있으니까'라며 자위했던 것도 그 감정적인 꿈 때문이었다는 것을 직면하고야 말았다. 최종적으로 내게 질문을 던졌다. '최상위권 학생이 나한테 질문을 했을 때,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을까?'라고. 자신이 없었고, 꿈을 접고 말았다.
2020년, 개강을 한 지 일주일도 안 됐을 무렵, 마지막 휴학을 한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는다. 외롭고 무서운 시간이었다. 정규 커리큘럼은 6~7월에 시작되기 때문에 내가 시작하는 시점에 이미 다른 수험생들은 이론이 거의 다 마무리된 상태라는 사실로 하여금 큰 압박감을 느꼈다. 빠르지만 빈틈없이, 영악하게 계획을 짜야했다.
11월 초입에 기본 이론 강의를 완강했다. 내게 주는 선물로 코인 세탁소에 가서 이불 빨래를 했다. 포근한 섬유유연제 냄새를 맡으며 잠에 들었다. 집에도 내려갔다. 이틀 정도 있으려고 했는데, 행정법의 어떤 판례가 기억이 안 나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오롯이 즐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튿날 아침 첫 기차를 타고 자취방에 와서 공부를 했다. 집에 내려간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기출문제 풀이에 들어가고, 회독 수가 점점 늘어가면서 전체적인 그림이 완성되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수험 생활의 불안은 어쩔 수 없었다. 공통 과목 260점을 목표로 잡았다. 4월에 있었던 국가직 시험을 시험 삼아 치렀다. 문제를 다 풀고 나니 20분이 남아서, 마킹 시간을 5분으로 잡고 15분 동안 헷갈리는 영어 독해 문제를 붙잡고 있었다. 5분은 생각보다 짧았다. 결국 행정법 5문제를 마킹하지 못한 채 답안지를 제출했다. 어이가 없었다. 중·고등학교 때 마킹 관련 실수를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서, 그리고 인생이 걸리는 시험에 안일하게 수정테이프도 안 가지고 간 나 자신이 우스웠다. 마킹하지 못한 행정법 문제는 1문제 빼고 정답이었다. 1차 커트라인이 410점 정도였는데, 내 점수는 404점이었다. 시간 관리도 실력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고 6월 지방직 시험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시험 전날, 시험장 주변의 독서실 1일권을 끊고, 모텔을 잡았다. 전날 아침 일찍 출발해서 독서실에 도착한 후, 14시간 동안 전 과목을 봤다. 이제 하늘에게 맡기자고 생각하며 독서실을 떠났다. 아침에 택시를 타고 가는데, 기사님이 당신도 운수직 공무원에 계속 도전하고 있는데 불합격한다고 얘기하셨다.
'딸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이 전부 그래요. 나이도 많은데 이제 그만 하라고.'
- '왜요? 기사님 나이가 어때서요.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그렇죠? 그래서 저도 계속 치고 있어요. … 손님은 합격할 거예요. 긴장하지 말고 시험 잘 보세요.'
짧은 대화였지만, 덕분에 긴장도 많이 풀리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시험지를 받고, 한국사를 푸는데 너무 쉽게 나온 것 같아서 커트라인이 올라가겠구나 싶었다. 그다음 교육학개론. 처음 보는 법령이 나왔는데, 나만 모르는 게 아닐 것 같았다. 행정법총론은 국가직 때 쓰라린 아픔이 있기 때문에 더 신중하게 풀었다. 무난했던 것 같다. 그리고 국어. 비문학 1문제가 제출 전까지 발목을 잡았다.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영어를 푸는데, 너무 어려워서 떨어지겠다 싶었다. 마지막까지 순서 배열 문제를 잡고 있었고, 단어 문제도 거의 독해 수준으로 지문이 길어서 힘들었다.
시험이 끝나고 기차에 올라 가채점을 해 봤다. 국어 1페이지에서 3문제가 오답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눈앞이 까매졌다. 다행히 잘못된 가답안이었다. 공식 답안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자취방에 도착했는데도 옷을 갈아입지 못하고, 이어폰도 빼지 못한 채로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답안이 올라오고, 떨리는 손으로 채점을 했다. 국어 전원 정답 처리 이슈가 지나고 난 후, 그리고 조정 점수가 반영된 최종 점수는 총점 413점이었다.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더 이상 꿈이 없어서, 목표가 없어서 무기력하다. 한때 열렬하게 꿨던 교단에 선 내 모습이 이제는 점점 흐릿해져 간다. 이번 학기 복학을 해서 정지용의 <향수>로 수업시연을 마쳤을 때, '그 상태로 학교 수업 맡아도 되겠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범대 수업시연 대회 대표로 추천이 되었을 때, 잠시 그 꿈이 다시 그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대회에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대회 출전을 포기했고, 대본을 달달 외워서 하는 수업시연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애써 꿈이 선명해지는 것을 막았다.
이대로 만족하면서 살라고 한다면 살 수 있겠다. 그러나 자꾸 인간은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말이 떠오른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