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꺼내 보았다. 남주와 여주의 서툰 모습을 통해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간지러운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몇 번이고 다시 찾게 되는 영화이다. 신기한 점은, 거듭해서 볼 때마다 느낌이 새롭다. 처음에는 남주만 서투르다고 생각했는데, 제법 나이를 먹고 보니 여주도 똑같이 서툴렀다. 크리스마스, 타이베이에서 데이트를 하는 두 사람이 기찻길에서 장난을 치며 걷는 장면에서, 페이드 아웃이 될 때쯤 선로를 뛰어넘고 상대방에게 다가가는 것은 여주였다.
요즘 신기한 일이 많이 생긴다. 한때 너무도 소중하게 여기다가, 잠시 잊고 지냈던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그 시절의 '나'라는 사람을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감정을 나누었던 사람과 그것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끝이 좋지 않았던 인연이 대부분이라서, 다시 만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몇몇에게는 저 영화에 나오는 대사처럼, '그때 날 좋아해 줘서 고맙'다고, '나도 그때 널 좋아했던 내가 좋'다고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서로 소중하게 여기던 사이라면, 그 둘 사이의 감정을 먼 훗날 뒤적이는 건 의미가 깊다. 그런데 그 두 사람 모두가 소중하게 여기던 사람, 그리고 그 두 사람을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마치 세 개의 벤 다이어그램이 조금씩 겹쳐진 것 같아서 미처 알지 못했던 나를 제외한 둘 사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에게도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했기 때문에, 얼마나 속으로 앓았을지 감히 가늠해보면 그 깊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너무나 고마웠다. 지금까지 그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해 주어서, 잘 버텨 주어서 고마웠다.
그리고 변함이 없어서 좋았다. 어디서나 당당했고 성실했던 그 모습이, 때 묻지 않고 더 어른스러워진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이제는 지금처럼 멋지게 살아가도록 열렬한 응원을 보낼 차례인 것 같다. 언제나 어제보다 행복한 나날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어디 가서 첫사랑이라고 말하는 누군가가 부끄럽지 않을 테니까.
이 이야기는 언제나, 어디까지나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게 나, 그리고 내가 가장 열렬히 좋아했던 사람에게 주어진 선물이니까.
언제나 멀지만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면서, 행복을 빌어줄 네게도 행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