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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우 Jan 0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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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같은 일을 겪었다.

  수험 생활이 끝나고 무리한 운동을 하다가, 몸 상태가 좋지 않게 되었다. 2022년 초입부터 입원과 수술을 했고, 현재 회복 중에 있다. 일주일 남짓 되는 입원 기간 동안, 소중한 경험을 해서, 여기다 기록해 두려고 한다.


  어제 새벽, 병실 공기가 답답해서 처음으로 휠체어를 타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예전만큼 휴게 공간이 넓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강남 야경도 내려다보고, 간호사 스테이션 주변을 돌았다. 그러다 내 담당 간호사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셔서, 무통 주사가 얼마나 남았는지, 주사 부위가 괜찮은지 여쭤보셔서 대답하고, 조금 더 돌아다니다가 병실로 돌아왔다. 오래간만에 바깥(?) 공기도 쐐서 기분이 전환됐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병실에서 매일 들리고 있던 의료기기가 작동하는 소리가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 내 귀에는 그 소리만 들렸고, 심장 박동 소리가 머리 전체에 울려 퍼져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억지로 잠을 청했지만 심장 박동 소리가 울려 퍼지는 꿈을 꾸고 1시간 만에 깨고 말았다. 결국, 간호사 선생님을 호출했다.

  아까 밖에서 만났던 담당 간호사 선생님께서 오셨다.

  “어떤 소리 때문에 불편하세요?”

  - “(15 정도 말없이 의료기기 작동하는 소리를 기다리다가)  소리요. 저거 기계 돌아가는 소리.”

  신경이 과민한 상태인 나에게만 크게 들리는 소리임을, 나는 몰랐기 때문에 굉장히 횡설수설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내 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귀 기울여 들어주셨다. 어버버버 하고 싶었던 말을 하고 나니, 나도 모르게 ‘아, 내가 너무 예민한가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 “, 근데 제가 지금 너무 예민한  같아요.”

  라고 말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표정을 지으시더니 지금 당장 처방해줄 수 있는 약은 없고, 일단 오늘은 최대한 잠을 자 볼 수 있도록 해 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귀마개’라는 ‘사람 냄새가 풀풀 풍기는’ 처방을 해 주셨다. 세상에, 약도, 주사도 아닌 귀마개라니. 사실 귀마개는 필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간호사 선생님과 몇 마디 대화를 하면서 내 상태를 내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 “ 소리가 들릴 때마다 온몸이 울리고, 심장 박동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요. 이렇게 주먹을 쥐고 있어도 너무 크게 느껴지고 …”

  “환자 분께서 많이 불안하신가 봐요. 어떤  때문에 불안하실까? 통증에 대한 불안일 수도 있고…”

  나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불안을 금방 알아차리고, 기계적인 처방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따뜻하게 내 불안을 쓰다듬어 주셨던 것이다.

  - “그럼 제가 일단 귀마개 끼고  볼게요. 따로 처방은 필요 없을  같아요. 감사합니다.”

  “따뜻하게 껴안고 있을 거라도 드릴까요?”

  - “아니요. 괜찮아요!”

  “3 전에도 엄청 오랫동안 병실에 계셨었잖아요.”

  - “그걸 기억하세요?”

  “기억을   수가 있겠어요? 가장 오래 계셨었는데. 병원에 익숙해지면  돼요. 우리 이제 자주 보지 말아야죠.”

  이럴수가…. 그때도 계셨던 간호사 선생님이라는 걸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잠을 잘 수 없었다. 지난 학기에 들었던 전공 과목 내용이 적힌 이면지라도 꺼내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환자 오진우가 아닌, 인간 오진우는 이런 사람인데, 그런 인간 오진우가 당신 덕분에 너무 소중한 경험을 했다고. 예나 지금이나 너무 감사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선생님 성함도 모르는데, 편지를 써 내려갔다. 1시간 남짓 A4 용지를 빼곡히 채우고 나니, 수액 바늘이 꽂혀 있던 팔에서 피가 터지고 말았다. 다시 담당 간호사 선생님을 호출했다. 라인을 다시 잡아주시면, 편지를 바로 전달할 수 있으니까 일석이조라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선생님께서는 2번의 시도 끝에 새로운 혈관을 찾지 못하셨고, 다른 선생님을 불러 주시겠다고 했다. 사과하는 선생님께 괜찮다고 하며 편지를 건넸다.

  - “선생님,  편지…”

  “편지요? 누구한테 전달해드릴까요?”

  - “선생님이요…!”

  “저요? 감사합니다. 얼른 다른 선생님한테 라인 잡아달라고 말씀드릴게요. 무통 주사도 맞으셔야 하는데, 죄송해요.  읽을게요.

  새벽 4시, 낯 간지러운 편지 전달식이 끝났다. 새로운 혈관을 잡으러 오신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정말 놀랍게도 3년 전에 신규 간호사였던, 내 담당 간호사 선생님이셨다. 오른팔에 4~5번 정도 주삿바늘을 찔렀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혈관을 찾지 못해서, 거의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사과를 하고, 나는 오히려 내 혈관이 야속해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괜찮다고 했던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는데. 그 간호사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한 번에 혈관을 찾아내시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뭐라고 감개무량해졌다.

  늦게 잠에 들었는데, 담당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끝까지 나를 배려해 주셨던 것 같다. 원래 간호사 교대 시간에 침상 커튼을 걷고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전부 들어오셔서 인수인계를 하셨는데, 내 침상에만 간호사 선생님들이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지난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한 것과, 어떤 약을 처방받았는지 등에 대한 사항을 교대한 간호사 선생님께서 알고 계셨다. 아마 자고 있는 나를 깨우지 않으려 따로 인수인계한 것이리라..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맡에 작은 쪽지가 놓여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의 성함을 ‘드디어’ 알 수 있는 쪽지였다.


  우리는 종종, 각박한 사회에서 시민 영웅들에 대한 소식을 접하곤 한다. 그들은 인터뷰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똑같이 말한다.

  “해야  일을 했을 뿐이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 누군가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당신 덕분에 어떤 사람은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었고, 또 미래에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당신과의 소중한 경험을 떠올리며 그 어려움 또한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라는 것을, 살아가다 종종 뒤돌아볼 때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게 있어 영웅은 바로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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