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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희 Mar 12. 2023

카페 코모도, 편안함이 정체성.

위스키와 커피, 재즈음악, 자신의 공간을 내어주는 듯한 편안함의 공간. 

그런 날이 있다. 오랜 친구가 늦은 밤 급히 카톡을 보내며 소개해주고 싶은 장소가 있다며 호들갑을 떠는 그런 날. 그런 장소가 있다.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인테리어 하나하나가 취향을 저격하고 홀린 듯이 테이블에 앉게 되는 장소. 그런 공간이 있다. 잔잔한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벽에는 오래된 영화가 재생되며, 반 고흐의 초상화과 작품이, 그리고 그의 서적이 담겨있고, 바 너머에는 위스키와 코냑이 텅스텐 불빛을 받으며 미소가 멋진 사장님이 커피를 내리는 공간. 


자유롭고 편안한 공간 안에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내어주며,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장소. 누군가가 이런 장소를 추천해 달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장소, 카페 코모도는 나에게 있어 이런 장소가 되었다.




시작은 20년 지기 친구의 늦은 밤 다급히 울리는 카톡 메시지였다. 내가 좋아할 만한 카페를 찾았다며 꼭 가봐야 하는 곳이라고, 꼭 같이 가보자고 거듭 강조하는 친구의 이야기에, 평소에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던 친구인지라 호기심이 동했다. 원래 이런 아이가 아닌데, 이렇게 강하게 이야기를 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약간은 미적지근한 반응으로 '그래 가보자'라고 이야기를 하고 대화를 마쳤었다. 그래도 호기심은 이기지 못하였기에 인스타그램에서 아이디를 찾아서 팔로우를 해놓고 차차 알아봐야지라고 생각을 하고 폰을 덮었(이건 폴더폰을 쓰던 시대에나 가능했던 이야기인데, 왠지 이 글에선 이 표현을 쓰고싶)다.


그리고 잠시 잊고 있었는데, 2일 뒤에 인스타그램에서 알림이 하나 떴고, 확인을 해보니 카페 코모도의 사장님이 내 포스트에 좋아요를 해주셨기에,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지 라는 생각으로 인스타그램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첫 느낌은 요즘 핫하다는 느낌의 인스타그램보다는 개인적이고 사적인 공간의 느낌이 강한 인스타그램 느낌으로, 자기만의 색이 느껴지는 사진과 내용들, 새로운 소식들을 전하며 오가는 사람들의 행복을 빌어주는 담담한 포스트들은 화려하진 않지만 짙은 향기를 풍기는 위스키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실제로 방문해도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코모도의 인스타그램에서 훔쳐온 사진들.


최근에 롱블랙이라는 플랫폼에서 위스키에 관련한 글을 읽으면서, 한 번쯤 위스키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터라 인스타그램을 탐구하면서 흥미가 점점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한때는 바에 가서 칵테일을 마시면서 그곳에 방문한 사람들을 탐구하는 것을 좋아했었다. 저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지, 어떤 사정이 있을지를 홀로 상상하면서 열심히 사람들을 탐구했었던 시절이 있었고, 좋아하던 바가 사라지면서 그러한 취미활동도 자연스럽게 멈추게 되었는데 그 시절의 좋았던 추억이 기억의 저편에서 다시금 수면으로 올라오는 그런 반가움의 느낌이 든다.


동기는 만들어졌으니, 좋은 사람과 함께 방문하기로 하고 다시금 일상의 시간을 흘려보내며 타이밍을 기다린다. 그러던 중, 어느 화요일의 이른 저녁, '은'의 연락이 당도하였고 어디를 갈까 고민하던 중에 은근슬쩍 이곳을 꺼내어본다. '20년 지기 친구의 강력한 추천과 위스키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 겸 바(bar)라고, 친구가 강력추천했는데 가보지는 않았지만 느낌이 괜찮은 거 같다'라는 부연설명까지 참고해서, '뭐 좋아요 한번 가보죠!' 흔쾌히 가보자는 이야기에 나름 기대감을 갖고 향한다. 





카페는 전주시청 근처에 있는 골목라인, 지하 1층에 위치해 있었다. 고즈넉한 전주시청 특유의 밤 골목 분위기, 그 공간 가운데 잔잔히 빛나는 간판. 그곳에 코모도가 있다. 신경 쓰지 않으면 휙 지나갈 수도 있을만한 그런 소소한 장소, 입구를 지나치면 바로 거울이 달린 화장대가 위치하고 있고 (나가기 전에 자신을 점검하라는 깊은 배려일까), 코너를 돌면 바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좌우에 반겨주는 (인공적인) 자연의 맛을 넘어 코모도의 입구를 당도하면 어디선가 본 듯한 인물의 사진이 걸려있다. 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 진정한 코모도의 풍경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펼쳐진다.


공간을 가운데로 나누는 바 사이로 재즈 음악이 잔잔하게 깔려있고, 바 너머로는 코냑과 위스키, 그리고 커피머신이 놓여있으며, 반 고흐의 사진과 그림들이 벽에 조곤조곤 걸려있고 그 사이사이에 부모님의 사진과 친구분의 사진들이 걸려있는(알고 봤더니 파트너) 그러한 공간. 


마치 사업장이라기보다는 찾아올 단골들을 위해 자신의 공간을 내어준 듯한 그런 느낌은, 이러한 공간의 구성과 배치가 바로 코모도 사장님의 정체성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단골들을 위해 한편에 놓아진 피아노. 피아노를 쳐도 된다는 허락하에, 똥땅거리며 이루마의 피아노연주곡을 치고 나니, 답가로 두곡의 노래를 연주해 주시는 사장님의 마음까지. 또한, 호기심이 많은 나의 질문세례에도 위스키와 코냑, 커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시고 내 입맛에 맞는 위스키를 추천해 주시는 센스까지. 


나뿐 아니라, 이곳을 찾은 모든 이들 역시 그러한 감정을 느꼈던 게 분명한 흔적들이 곳곳에 있었다. 반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작품을 직소퍼즐로 만들어서 조공을 한 단골의 이야기와 바 위에 놓인 반 고흐의 책 뒤편에 포스트잇으로 붙여진 단골의 짤막한 기록, 입구에 붙여진 사진들까지. 이곳을 방문했던 이들의 흔적이 군데군데 묻어있었고 우리 역시 그 역사의 가운데 작은 흔적을 방문할 때마다 남기는 것이 아닐까.


어떠한 생각으로 이 공간을 열었고, 만들어 나가는지 묻지 않아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그러한 공간. 나는 단 한 번의 방문만으로도 여기에 단골이 될 수밖에 없다는 체념을 하고 말았다. 일방적인 짝사랑의 빠진 느낌을 사람이 아닌 공간에서 느끼게 된다는 건 약간은 생경스럽지만. 그런 설렘의 감정을 갖고 바에 앉아서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면 또다시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에 빠지게 된다.


'친구 추천으로 왔어요!'

'어떤 친구분인지, 혹시 사진이 있으신가요?'

'아, 많은데 안티밖에 없어서 보여드려도 되는지, 알아보실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 친구예요!'

'아! 기억나요, 개발자분이셨는데 그럼 혹시 개발자이신가요?'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 대상을 위해 노력하고 마음을 쓴다는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대상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해선 내 마음의 공간에 그 사람이 들어갈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그 행위는 서로 간에 이루어질 때 가장 아름답다.





나는 평소에도 말씨가 좋은 사람들을 좋아하고, 화려하지 않더라도 마음을 얹는 그러한 화법을 쓰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코모도의 사장님은 방문한 손님을, 손님으로 왔지만 결코 손님으로 떠나지 않게 만드는 말의 온도를 지닌 사장님(단골 제조술사)이었다. 눈 맞춤과 대화, 한잔 한잔이 나올 때마다 보여지는 움직임은 허투루 쓰이지 않고 섬세함을 바탕으로 배려가 묻어나는 움직임이었고 손님이 아닌 사람으로 대해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만들었기에 나 역시도 편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고 그날 우리는 사장님과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와 여럿 위스키를 나누게 되었다. 


그날은 운이 좋게도 시작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은'과 내가 공간을 빌린 것처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며, 적당한 음악과 적당한 이야기, 그리고 위스키와 코냑의 향취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밤으로 기억될 수 있었다.  인생도 그렇더라, 기대하지 않은 가운데 만나는 순간에서 만들어지는 인연과 이야기들이 기대이상으로 애틋하고 고맙고 오래갈 수 있다는 것이, 살아가는 동안의 즐길 수 있는 작은 행복이 아닐까. 


그날의 온도는 서늘했지만, 따뜻하고 온화하였고, 부드러운 시간이었기에 그러한 감정을 담아 이러한 기록을 남긴다. 또한, 공간의 감동을 그대로 전하지 못하겠지만 전해지리라는 마음을 담은 영상까지 담아서 올려본다.


*이날 이후로, 우리는 5일 동안 4일을 가게 되었고 4종류의 맥주와 10종류의 위스키, 코냑 1잔, 럼 1잔을 마시게 되었다. 

** 혹시 기회가되서 방문하신다면, 브런치 글 보고왔다고 한마디씩 해주시면 저의 기분이 좋습니다! (?)






카페 코모도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jeonju_comodo/


매주 월,화 휴무

평일 pm 7 - am 1 

주말 pm 7 - am 2

* 진상은 쫓겨날 수 있으니, 서로간에 매너와 배려를 지키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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