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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cosong Sep 22. 2015

화려한 옷을 지어 입는 사람들

산 마테오 익스따땅,  과테말라-San mateo ixtatan

20140915 고도가 점점 높아질수록 날씨를 가늠하기 힘들다. 전체적으로 구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우리는 그렇게 상상 속의 인디헤나 마을 산 마테오 익스따땅san mateo ixtatan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험준한 산길, 험난한 여정이었다. 나사가 수십 개는 빠졌을법한 낡은 치킨버스가 투덜투덜거리며 비포장도로를 올라가는데 오를 만큼 올랐어도 계속 올라간다. 아니, 이 높은데 정말 사람의 흔적이 있기나 한 거야? 하는 생각이 오르면서도 수십 번은 들었지만, 간간이 보이는 표지판들이나 종종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걷는 인디에나 한두 명이 우리가 잘 가고 있음을 일러준다.




1년 전, 마야 후손의 옷 한 장에 매료가 되어 집을 떠난지 며칠 만에 여기 사는 사람들 말곤 어느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이 험준한 산속의 마을에 우리가 와 있다는 것이 아직 믿기지가 않는다. 며칠째 문명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한 우리였기에 몸과 마음이 쇠할 대로 쇠하다. 목적을 달성했다는 기쁨보다 허기가 먼저 찾아왔다.


마을에서 제일 고급스러워 보이는 식당을 찾아가 며칠 동안 먹었던 식사에 비해선 나름 호사스러운 저녁식사도 했건만, 허기도 뭔가 허한 마음도 채워지질 않는다.






술 취해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 정비되지 못한 하수시설 때문에 발목을 금세  휘어 감는 구정물, 마을 여기저기에 독립기념일 큰 명절을 노리고 판을 벌린 도박꾼들. 또도스 산토스에서 만났던 눈이 맑고 친절한 언어를 쓰는 인디헤나들을 만나기가 쉽지가 않았다. 술과 흥해 취해 흩어진 시선들이 자꾸 우리에게로 모인다. 어떤 술 취한 인디헤나는 시장 이 끝에서 저 끝가지 우리를 쫓아오면서 아무 내용 없는 시비를 걸어오기도 했다. 우리는 이 마을 손님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지 낯선 이방인이 되어버린 듯 했다.  그러나 누굴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위삘 하나만 보고 이 마을을 우리 멋대로 환상 속의 산속 인디 헤나 마을로 상상해버린 우리의 잘못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문득 과테말라 시티에서 만난 목사님 한분께서 인디헤나의 자치적인 치리방식인 '린찌'에 대해 말씀해주신 것이 떠올랐다. 린찌는 아주 깊고 깊은 산 속의 인디헤나 마을, 그러니까 바로 여기 같은 마을일 것이다. 그런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잘못을 심판하고 벌을 주는 방식인데, 인디헤나 마을 안에서 누군가가 잘못을 하면 그것을 과테말라 정부가 치리하지 않고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치리해 중죄에 대해서는 때려서 죽이는 경우까지 있다는 무시무시한 정보였다. 우린 더 이상 술 취한 마을 사람들과 힘을 빼고 싶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숙소로 돌아와 저녁 7시도 되기 전에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 맞아 죽을까 봐 무서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린찌제도는 그냥 때마침 이때 생각 난  것뿐이었다.







잠들기 전 창가에 서서 커튼을 조심스럽게 걷어본다.

술 취한 마을 사람들의 고함도 덮을 만큼 어마어마한 안개가 온 마을을 뒤덮어버렸다.






20140916 맑음. 거짓말처럼








아침이 밝아 오니 마을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생동감을 되찾았다.

어젯밤 늦게까지 술과 도박에 취해 우리의 심기를 건드리던 시꺼먼 인디헤나 청년들과 아저씨들은 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아직까지 잠들어 있는 모양이다. 낮을 더 좋아라 하는 예쁜 아이들과 아침잠이 없는 노인들, 그리고 일찍부터 부지런히 빨래터를 찾은 아낙들만 깨어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특별할 것 없는 마을의 모퉁이 길을 걷다가 어느 지점에서 발길이 멎는다. 저 멀리 우리가 걸어온 길이 보인다. 아니 산들이 보인다. 저 아득한 거리를 둘이서 손 잡고 여기까지 왔다는 게 참 놀랍고 신기할 뿐이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돌아갈 길도 바로 저 길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쯤 되어선 목적지가 여행인 건지 아님 그 여정이 여행인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이 마을의 이 '맑음'은 오전부터 반나절뿐이라는 것. 다시 오후가 되고 저녁이 되고 밤이 되면 우리는 엄청난 기압과 검은 시선들에 눌리고 말 것이다. 서둘러 걸으며 마을의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끔은 환상은 상상에게 맡겨두는 것도 지혜라는 것도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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