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알반과 미틀라 유적지, 와하까, 멕시코
20141009-20141010 여행하기엔 딱 좋은 날씨. 하지만 유적지 방문할 때엔 모자와 선크림을 꼭 잊지 말 것. 잊으면 우리 부부처럼 된다는 거.
메소 아메리카의 대표적인 사뽀떽zapotec 문명의 유적지 두 곳, 몬테 알반 monte alban, 그리고 미틀라mitla를 이틀에 걸쳐 찾는다.
먼저 9일 이에르베 엘 아구아 hierve el agua 투어와 묶여있는 미틀라mitla를, 그리고 다음날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몬테 알반 monte alban을 방문했다. 유적지는 사전에 깊은, 아니 혹은 대충이라도 공부해 놓은 것이 없다면 확실히 투어로 함께 가는 편이 좋다. 라틴아메리카 문화와 역사를 전반적으로 다룬 책을 열심히 읽으면서 여행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찾아가서 유적, 유물, 미술품들과 마주했을 때 그 방대한 양에 눌려 둘이 덩그러니 서서 무엇을 먼저 봐야 하나,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 하며 눈을 꿈뻑 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 1
몬테 알반 monte alban 가는 길
몬테 알반으로 개인적으로 가기 위해 고기시장이 있는 20 de nobiembre에서 가까운 까이예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미나 calle francisco javier mina로 걸어 나왔다. 길에서 만난 경찰 아저씨께 물어보니 리베라 델 앙헬 호텔 rivera de angel 앞에 가서 버스를 타라고 하시는데, 갑자기 그 호텔 앞에서 200페소 정도의 금액을 지불하고 몬떼 알반을 갔다는 한 블로거의 글이 생각났다. 이 번뜩이는 기억이 문제가 될 줄이야. 200 페소면 우리나라 만 오천 원이 넘는 돈인데 그 블로거는 바가지를 쓴 것이니 거긴 아닐 것이라 생각하여 쿨하게 방향을 틀어 몬테 알반 monte alban이라 쓰여진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대중버스를 타게 되었다. 한 사람당 6페소씩밖에 안 받기에 뭔가 불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몬떼 알반 monte alban이라고 쓰여 있는데 설마 근처까진 가겠지 하고 생각하며 올라가는 내내 버스 창밖으로 펼쳐지는 와하까 oaxaca의 풍경을 여유 있게 누렸다.
버스는 신나게 오르다가 산 중턱 종점에 도착했다.
기사에게 물어보니 두 번째 손가락을 꼬불거리는 산길을 가리키며 저 위로 올라가면 된단다. 한 이십 분 걸으면 나오겠지 하며 마음을 단단하게 먹고 걷기 시작한다. 걷다가 한 아가씨를 만나 몬떼 알반 monte alban을 가려는데 얼마나 걸리느냐 물으니 모자도 없이 덜렁거리며 걷고 있는 우리 부부를 굉장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이 산 하나만 넘으면 된다고 한다. 20분 정도 걸으면 된다고 말하는데 전혀 신뢰할 수 없다. 그 자리에서 끝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길고 긴 길을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이 산 하나 넘는데 20분 걸린다는 것은 허경영 의원에게나 가능한 이야기 일까.
아무튼 방법이 없기에 일단은 걸었다.
아스팔트에서 아지랑이 뚫고 올라오는 소리, 잠자리만 한 벌이 날아다니는 소리가 ‘멕시코 납치 사건’이라는 단어와 함께 머리 근처를 빙빙 돈다. 싸구려 선크림이 이마에서 땀과 함께 녹아 줄줄 흘러내린다. 동행하는 사람이 남편이 아니었다면 민망함과 막막함에 정말 울고 싶었으리라.
마음의 긴장을 풀기 위해 점프샷도 찍어 본 다.
안 풀린다.
(엘살바도르라는 무시무시한 나라에 살아서 치안에 대한 염려가 큰 새댁임을 염두 하며 읽으셔야 해요. 이 길은 무더운 더위에 걷기엔 먼 길이지만 종종 자전거 하이킹 코스로 이용하기도 한다더군요. 하지만 결론은 걷는 것은 무모한 일)
그렇게 30분을 걸어도 걸어왔던 똑같은 길만 나타난다.
이건 아니다, 이러다가 뉴스에 나오겠다 싶어 지나가는 차를 향해 팔을 흔들었다.
다행히 마음먹은 순간 번쩍이는 하얀 차가 백마 탄 예수님처럼 우리 앞에 차를 세웠고 푸근하게 생기신 멕시코 아주머니께서 우리를 태워 주셨다. 원래 이 길은 몬떼 알반 monte alban으로 가는 여행사 차량이나 관광지행 버스 말고는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옛날 길인데 새로 난 길이 지금 공사를 해서 오늘 이 길로 들어섰다고 하신다. 마음 넓으신 아주머니 아니었으면 오늘 한 시간 이상을 모자도 없이 땡볕 아래서 등산했을 뻔했다. 아주머니는 불쌍하게 그을린 까만 동양인 부부를 몬떼 알반 monte alban 매표소 바로 아래 계단까지 바래다주시고 멋지게 유턴을 해 되돌아 가셨다. 내리는 순간까지 하나님이 보내주신 사람이라며 축복의 말, 감사의 말을 마음껏 건넨다. 차로 왔으니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걸었으면 온 만큼은 더 걸었어야 했을 거리이다. 역시나 우리 부부는 어딜 가든 축복받는 사람들.
표를 끊기 전, 매표소 앞 커다란 소나무 아래 쓰러지듯 앉은 신랑의 무릎 위에 누워버렸다.
시원한 바람과 향긋한 송진 냄새를 맡으며 누우니 좀 살 것 같다. 이 시원한 기분을 기록하고 싶어 셔터를 누른다. 한 십분 뒤에 다 쉬었다 싶어 일어나려니 엉덩이와 허리에 송진이 끈저억 하게 묻어있다.
몬떼 알반 도착했는데 이깟 송진이 대수냐 하며 털어버리고 입장.
# 2
라틴 아메리카 최초의 거대 도시 몬떼 알반 monte alban
넓어도 너무 넓은 몬떼 알반 monte alban유적을 보기 전 박물관부터 들어갔다.
몬떼 알반 monte alban의 시간은 기원전 7세기경 시작해 15세기까지. 굉장히 길다. 나이가 이렇게 많으니 그 안에 묻힌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을까. 기원전 7세기경 생겨 이 높은 지형에 이미 자리를 잡아 문명을 쌓아 올린 사포 떼까 zapoteca들의 흔적들로부터 시작해 수많은 세월을 거쳐 13-14세기경 믹스텍 문명이 이곳을 점령해 그들의 묘지로 삼게 될 때까지 전문가들은 1~5기 정도의 시대로 나누어 몬떼알반 monte alban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시기별로 다양한 유적들이 발굴되어지고 있는 곳이라고.
지금으로부터 100년만 앞으로만 생각해도 다 아득하게 느껴지는 나이기에 마음을 비우고 감상하기로 했다.
들어서자마자 몬테 알반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실제론 처음 보고 놀란 그 규모보다 두 배는 더 크다. 카메라의 파노라마 기능으로도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페루의 마추픽추에 다녀온 신랑 말로는 어림 짐작으론 여기 몬떼 알반이 더 크게 느껴진다고 한다. 한 시간 정도 둘러보면 넉넉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무리 걸어도 끝이 안 나온다. 이렇게 커다란 유적지인 줄 알고 왔으면 이 뜨거운 태양 아래 3시간 정도를 머무르며 공부했을지도 모른다. 어쩔 땐 모르는 게 약이라고 말도 안 되는 위로를 하며 봄 소풍 따라 나온 푸들들 마냥 신나게 사진을 찍으며 놀았다.
몬떼 알반은 이미 1500미터가 넘는 고지대인 와하까 시내에서도 차로 30-40분 정도 올라와야 하는 높은 산 위에 위치해 있는데 차나 굴삭기도 없었을 그 시절에, 게다가 도구라고는 돌망치가 전부였을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거대한 도시를 세울 수 있었을까? 그 왕은 얼마나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고대 사람들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훨씬 더 지혜롭고 영리했으리라.
# 3
사포텍의 종교적 중심지, 미틀라
몬떼알반 monte alban을 보기 하루 전, 이에르베 엘 아구아 hierve el agua를 가기 위한 투어에 포함되어 있어 가이드와 함께 미뜰라를 다녀올 수 있었다. 미 뜰라는 몬떼 알반에서 살던 사뽀떼까들이 믹스텍 문명의 압박으로 인해 몬떼 알반을 버리고 이동하면서 인신공양을 비롯한 그들의 ‘제사 의식’를 위하여 새롭게 세운 종교적 중심지라고 한다. 규모로 치자면 어마어마한 몬떼 알반의 크기에 결코 비할 바가 아니지만, 안팎 디자인만으로 따지면 몬떼 알반이 따라잡을 수 없는 섬세함을 가지고 있는 유적지가 바로 이 미틀라다.
손바닥보다 작은 네모반듯한 직사각형 돌멩이를 수만 개 쌓아 올려 만든 건축물. 현대에 이르러 그때 그 건축법과 비슷한 방법으로 복원을 시도해 보았지만 시간도 너무 많이 들고 인력도 너무 많이 들어 그냥 시멘트로 발라 그 형태만 복원해 놓았다고 한다. 이 설명을 듣지 않고 내부 구조를 봤을 땐 정교하게 쌓아 올려진 부분이 복원해 놓은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정 반대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몬떼 알반과는 달리 이러한 섬세하고 균형미 넘치는 고도의 기술을 자랑하는 미틀라 유적의 디자인은 올려 질 시기에 이곳 미틀라가 사포텍을 정복한 ‘미스텍’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틀라를 보고 난 뒤 오아하까 시장으로 나오니 여기저기서 미틀라의 유적의 모자이크를 본떠 만든 직조물들을 만날 수 있다. 그냥 에스닉한 무늬인 줄 알았는데, 요렇게 지그재그 하게 생긴 게 미틀라 무늬였구나. 별거 아니지만 하나 배워서 기분 좋다.
미틀라mitla가 다른 유적지와 구별되어지는 또 다른 매력은 미틀라와 함께 나란히 서서 잠잠히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스페인 정복 시기의 성당을 미틀라 유적과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성당은 스페인 사람들이 이곳에 침략해 사포테까의 미틀라 건축물 일부를 허물고 그 터 위에 새로운 건축물을 올려놓은 것인데 실제 그 성당 건축에 쓰인 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뜰라 건축의 모자이크 무늬 벽돌이 사이사이 쓰인 것을 찾을 수가 있다. ‘아, 정말 아깝다.’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래, 이 뒤섞인 모습 그 자체가 라틴 아메리카의 눈물겹게 찬란한 역사지 라는 생각이 든다.
유적지에 살았던 과거의 사람들을 간접적으로 만날수록 드는 생각은 그렇다.
나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교과서에서 배워온 나는 단 한 번도 발견을 침략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발견이라 함은 그 땅의 이전 사람들의 문명을 마치 미개한 것으로 간주하여 ‘침략’이라는 단어를 쓸 필요가 없기에 쓴 것처럼 느껴지는 말 아닌가. 하지만 지식 없는 나 같은 아줌마도 이 정교한 돌멩이 예술품만 보고도 1492년 스페인 사람이 처음 만난 인디오들은 ‘미개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스페인이 인디헤나의 땅을 침략한 사건에 대하여 ‘발견’이란 말을 쓰는 교과서나 문서 등을 발견할 때에는 오늘 본 정교한 돌멩이를 누구보다 섬세하게 쌓아 올리던, 오늘날의 달력보다 더 정확한 달력을 이미 쓰고 있었던 결코 미개하지 않았던 그들을 한 번 더 생각해 보아야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 라틴 아메리카 땅에는, 알면 알수록 신비한 과거의 사람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