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혜더하기 Nov 19. 2021

돈을 버는 이유

가난해도 빛나는 순간들이 있다. 

감지 못해 기름진 단발머리에 허름한 옷을 입은 친구가 있었다. 깡마른 몸에 얇아진 옷감이 펄럭거려도 추레하지 않았다.열 살짜리들에게도 가난은 놀림거리였지만 그 친구를 놀리는 아이는 없었다. 꼿꼿하게 자세를 잡고 앉아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발표하는 친구를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한 번은 학부모 참여 수업을 마친 후 선생님을 만나고 온 엄마에게 장난 섞인 잔소리를 들었다. 선생님이 그 친구의 엄마에게는 ‘너무 잘하고 있다, 아이가 똑 부러진다’며 칭찬 일색이었단다. 바로 다음 인사를 한 엄마에게는 내가 ‘썩 잘하고 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엄마는 며칠을 썩 잘한다는 말로 나를 놀렸다.     


  당당한 모습에 끌려 친구와 가까워졌다. 친구 집에도 놀러 가게 되었다. 우리 집이 달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인 줄 알았는데, 친구 집은 더 좁은 골목을 구불구불 올라갔다가 다시 어두컴컴한 곳으로 내려갔다. 친구는 대문이 떨어진 네모 틀을 넘어가며 엄마를 불렀다. 친구의 엄마는 간당간당 붙어있는 방문을 열며 나오셨다. 두 개의 방 사이에 할머니 집 대청마루 같은 공간이 판자로 간신히 붙어있다. 친구와 그곳에 앉자 친구 엄마는 날 보며 활짝 웃으셨다가 금세 어두워지셨다. “어쩌나. 마땅히 줄 게 없는데.” 말끝을 흐리시더니 밥과 김, 김치를 내오셨다. 그리고 우리 옆에 앉아 김을 놓고 밥을 얇게 깐 뒤 김치를 올려 둘둘 마신다. 친구는 “와! 김밥이다!”하며 좋아했고, 친구 엄마가 김밥을 썰어 내는 대로 집어 먹는다. 맛있다며 내 입에도 넣어준다.      


  맛있었다! 

  분명 김밥을 싸는 모습을 보았다. 김 위에 밥, 그리고 김치 그대로 둘둘 말아 낸 것을 바로 먹었다. 집에 와서도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엄마에게 요리법을 꼼꼼히 일러주며 만들어달라 했다. 엄마는 김치만 넣은 김밥을 만들고는 영 시원찮은 내 반응에 알록달록 김밥도 만들어주셨다. 나는 그 맛이 아니라며 엄마에게 ‘썩 맛있다’라고 복수했다. 지금도 친구네 김치김밥을 생각하면 입안에 침이 고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친구가 더 멋지게 기억된다.      


  가난하면 불행할까? 

  그럴 수 있다. 지독한 가난으로 투병 생활을 포기한 채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도 보았고, 열악한 환경이 만든 사고로 어이없이 자녀를 떠나보낸 이도 만났다. 가난이 생존 자체를 위협할 정도라면 행복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돈이 많아 행복할까?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100대 갑부도 보통 시민보다 조금 더 행복한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사회안전망이 탄탄한 선진국일수록 부가 삶의 만족에 미치는 영향은 수치화할 수 없을 정도로 미비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돈 그 자체보다 돈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돈을 중요시할수록 자신의 소득과 관계없이 늘 부족감을 느낀다.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은 만족할 수 없다.     




  생존을 위해 돈을 번다. 가끔은 더 좋은 집에 살고, 더 좋은 차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딸에게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고 싶다. 하지만 그렇지 못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딸에게 좋은 것이 꼭 부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채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말해주려 한다. ‘썩 잘하는’ 나는 엄마가 되어 당당하고 똑 부러졌던 친구를 기억한다.          

작가의 이전글 꼭 맞는 위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