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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더하기 Apr 02. 2020

남편이 아니라 내 편

이혼 위기 극복기

   나에게도 이혼의 위기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근근이 살아가는 살림에 사업으로 큰 빚을 진 시아버지의 상황은 부담이 되었다.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 대출을 받아 시아버님을 도왔다. 딸을 돌보아주시는 친정 부모님께는 변변한 사례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이따금 봉투를 찔러 주셨다. 나는 친정에서 죄인이 되어가는데, 남편은 효자가 되어가는 것이 묘하게 약이 올랐다. 게다가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술자리로 밤을 지나 새벽 시간 귀가할 때면 가슴속에서 천 불이 올라왔다. 나의 잔소리는 늘어가고 남편의 귀가 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귀가 시간이 늦어질수록 내가 속상할 일들도 늘어갔다. 


  ‘이대로는 살 수 없다’ 선언을 하고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지칠 대로 지친 마음이 반, 경각심을 주기 위한 협박이 반. 하지만 남편은 그러자 했다. 당황한 나는 그럼 양가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당장 진행하자고 큰소리를 쳤다. 남편은 또 그러라고 했다. 나는 지지 않고 그럼 너는 시댁에 전화해라, 나는 친정에 전화하겠다고 하며 남편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남편은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시댁에 전화했다. 나도 친정에 전화했다. 너무 순식간에 모든 일이 일어났다. 오기가 생겨 멈출 수가 없었다.



 

 남의 이혼 이야기는 너무 쉽게 듣고, 말하였는데. 나의 것이 되니 지옥이 따로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집안일 하는 로봇처럼 움직여 출근 준비를 하고 딸을 유치원에 보낸다. 마주치는 직원마다 억지웃음으로 인사를 하고 혼자 사용하는 상담실로 들어가 앉는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지만 한명 한명 내담자를 만나 집중 하다보면 정신이 조금씩 돌아온다. 아침에 헤어진 딸 생각이 난다. 부모님 생각도 난다. 이리저리 생각을 곱씹다 보면 결국 내가 미워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무표정한 집안일 로봇이 되어 있으면 남편이 들어온다. 냉기가 감돈다. 내가 미웠던 만큼 남편이 미워진다. 하마터면 내가 먼저 사과할 뻔했다며 다시 전의를 다진다. 


  이혼 서류를 제출하고 숙려기간 동안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에 가까운 교수님들께 조언을 받았다. 한 교수님께서는 내가 개인분석(상담자가 되기 위해 상담을 통해 자신을 분석하는 것)을 받았던 교수님께 상담받기를 권하셨다. 바로 시작된 개인 상담에서 교수님은 대뜸 집단상담을 권하셨다. 5박 6일 동안 함께 먹고 자면서 진행하는 마라톤 집단상담. 참가비도 큰 액수일뿐더러 집에서는 거리가 먼 산속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무엇이든 해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은 마음에 그곳으로 향했다.


  참석할 때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무슨 말을 하든 횡설수설이었다. 집단상담자로 참석한 교수님도 저 사람이 원래 저런 사람이 아닌데 하시며 당황하셨다. 20명 가까운 집단 원들에게 핀잔을 들었다. 내가 왜 이곳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지, 어쩌다 내가 이렇게 망가졌는지 한심하기만 했다. 더 이상의 핀잔을 듣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처음에는 잘 들리지도 않았다. 여기까지 온 거, 잘 쉬었다나 가자는 마음이 들었다. 쉬는 시간마다 조용한 산속을 산책하며 오롯이 산을 느꼈다. 새소리, 물소리, 나무와 흙의 냄새, 살짝살짝 목 뒷덜미를 스쳐 가는 바람.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면서 다른 사람이 보이고 들렸다. 


  나와 한방을 쓴 1살 위의 언니는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골드미스이다. 돈도 많고, 능력도 출중하여 골드미스. 부모님과 사는 서울의 단독주택은 자신의 명의로 되어 있으며, 이후 상속받을 유산도 많다. 효녀인 언니는 아직 결혼하지 못했다. 그동안 만났던 남자들은 자신의 부모님께 잘하지 못할 것 같아 모두 헤어졌단다. 자신의 이상형을 만나면 재산도 모두 공동명의로 하고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싶다고 한다. 이상형을 들어보니 꼭 우리 남편이다. 이 언니랑 결혼했으면 마누라 눈치보며 시댁을 챙기지 않아도 되었을테고, 사랑받는 사위가 되었을 텐데.


  신소재 개발부에 있다는 40대 아저씨는 회사생활에서 어려움을 느낀다. 자신은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정을 갖고 일을 하는데 번번이 진급을 하지 못한단다. 회사 동료들과의 관계도 퍽퍽하다. 집단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문제를 확인해가는 과정에서 한 집단원이 쓴소리를 날린다.

  “회식에 잘 참석도 안 하고, 어쩌다 사적인 자리에 합석하면 적어도 자신이 먹은 돈은 내어야지, 조용히 사라지면 누가 좋아한답니까? 진급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나는 내게 할 말인 듯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남편의 모든 술자리에 눈을 흘겼던 내 모습. 술자리에서 한 번이라도 결제를 한 후에는 곱절로 잔소리를 들었던 남편. 이후에 이어지는 질타나 조언 중에서도 내가 아픈 말들이 많아 그 자리가 괴로웠다.


  20명 가까운 집단원들이 풀어 놓는 저마다의 이야기. 한 명, 한 명의 사연이 다 나를 빗대어서 하는 이야기 같았다. 친정 부모님이 사기를 당해 오갈 곳이 없는데 돌아보지 않는 남편이 야속한 부인의 이야기. 자신이 아무리 예쁘게 꾸미고, 요리를 배우고 온갖 노력을 해봐도 냉랭한 남편 때문에 좌절한다는 사업가의 아내. 자식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지만, 자식에게는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았다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부인이 늘 뚱해 있어서 불편하지만, 자신이 선택했으니 어쩌겠냐던 새신랑.


  집단상담이 막바지를 향해 갈수록 나에게는 미움보다는 미안함이 더 커졌다. 이 마음이 사그라들기 전에 전해야 한다. 나는 하루의 집단상담이 마치는 밤 남편에게 전화했다. 숨소리만 쌕쌕 내다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미안해. 내가 그동안 너무 했지. 미안해. 저쪽에서도 대꾸 없이 숨소리만 쌕쌕 들린다. 조용히 숨소리를 듣고 있는데, 이내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긴장했던 마음이 가라앉고 미안함이 더 커진다. 우리는 무엇이 미안한지, 고마운지 얘기할 것도 없이 그냥 함께 울었다. 남편에게 지금 당장 친구들을 불러모아 거하게 술판 한 번 벌이고 시원하게 쏘라고 했다. 그동안 너무 쥐어짜서 미안하다며.


 다음날 점심시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식사를 마친 후 산속을 걷고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잠깐 얼굴을 볼 수 있냐며 이 앞까지 와 있단다. 차로 들어 올 수 있는 곳까지 한달음에 뛰어갔다. 그곳에서 만난 우리는 다시 펑펑 울었다. 그래, 내가 너무했지. 내가 부족했지. 속이 좁았어. 미안해. 누가 말하는지, 했던 말인지 알 수도 없게 뒤엉킨 채 서로를 위로했다. 


  눈이 퉁퉁 부어 들어간 집단상담장에서는 나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나는 집단상담을 오기 전부터 이곳에서 남편을 만난 이야기까지 풀어놓았다. 모든 집단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집단상담자는 남편에게 가장 큰 불만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나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상담자는 내가 진정으로 상대방에게 미안함을 느꼈고, 진정으로 상대방을 용서한 것 같다고 했다. 모든 집단원들이 손뼉을 쳐주었다. 




  지금도 남편 때문에 울컥할 때가 많다. 어떨 때는 뒤통수만 봐도 저절로 왠수라는 말이 입안을 맴돈다. 하지만 몇 해나 지난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한 마음이다. 힘든 과정에서 상처는 많았지만 그만큼 더 굳건해졌다. 점점 남편에서 내 편이 되어간다. 더 내 편이 되어달라고 핸드폰에 이름도 내 편으로 저장해두었다. 가끔 속을 썩이지만 결국은 내 편인 사람. 엄마도 아빠도 형제도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내 편이지만, 당신은 내가 선택한 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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