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이 돌아오는 순간이 회복의 시작

[회복탄력성] 우울할 때 감정보다 먼저 사라지는 것

by 지혜더하기

우울이 정말 무서운 건 슬퍼서가 아니다.

느끼는 능력 자체가 꺼지기 때문이다.


예전엔 그렇게 예뻐 보이던 길가의 꽃이 그저 색깔 있는 물체로 보인다.

좋아하던 노래는 소음처럼 고막을 때린다.

밥을 먹어도 맛을 모르겠고, 반가워야 할 사람 앞에서도 아무 감정이 올라오지 않는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무쾌감증(anhedonia)'이라고 부른다.


즐거움을 느끼는 스위치 자체가 꺼져버린 상태다.


예전엔 좋아하던 것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뭐가 좋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의 눈동자에는 공통된 것이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

'왜 나는 아무것도 못 느끼지?' 하는 자책이다.


하지만 이건 나약해서가 아니다. 정반대다.



감각이 문을 닫는 건, 당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다


고통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면 우리 뇌는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더 이상의 상처를 막기 위해 모든 감각의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다.


요한 하리는 이 상태를 '연결의 상실'이라 설명했다.

나를 지키기 위해 세상으로 향하는 안테나를 접어버린 것.

일종의 마음의 동면이다.


무서운 건 본인이 잘 모른다는 점이다.

'원래 이런 거 아닌가.'

'나는 원래 감정이 별로 없는 사람이야.'

그렇게 넘긴다.


감각이 닫혔다는 걸 알려면 감각이 열려 있어야 하는데, 이미 닫혀 있으니 인식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상태는 오래 방치된다.

자책만 깊어진 채로.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를 짚고 싶다.

감각을 닫은 건 고장이 아니라 보호였다.

그때는 그렇게라도 살아남아야 했다.

지금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그 전략이 성공했다는 증거다.



회복은 결심이 아니라, 감각의 귀환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회복을 영화처럼 상상한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에너지가 샘솟고, 모든 게 해결되어 환하게 웃는 장면.

하지만 오래 이 일을 하며 지켜본 실제 회복의 풍경은 훨씬 작고, 조용하다.


길을 걷다가 분수대의 물줄기가 반짝이는 게 눈에 들어온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에 나도 모르게 발끝으로 박자를 맞추고 싶어진다.

갓 구운 빵 냄새에 아주 잠깐 허기를 느낀다.


몇 달째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사람에게 이건 신호다.

아스팔트 틈새를 비집고 올라오는 이름 모를 풀꽃처럼, 생명력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릴케는 말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느끼는 것이라고.

다시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건, 당신의 존재가 세상과 다시 연결되고 싶다는 신호다.



그 작은 떨림을 놓치지 않는 것


이 미세한 감각의 귀환을 알아채는 사람과 그냥 지나치는 사람 사이에 회복의 속도 차이가 크다.


'어, 나 지금 뭔가 느꼈어.'

그렇게 인식하는 것만으로 감각의 문이 조금 더 열린다.

한 번 열리면 다음에 또 열린다.

반대로 '별것 아니네' 하고 넘기면, 간신히 깜박인 스위치가 다시 꺼진다.


씻을 때 손등에 닿는 물의 온도.

길을 걷다 마주치는 초록의 농도.

좋아하던 노래의 가사 한 줄.

그 감각이 마음을 아주 살짝이라도 건드렸다면, 속으로 나직이 말해보는 것이다.

'반가워, 다시 돌아왔구나.'


터널의 끝은 밝은 빛으로 한꺼번에 찾아오지 않는다.

손끝과 귓가, 눈동자에 맺히는 작은 생기들로부터 조금씩 밝아온다.


그 미세한 떨림이야말로 당신이 다시 살아가고 있다는 첫 번째 증거다.



회복의 단서
1. 우울이 깊어지면 슬픔이 아니라 '무감각'이 찾아와요.

2. 감각을 닫은 건 고장이 아니라 보호예요. — 그때는 그렇게라도 살아남아야 했어요.

3. 회복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꽃이 예쁘네"라는 작은 감각의 귀환에서 시작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