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둘째 주 심리학브리핑 1, 관계의 그림자

나를 늙게 하는 사람들, 착한 사람의 연애, 어두운 성격의 세계관

by 지혜더하기
당신을 늙게 만드는 건 세월이 아니라,
사람일 수 있어요.


좋은 관계가 건강을 지켜준다는 이야기는 정말 많죠. 그런데 반대쪽 이야기는 의외로 적어요. 나쁜 관계가 정확히 무엇을 가져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요.


이번 주는 흥미롭고 유익한 연구가 유독 많아서, 브리핑을 두 편으로 나눠 보내드려요. 1편은 관계의 그림자, 2편은 몸과 뇌가 보내는 신호를 다룹니다.


먼저 1편이에요. 내 곁의 힘든 사람이 세포 단위로 나를 늙게 만들 수 있다는 것, 마음이 따뜻한 사람일수록 위험한 상대를 밀어내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어두운 성격의 사람들은 애초에 세상 자체를 의미 없는 곳으로 바라본다는 것. 관계가 남기는, 보이지 않는 흔적에 대한 이야기예요.




관계의 비용:

당신 곁의 '그 사람'이 세포를 늙게 만들어요


5E1A5292-720D-4EA3-8FB3-9A2E5D38AA84.png 내 곁의 힘든 관계가 세포를 늙게 만들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어요. ⎜AI 생성 이미지 (ChatGPT)



"내 주변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말하는 성인이 얼마나 될까요. 뉴욕대학교 연구팀이 인디애나주 성인 2,345명을 조사했더니, 약 30%가 가까운 관계에서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을 적어도 한 명 보고했어요. 연구팀은 이런 존재를 "hassler", 쉽게 말하면 '골칫거리'라고 불렀거든요.[1]



흥미로운 건 이 연구가 설문에서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연구팀은 참여자들의 타액에서 DNA 메틸화를 분석해서 생물학적 나이를 측정했어요. '후성유전학적 시계'라는 건데, 쉽게 말하면 실제 나이와 별개로 세포가 얼마나 늙었는지를 보는 거예요. 결과가 꽤 구체적이었어요. 골칫거리가 한 명 늘어날 때마다 노화 속도가 약 1.5% 빨라지고, 생물학적 나이는 약 9개월 더 많아지는 것과 연관되었거든요. 연구를 이끈 이병규 교수는 인터뷰에서 이 효과를 흡연과 비교했는데, 같은 노화 지표에서 흡연 효과의 13~17%에 해당하는 수준이라고 해요.


특히 눈에 띄는 건 가족 관계예요. 배우자보다 가족 구성원이 골칫거리일 때 노화 가속과 더 강하게 연결되었거든요. 연구팀은 이걸 관계의 "끈적임" 때문일 수 있다고 봤어요. 배우자와는 다투다가도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잖아요. 그런데 가족은 명절이든 모임이든, 원하지 않아도 만나야 하는 관계라 거리를 두기가 훨씬 어려우니까요. 선택할 수 없는 관계, 피할 수 없는 만남이 반복되면 스트레스 반응이 만성적으로 켜져 있게 되고, 이게 염증, 우울, 불안, 체질량 증가까지 이어지는 거죠.


물론 이건 관찰 연구라서, 골칫거리가 노화를 직접 "일으킨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반대로 생물학적으로 빨리 늙는 사람이 더 예민해져서 주변을 힘들게 느끼는 걸 수도 있고요. 하지만 연구팀이 건강 기록, 직업, 심리사회적 요인까지 꼼꼼하게 통제한 후에도 결과가 유지됐다는 점에서, "관계 스트레스가 몸에 흔적을 남긴다"는 이야기는 꽤 설득력이 있어요.


건강한 노화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보통 식단, 운동, 수면을 떠올리잖아요. 이 연구는 거기에 조용히 하나를 더 얹어요. 내 곁의 관계, 특히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관계가 나를 늙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일 수 있다고요.




착한 사람의 역설: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을 거부하지 못해요


C2412D97-3A0D-45A1-AA54-5FE01B67B286.png 좋은 사람은 나쁜 상대에게 끌리는 게 아니라, 밀어내지 못하는 거였어요. ⎜AI 생성 이미지 (ChatGPT



"왜 저렇게 좋은 사람이 저런 사람을 만나는 거지?" 한 번쯤 이런 생각해보신 적 있지 않나요. 인스부르크대학교 연구팀이 이 궁금증을 실제 스피드데이팅 실험으로 풀어봤어요.[2]



128명이 참여해서 총 1,429건의 3분짜리 데이트를 했고, 사전에 성격 검사를 받았어요. 한쪽은 '어두운 성격 4요소' - 나르시시즘, 마키아벨리즘, 싸이코패시, 일상적 사디즘이고요. 다른 한쪽은 '밝은 성격 3요소' - 인간에 대한 믿음, 인본주의, 칸트주의(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태도)예요.


결과가 흥미로웠어요. 마키아벨리즘이나 사디즘 성향이 높은 사람은 대체로 데이팅에서 거부당할 확률이 높았거든요. 사람들은 조작적이거나 잔인한 상대를 꽤 직감적으로 밀어냈어요. 그런데 여기에 예외가 있었어요. 상대방이 밝은 성격 특성이 높은 사람일 때, 이 거부 경향이 눈에 띄게 약해진 거예요.


중요한 건 이게 '끌림'이 아니라 '거부하지 못함'이었다는 점이에요. 밝은 성격의 사람들이 어두운 상대에게 특별히 매력을 느낀 건 아니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강하게 밀어내는 상대를, 이 사람들은 그냥 밀어내지 않았을 뿐이에요. 반대 방향도 확인했는데, 어두운 성격의 사람들이 밝은 성격을 특별히 선호하지도 않았어요. "반대가 끌린다"는 식의 상호적 매력은 없었던 거죠.


연구팀의 해석은 이래요. 사람의 좋은 면을 보려는 강한 경향이, 때로 선택의 기준을 느슨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위험 신호를 알면서도 의식적으로 넘기는 건지, 아니면 신뢰하는 성격 자체가 경고등을 못 보게 하는 건지는 아직 불분명해요. 하지만 연구를 이끈 케세하이머 박사의 말이 꽤 와닿더라고요. 데이팅에서 누군가는 사랑을 찾고, 누군가는 조종할 대상을 찾는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매력적으로 보여도 건강한 수준의 경계심은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요.




어두운 성격:

'다크 코어', 세상은 원래 의미 없다는 믿음


F2AFBA24-6DA8-486D-A08A-762F05339780.png 어두운 성격의 사람들은 세상을 의미 없는 곳으로 바라보면서도, 자신만은 특별하다고 느꼈어요. ⎜AI 생성 이미지 (ChatGPT



그렇다면 앞에서 이야기한 '어두운 성격'의 사람들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독일 연구팀이 400~640명 규모의 연구 4개를 통해 이 질문에 답했어요.[3]



연구가 주목한 개념은 '성격의 다크 코어(Dark Core)'예요. 나르시시즘, 마키아벨리즘, 싸이코패시, 사디즘 같은 어두운 성격 특성들이 서로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거든요. 이 특성들이 공유하는 공통 핵심이 있다는 게 다크 코어 개념인데,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더라도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기본 성향"이에요.


연구팀은 이 다크 코어가 '세상에 대한 원초적 믿음'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폈어요. 원초적 믿음이란, 세상이 기본적으로 안전한지 위험한지, 좋은 곳인지 나쁜 곳인지, 풍요로운지 부족한지에 대한 아주 근본적인 가정이에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모든 판단의 배경이 되는 것들이죠.


결과는 예상대로이면서도, 한 가지 재미있는 반전이 있었어요. 다크 코어가 높은 사람들은 세상을 덜 안전하고, 덜 아름답고, 덜 공정하고, 덜 즐거운 곳으로 봤어요. 그중에서도 "의미 있음" 차원이 다크 코어와 가장 고유하게 연결되었거든요. 나쁜 행동을 정당화하는 특정 신념이 아니라, 세상 자체를 의미 없는 곳으로 보는 더 넓은 세계관이 어두운 성격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뜻이에요.


흥미로운 예외가 하나 있었는데요. 다크 코어가 높은 사람들이 "우주나 더 높은 힘이 자신의 삶에 관여한다"는 믿음과는 약한 양의 연관을 보인 거예요. 세상은 의미 없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뭔가 특별한 힘이 작용한다고 느끼는 거죠. 연구팀은 이걸 과대적 자기상, 그러니까 나르시시즘적 자기 인식과 맞닿아 있다고 봤어요.


이 연구도 상관 연구라서 인과를 단정하긴 어려워요. 세상을 무의미하게 보니까 타인을 착취하게 되는 건지, 타인을 착취하며 사니까 세상이 무의미해지는 건지는 알 수 없죠. 하지만 한 가지는 꽤 분명해 보여요. 어떤 사람들은 처음부터 세상을 차갑게 느끼고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 차가움이 관계에서의 행동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거죠.





놓치기 아까운 이번 주 연구


3C67DAF9-4906-4100-B9EC-15E075701218.png AI의 방관자 효과, 충동성의 유전학, 조기 사춘기와 정서 건강까지. ⎜AI 생성 이미지 (ChatGPT)



1. 이번 주 가장 눈길을 끈 연구 중 하나는 AI와 방관자 효과에 관한 거예요. 이스트앵글리아대학교 연구팀이 실험을 했는데, 사람들이 AI 파트너와 함께 과제를 수행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봤어요. AI가 그저 화면에 떠 있기만 하면 아무 변화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AI가 직접 행동할 수 있는 조건이 되자, 사람들은 "내가 꼭 안 해도 되겠지"라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어요. 마치 옆에 누가 있으면 내가 나서지 않게 되는 방관자 효과가, AI 상대로도 나타난 거예요. 우리 뇌가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같이 일하는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연구예요.[4]


2. 충동성 쪽에서도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어요. 유전적으로 충동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학력이 낮고, 더 이른 나이에 부모가 되는 경향과 연관된다는 건데요. 유전자가 운명을 정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타고난 기질이 삶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연구라서 주목할 만해요.[5]


3. 마지막으로, 아동기의 경제적 어려움이 소녀들의 정서 건강에 미치는 경로를 밝힌 연구도 있었어요.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소녀들이 사춘기를 더 일찍 겪는 경향이 있고, 이 빠른 사춘기가 10대 시기의 정서적 어려움과 연결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가정환경이 몸의 변화를 거쳐 마음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들의 정서 지원은 심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보여주는 연구였어요.[6]




이번 주 연구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예요. 관계는 마음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 세포를 바꾸고, 선택의 기준을 흔들고, 세상을 보는 렌즈를 형성하죠. 좋은 관계가 보호막이 되는 만큼, 어려운 관계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용을 청구해요.


이번 주 브리핑이 내 곁의 관계를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2편에서는 몸과 뇌가 보내는 신호 — 우울증의 에너지 위기부터 커피와 운동의 과학까지 이야기할게요.




[출처]

[1] Negative social ties as emerging risk factors for accelerated aging, inflammation, and multimorbidity | PNAS | https://doi.org/10.1073/pnas.2515331123


[2] Shedding Light on Dark Romance: Light Personalities' Reduced Rejection of Machiavellian and Sadistic Partners | Personal Relationships | https://doi.org/10.1111/pere.70058


[3] Seeing the World Through a Dark Lens: The Dark Core of Personality and Its Relation to Primal World Beliefs | Journal of Personality | https://doi.org/10.1111/jopy.70051


[4] Working with an Online Artificial Partner Enhances Implicit and Reduces Explicit Sense of Agency | Consciousness and Cognition


[5] Genetic tendency for impulsivity is linked to lower education and earlier parenthood | PsyPost 보도


[6] Early puberty provides a biological link between childhood economic disadvantage and teenage emotional struggles in girls | PsyPost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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