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첫째 주 심리학브리핑, 진짜와 가짜 사이

지혜가 이끄는 창의성, AI 공감의 한계, ADHD의 두 가지 뇌

by 지혜더하기
창의적인 사람은 좋은 사람일까요?
AI의 "힘드셨겠네요"는 진짜 공감일까요?
같은 ADHD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요?


이번 주 연구들은 하나같이 같은 질문을 건드립니다. 겉으로 같아 보이는 것들, 그 안에 숨은 결정적 차이. 이름이 같다고 같은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시작해 볼게요.




창의적인 사람이 반드시 선한 건 아니다


78503663-7DD2-4FEF-93C8-DA09F4C8E233.png 창의성이라는 엔진에는 지혜라는 핸들이 필요합니다. ⎜AI 생성 이미지 (ChatGPT)



회의실에서 가장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 누구보다 빠르게 틀을 깨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을 무조건 좋게 봅니다. 창의성은 늘 칭찬받아 마땅한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그런데 이번 주, 꽤 불편한 연구가 나왔습니다.


베이징대 연구팀이 Intelligence 저널에 발표한 이 연구는, 창의성이 높으면 자동으로 좋은 방향으로 쓰이는지를 정면으로 물었어요. [1] 두 차례의 실험이 진행됐습니다. 첫 번째 실험에서는 132명 규모의 참가자에게 대인관계 딜레마를 주고, 지혜로운 사고 수준을 측정한 뒤, 잠수함 비상 상황에서 낯선 사람에게 산소를 나눠줄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어요.


결과는 직관과 어긋났습니다. 지혜 수준이 낮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창의성이 높을수록 오히려 도움 의향이 떨어졌어요. 기발한 머리가 "나한테 유리한 방법"을 더 잘 찾아낸 거죠. 반면 지혜 수준이 높은 그룹에서는 이 패턴이 사라졌습니다.


801명을 대상으로 한 두 번째 실험에서도 같은 그림이 그려졌어요. 지혜가 높은 사람에게서만 창의성이 사회적 배려로 이어졌습니다. 연구자 Yuling Wang의 설명이 핵심을 찌릅니다. '창의성만 개발한다고 친사회적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다.' 이해관계의 균형을 잡고,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타인에 대한 선의를 갖추는 지혜가 결합돼야 창의성이 비로소 선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거예요.


요즘 우리는 창의성을 거의 숭배합니다. 교육에서도, 조직에서도, 육아에서도. 틀린 말은 아니에요. 다만 이 연구는 늘 빠져 있던 퍼즐 한 조각을 보여줍니다. 창의성이 엔진이라면, 지혜는 핸들입니다. 방향 없는 엔진이 어디로 달릴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AI는 공감하는 '척'을 합니다


4D2E5F1C-4C83-408F-B421-3776D0517D07.png 진짜 공감은 말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일어납니다. ⎜AI 생성 이미지 (ChatGPT)



"나 요즘 너무 힘들어."


AI 챗봇에게 이렇게 말하면, 꽤 그럴듯한 답이 돌아옵니다. "정말 힘드셨겠네요. 당신의 감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따뜻하고, 빠르고, 24시간 가능하죠. 그런데 이 공감, 진짜일까요?


브라운대학교 연구팀이 이번 주 발표한 연구는 꽤 직격탄입니다. [2] ChatGPT, Claude, Llama 등 주요 AI 모델에 인지행동치료(CBT) 프롬프트를 적용하고, 실제 또래 상담자 7명이 AI와 상담 세션을 진행했어요. 그 대화록을 임상심리학자 3명이 윤리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결과, 15가지 윤리적 위험이 확인됐어요. 다섯 범주로 나뉘는데, 가장 소름 끼치는 건 "기만적 공감"이었습니다. AI가 "이해합니다", "당신의 마음이 느껴집니다"라는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맥락도 감정도 이해하지 못한 채 공감의 형식만 흉내 내는 거예요. 위기 상황 대처도 심각했습니다. 자살 사고를 표현한 경우에도 적절한 도움 연결에 실패하거나, 아예 화제를 돌려버리는 일이 반복됐어요.


연구팀은 핵심적 차이를 이렇게 짚습니다. 인간 상담사에게는 실수가 있더라도 면허 관리 기관과 법적 책임 체계가 존재하지만, AI 상담사에게는 아직 그런 규제 프레임워크 자체가 없다는 거예요.


상담이라는 건 맞는 말을 해주는 게 아닙니다. 내담자가 말하지 않은 것을 읽고, 침묵의 무게를 견디고, 때로는 불편한 진실을 함께 마주하는 과정이에요. AI가 흉내 낼 수 있는 건 상담의 '형식'입니다.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치유는 아직 그 너머에 있어요. AI가 상담 접근성을 높일 가능성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공감처럼 보이는 것"과 "진짜 공감" 사이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다는 사실일지 모릅니다.



같은 ADHD, 다른 뇌


7E28A9AF-E55D-4807-9DA0-D71699A1C8A4.png 같은 이름 아래, 뇌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AI 생성 이미지 (ChatGPT)



"우리 아이가 ADHD래요." "어, 옆집 아이도요. 근데 증상이 정말 달라요."


이런 대화,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번 주 나온 연구가 그 '다름'에 처음으로 뇌과학적 근거를 붙여줬어요.


중국 산동제일의과대학의 Tianzheng Zhong 연구팀이 General Psychiatry에 발표한 이 연구는, ADHD 아동·청소년 135명과 대조군 182명의 뇌 MRI를 분석했습니다. [3] 흥미로운 건 첫 번째 결과였어요. ADHD 아이들의 뇌를 하나로 묶어서 비교하니, 오히려 뚜렷한 차이가 보이지 않았거든요. 어떤 아이는 회백질이 늘어나 있고, 어떤 아이는 줄어 있으니, 전체 평균을 내면 서로 상쇄돼서 '별 차이 없음'이 나와버린 거예요. 키가 큰 아이와 작은 아이를 한꺼번에 평균 내면 '보통 키'가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그래서 연구팀은 머신러닝으로 ADHD 아이들의 뇌를 다시 분류했어요. 진단명이 아니라 뇌 구조 자체를 기준으로요. 그러자 두 가지 뚜렷한 유형이 떠올랐습니다.


첫 번째 유형. 전두엽과 소뇌에서 회백질이 오히려 증가해 있었고, 주로 주의력결핍 증상이 두드러졌어요. 두 번째 유형은 정반대입니다. 소뇌, 전두엽, 해마에 걸쳐 회백질이 광범위하게 감소해 있었고, 과잉행동과 충동성까지 동반된 더 복합적인 양상을 보였어요.


연구팀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갔습니다. 증상이 심해질수록 뇌가 어떤 순서로 변화하는지, 인과 네트워크까지 분석한 거예요. 첫 번째 유형에서는 주의력 관련 영역이 변화의 중심이었고, 두 번째 유형에서는 해마를 허브로 훨씬 넓은 범위의 구조적 변화가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한 시점의 단면 연구여서 장기적 확인이 필요하지만, 시사점은 분명합니다. 같은 ADHD라는 이름 아래 뇌에서 일어나는 일이 이토록 다르다면, 앞으로는 유형에 따라 다른 치료 전략을 연구해 볼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에요. "다 같은 ADHD"가 아니라는 걸, 뇌과학이 보여주기 시작한 겁니다.




놓치기 아까운 이번 주 연구


F02BC22D-AA8B-4FB1-9564-0DFC55F3AC7A.png 이번 주, 놓치기 아까운 연구들을 모았습니다. ⎜AI 생성 이미지 (ChatGPT)



1. "웃음은 최고의 약"이라는 말, 알고 보니 조건부였습니다. 헝가리 연구팀이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에 발표한 연구에서, 밝은 유머는 대체로 불안을 줄여줬어요. [4] 그런데 블랙 유머는? 평소 그런 유머를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 오히려 불안을 높였습니다. 내가 웃기다고 상대도 편한 게 아니에요. 유머에도 처방이 필요합니다.


2. 80대에도 뇌는 새 신경세포를 만들 수 있을까요? Nature에 발표된 연구가 그 답을 내놨습니다. [5] '슈퍼에이저'라 불리는, 80대 이상이면서 50대 수준의 기억력을 유지하는 사람들. 이들의 해마에서 또래보다 2~2.5배 많은 새 뉴런이 발견됐어요. 뇌의 재생 능력에는 유통기한이 없을 수도 있다는, 꽤 희망적인 소식입니다.


3. "나는 원래 질투가 많은 사람이야." 정말 그럴까요? Personal Relationships에 실린 5년 추적 연구가 흥미로운 사실을 밝혔어요. [6] 같은 파트너와 있을 때 질투 수준은 꽤 안정적이었지만, 파트너가 바뀌자 질투도 확연히 달라졌거든요. 질투는 '내 성격'이 아니라 '이 관계'가 만들어내는 감정일 수 있습니다.


4. 헤어졌다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는 관계, 경험해 보셨나요? "이번엔 다를 거야"라는 기대. Journal of Social and Personal Relationships에 발표된 연구는 좀 냉정한 팩트를 전합니다. [7] 이합집산이 반복될수록 관계 안의 스트레스가 누적되고, 그게 심리적·신체적 증상으로 번진다는 거예요. 두 번째 기회가 늘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이번 주 연구들은 하나의 메시지로 수렴합니다. 이름이 같다고 같은 게 아니고, 그럴듯해 보인다고 진짜가 아니라는 것.


창의성도, 공감도, 진단명도, 유머까지도. 겉모습 너머의 결정적 차이를 알아차리는 힘. 어쩌면 그게 이번 주 연구들이 말하는 진짜 지혜일지 모르겠습니다.




[출처]

[1] Can wisdom guide intelligence and creativity toward prosocial ends? Evidence from humanistic, domain-aligned assessments | Intelligence | https://doi.org/10.1016/j.intell.2025.101971

[2] How LLM Counselors Violate Ethical Standards in Mental Health Practice: A Practitioner-Informed Framework | AAAI/ACM Conference on AI, Ethics, and Society | https://doi.org/10.1609/aies.v8i2.36632

[3] Brain morphological changes across behaviour spectrums in attention-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 General Psychiatry | https://doi.org/10.1136/gpsych-2025-102340

[4] Why aren't you laughing? – The effect of dark and light humor on anxiety and affective state |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5] Disouky, A. et al. | Nature | https://doi.org/10.1038/s41586-026-10169-4

[6] Wired for Cognitive Jealousy? Unveiling the Stability Within and Fluctuations Between Relationships | Personal Relationships

[7] Establishing links between relationship cycling, relational stress, and well-being | Journal of Social and Personal Relationsh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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