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공감, 실수를 모르는 뇌, 누워있기의 대가
이 상담사, 되게 공감을 잘하네.
읽으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문장들. 내 이야기를 정말 알아듣는 것 같은 느낌. 그런데 만약 그 문장을 쓴 게 사람이 아니라 AI였다면 — 여전히 같은 공감을 느꼈을까요?
이번 주 심리학 연구들은 우리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AI 앞에서 드러나는 우리의 편향, 실수 앞에서 침묵하는 어떤 사람들의 뇌, 그리고 쉬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은 무언가를 잃고 있었던 시간에 대해서요.
"AI가 진짜 공감할 수 있을까?" 상담 분야에서 이 질문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주제가 됐어요. 인도 마니팔대학교의 가간 자인 연구진(Journal of Technology in Behavioral Science)이 꽤 영리한 실험 설계로 이 질문에 답했어요[1].
실험 참가자는 임상심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84명. 이들에게 상담 대화록 6개를 읽히고 공감, 전문성, 정확성을 평가하게 했어요. 절반은 실제 상담사가, 나머지 절반은 ChatGPT가 쓴 거였거든요. 핵심은 이 실험이 세 단계로 나뉘었다는 점이에요.
먼저, 누가 쓴 건지 모르는 상태. AI 텍스트가 세 항목 모두에서 사람보다 일관되게 높은 점수를 받았어요. 그다음, 연구진이 출처를 일부러 뒤바꿔서 알려줬어요 — AI가 쓴 걸 "사람이 썼다"라고, 사람이 쓴 걸 "AI가 썼다"고요. 결과요? 똑같은 텍스트인데 "사람이 썼다"라고 믿는 순간 점수가 올라갔어요. 마지막으로 진짜 출처를 공개하자, AI 텍스트의 점수가 유의하게 떨어졌고요.
결국 우리는 '무엇을' 말했는지가 아니라 '누가' 말했는지를 먼저 판단하고, 거기에 맞춰서 공감을 느끼고 있었던 거예요. 연구진은 이걸 '친화 편향(affinity bias)'이라고 불러요.
이건 AI를 쓰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로, 상담에서 공감이라는 게 텍스트의 질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AI 도구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상담의 신뢰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에서 온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공감'이라 느끼는 감정이 실은 얼마나 맥락에 기대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연구였어요.
직장이든 가정이든, 한 명쯤 떠오르지 않나요? 분명히 틀렸는데 절대 인정 안 하는 사람. 피드백을 줘도 안 들리는 것 같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자기가 맞다고 확신하는 사람. "왜 저 사람은 저럴까?"라는 질문에, 이번 주 사우샘프턴대학교의 에스더 로빈스 연구진(Journal of Personality)이 뇌파 수준에서 하나의 단서를 보여줬어요[2].
사람이 실수를 하면, 약 50밀리초 안에 전두엽에서 'ERN'이라는 뇌파 반응이 일어나요. 뇌가 자동으로 "앗, 틀렸다!" 알람을 울리는 건데요. 연구진이 대학생들에게 주의력 과제를 풀게 하면서 EEG로 측정해 봤더니, 과대적 나르시시즘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이 알람 자체가 현저히 약했어요.
더 흥미로운 건 두 번째 실험이에요. 이번엔 실수할 때마다 "틀렸습니다"라는 외부 피드백을 분명하게 줬거든요. 그런데도 나르시시즘 점수가 높은 사람들의 ERN 반응은 여전히 둔했어요. 옆에서 직접 "틀렸어"라고 말해줘도, 그 사람의 뇌는 같은 무게로 받아들이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나르시시스트가 "일부러" 피드백을 무시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예요.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감지 시스템 자체가 다르게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거죠. 연구진은 이 메커니즘이 나르시시스트가 긍정적 자기상을 유지하는 방식의 신경학적 기반일 수 있다고 봐요.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어요. 피드백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계속 같은 방식으로 피드백을 주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거예요. 뇌가 다르게 처리하고 있다면, 전달 방식이 먼저 달라져야 하니까요.
'탕핑(躺平)'. 과도한 경쟁에 저항하듯, 최소한만 하고 눕겠다는 선택. 한국의 '조용한 퇴직'이나 '갓생 포기'와도 맞닿아 있는 이 흐름은 어떻게 보면 꽤 합리적인 자기 보호처럼 느껴져요. 그런데 베이징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이번 주 연구(Behavioral Sciences)가 그 선택의 심리적 비용을 하나 짚어줬어요[3].
베이징의 대학생 960명에게 '눕기' 성향과 삶의 만족도를 조사했더니, '눕기' 성향이 강할수록 삶의 만족도가 유의하게 낮았어요. "그야 불행하니까 누운 거 아냐?"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그래서 연구진이 109명을 한 달 간격으로 두 번 더 추적했어요.
결과가 선명했어요. '눕기' 성향이 한 달 뒤 삶의 만족도 하락을 예측했지만, 반대 방향 — 불행해서 눕게 되는 경로 — 은 성립하지 않았어요. 눕는 것이 이후의 불행을 예측하는 방향이었다는 거예요. 단기적으로는 압력에서 벗어나는 안도감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자기 효능감과 목적의식이 조금씩 빠져나간다고 연구진은 해석해요.
이 연구가 "그러니까 열심히 살아라"로 귀결되는 건 아니에요. 무리하게 뛰라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고요. 다만 '아무것도 안 하기'와 '진짜 쉬기'가 같지 않다는 건 알아둘 만해요. 몸은 누워 있는데 마음은 쉬지 못하는 그 상태. 진짜 회복은 아마 '멈추기'가 아니라 '다르게 움직이기'에 가까울 거예요.
이번 주에도 메인에서 다 못 담은 연구들이 있었어요.
1. 가장 눈길을 끈 건 일리노이대학교 시카고(UIC)와 노스웨스턴대학교 공동 연구진이 Nature에 발표한 슈퍼에이저 연구예요[4]. 80세가 넘어서도 50대 수준의 기억력을 유지하는 '슈퍼에이저'들의 뇌를 사후 분석했더니, 해마에서 동년배보다 최소 2배 이상 많은 새 뉴런이 만들어지고 있었다고 해요. 알츠하이머 관련 단백질이 쌓여 있어도 인지 기능이 보호되는 '인지적 탄력성' — 그 생물학적 근거를 슈퍼에이저에서 직접 보여준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2. 우울증 치료 쪽에서도 주목할 발견이 있었어요. 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에 게재된 연구에서 수 주간 걸리던 반복 경두개자기자극(TMS) 치료를 5일로 압축해도 비슷한 효과가 나왔거든요[5]. 하루 5회씩 5일간 집중 치료를 받은 환자들 중 초기 반응이 적었던 그룹에서도 2~4주 후 약 36% 증상 개선이 나타났다고 해요. 치료 접근성을 크게 높일 수 있는 결과예요.
3. NYU 연구진의 노화 불안 연구도 인상적이었어요[6]. 700명 이상의 여성을 조사했더니,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불안이 클수록 세포 수준의 노화 지표가 더 나빴대요. 늙을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오히려 더 빠른 생물학적 노화와 연관될 수 있다니, 마음 관리가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연구였어요.
4. AI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ChatGPT를 정신건강 목적으로 많이 사용한 사람들에게서 불안·우울 증상 악화가 관찰됐다는 연구도 있었어요[7]. 물론 "증상이 심한 사람이 도움을 찾아 AI를 더 쓴 것"일 수 있어서 인과관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요. 메인에서 다룬 공감 편향 연구와 나란히 놓으면, AI와 정신건강의 관계가 우리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걸 느끼게 돼요.
5. 마지막으로 공감각자의 꿈에 관한 연구(Consciousness and Cognition)도 흥미로웠어요[8]. 소리를 들으면 색이 보이는 것처럼 감각이 교차하는 공감각자들은 꿈의 주제 패턴도 달랐대요. 깨어 있을 때의 인지 스타일이 잠든 뒤에도 이어진다는 '꿈의 연속성 가설'을 뒷받침하는 결과예요.
이번 주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우리가 '당연하다'라고 여겼던 것의 뒷면을 보여줬어요.
공감이라 느낀 것은 편향이었고, 고집이라 치부한 것은 뇌의 감지 방식이었고, 쉬고 있다 생각한 시간은 행복을 조금씩 소모하고 있었어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때, 심리학은 그 보이지 않는 구조를 들여다보게 해 줘요.
이번 주에 혹시 "왜 저 사람은 저럴까?" 또는 "왜 나는 쉬어도 개운하지 않지?" 같은 생각이 스쳤다면 — 이 연구들이 작은 실마리가 됐으면 해요.
출처
[1] "Perceptual Differences in AI vs. Human Psychotherapy" | Journal of Technology in Behavioral Science | https://doi.org/10.1007/s41347-025-00544-9
[2] "Grandiose narcissists tend to show reduced neural sensitivity to errors" | Journal of Personality | https://doi.org/10.1111/jopy.70036
[3] "Does 'Lying Flat' Lead to Greater Life Satisfaction? Evidence from Empirical Research" | Behavioral Sciences | https://doi.org/10.3390/bs15081067
[4] "As Superagers Age, They Make at Least Twice as Many New Neurons as Their Peers" | Nature |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6-10169-4
[5] "Efficacy of 5×5 accelerated versus conventional rTMS for treatment-resistant depression" | 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 |
https://www.sciencedaily.com/releases/2026/02/260224023103.htm
[6] "Worrying about aging speeds up cellular aging" | NYU research via ScienceDaily | https://www.sciencedaily.com/news/mind_brain/psychology/
[7] "AI and mental health: New research links use of ChatGPT to worsened psychiatric symptoms" | PsyPost | https://www.psypost.org/ai-and-mental-health-new-research-links-use-of-chatgpt-to-worsened-psychiatric-symptoms/
[8] "People with synesthesia experience distinct thematic patterns in their dreams" | Consciousness and Cognition | https://doi.org/10.1016/j.concog.2025.103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