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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 Oct 21. 2015

연애의 온도

야매 심리학. 반대과정 이론과 사랑의 삼각형

남자친구가 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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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났을 때는 밤을 새워가며 통화를 해도 피곤한 기색 한번 안보이던, 보고 싶다는 한마디에 한 시간 거리를 날아오던 그 남자. 아무리 바빠도 모닝콜은 잊지 않고, 안부카톡은 한 시간에  한 번씩 꼬박꼬박 보내던 그 남자. 주말은 당연히 데이트하는 날로 여기던 그 남자. 기념일에는 주머니 탈탈 털어 값 비싼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저녁과 선물을 건네던 그 남자.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는 어두운 골목길에서 혹여 변이라도 생길까 매번 집 앞까지  바래다주던 그 남자.


이제는 다음날 피곤하다며 신데렐라처럼 12시 취침을 꼬박 지킨다. 모닝콜은 종종 깜빡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이 뜸하다. 주말에는 운동과 친구들 술 약속이 점점 늘어난다. 기념일에 근사한 저녁은 고사하고 그냥 지나치기가 일쑤다. 데이트를 마치고 집 앞까지 바래다주는 일도 점점 줄어, 이제는 그냥 버스 밖에서 손만 흔들고 있다. 이 쯤이면 여자는 집에 들어가 컴퓨터를 켜고 네이버 검색창에 검색어를 입력해보게 된다.


남자친구가 변했어요..


연애의 온도

연애에도 온도가 있다면 우리의 연애는 불 같이 뜨거운 온도로 시작해서 종종 얼음장같이 차가운 이별로 그 끝을 고하곤 한다. 매 시간마다 하트 뿅뿅을 주고받던 연인 와의 카톡방에서 어느 날부턴가 당신의 메시지 옆에 위태롭게 매달린 숫자 1이 지워지지 않기 시작했음을 알게 될 때, 우리는 그 차가움을 감지하게 된다. 왜 우리의 연애는, 그리고 사랑은 식어가는 것일까.


반대과정이론

심리학자 솔로몬과 콜빗은(Richard L.Solomon; John D.Corbit, 1978) 초보 스카이다이버들이 다이빙을 할 때 느끼는 공포감이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실험 초기의 초보 다이버들은 다이빙 직전에 가장 큰 공포감을 느꼈고 착지 이후에는 가장 큰 안도감을 느꼈지만, 실험이 반복될수록 그리고 다이빙이 익숙해질수록 이들이 다이빙 직전에 느끼는 공포감은 점차 감소하기 시작했고 착지 후에 느끼는 안도감이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국에 다이버들은 비행기를 타고 다이빙 지점으로 가는 순간부터 안도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솔로몬은 이러한 실험을 바탕으로 '정서의 반대과정이론(Opponent-Process Theory)'을 주장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사람들은 특정 사건에 대해 대립하는 두 가지 정서를 동시에 가지고 있고, 사건이 반복될수록 처음에 우세했던 정서는 약세인 정서에게 역전당하게 된다. 마치 처음에는 짜릿하고 즐거웠던 일이 시간이 지나고 반복되면서 점점 지루하고 불쾌해지는 것처럼.


Photo by androoouk, Flickr (CC BY), https://goo.gl/CrFYJE


반대과정이론은 특히 마약 중독자의 정서를 설명하는 사례로 많이 활용된다. 마약 중독자들이 처음 마약을 할 때는 쾌감과 황홀감과 같은 긍정적 정서를 느끼는 반면, 마약의 효과가 끝난 후에는 불쾌감과 같은 부적 정서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불쾌감의 금단증상을 극복하고자 마약 투여를 반복하게 되면, 결국 불쾌감이 점점 강해져 이를 극복하고자 더 많은 마약을 투여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에서는 정욕과 관련된 테스토스테론과 페닐에틸아민, 흥분을 느끼게 하는 노르에피네프린,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 등의 호르몬 분비가 높아진다. 그리고 이 중 도파민의 분비는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의 뇌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다. 요컨대 사랑에 빠진 뇌는 일종의 마약 중독 상태와 유사하다 볼 수 있는 것. 더불어 반대과정이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사랑에 빠지면서 느끼는 긍정적 정서의 이면에는 혼자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외로움, 혹은 불쾌감과 지루함과 같은 반대 정서 역시 존재한다. 연애기간에 비례하여 이러한 부적 정서가 점차 강해지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알게 모르게 상대방에게 더 많은 사랑을 요구하게 되고, 기대가 큰 만큼 불만과 실망 역시 커져만 간다. 그렇게 연애의 온도는 차츰 식어가고 결국 위태로운 관계가 단절되고 나면 금단증상에 몸부림치는 마약 중독자처럼 이별의 외로움과 아픔에 괴로워하게 된다.


호르몬의 변화

연애기간에 비례하여 정적 정서가 약화되는 현상은 우리 몸의 호르몬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에서는 도파민, 페닐에틸아민, 테스토스테론 등의 호르몬 분비가 높아지는데, 코넬대학의 신시아 하잔(Cinthia Hazan, 2006)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열정적인 사랑 호르몬의 중독상태는 평균적으로 18~30개월만 지속된다고 한다. 18~30개월이 지나면 호르몬의 분비는 약화되고 열정적이던 사랑의 감정은 차츰 사그라들게 된다. 더불어 호르몬에 영향을 받던 감성이 사라져가는 자리는 어느 순간 이성으로 대체되어 버린다. 처음에는 여신처럼 예쁘게만 보이던 그녀의 얼굴에서 조그마한 잡티 하나를 발견하는 순간이 오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간이든 쓸개든 빼줄 것 같던 열정의 나날은 현실이라는 거대한 빙벽 앞에서 멈추어 버리게 된다.


Photo by Mr Hicks46, Flickr (CC BY), https://goo.gl/VUZydk


사랑의 삼각형

사랑은 필연적으로 식어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18~30개월을 넘어 순항 중인 커플이나 부부들의 사랑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Robert Sterberg, 1984)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사랑의 삼각형 이론(Love triangular Theory)'을 제안했다. 스턴버그에 따르면 완벽한 사랑은 열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완벽한 사랑은 친밀감, 열정, 헌신의 세 가지의 심리적 요소로 구성되어 있어 혹 열정적 사랑이 조금 사그라들더라도 그 자리를 친밀감과 헌신의 사랑이 대신할 수 있다. 그가 이야기하는 친밀감의 사랑은 상대방과 친밀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느낌을 말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정서적으로 지지하는 사랑의 성질이다. 그리고 헌신의 사랑은 사랑과 사랑의 지속에 대한 결심과 의지로 대변되는 사랑의 성질이다. 친밀감과 헌신의 사랑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정' 혹은 '애착'이 된다.


스턴버그의 사랑의 삼각 모형


사랑은 익어가는 것

미국의 인류학자 헬렌 피셔(Helen Fisher, 2000)는 사랑을 정욕(Lust), 애정(Attraction), 애착(Attatchment)의 3단계로 구분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각 사랑의 단계에서는 서로 다른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특히 마지막 애착의 단계에서는 단순히 상대방에 대한 성적 매력과 행복을 느끼는 단계를 넘어 사랑을 유지하고 함께하는 것에 대한 만족감을 주는 바소프레신이나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특히 바소프레신은 일부일처의 동물인 들쥐들이 짝짓기 이후 영역과 암컷을 보호할 때 더 많이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알려져있다. 


우리는 종종 불같이 뜨거운 열정적 사랑만이 사랑을 이루는 전부인 것처럼 여긴다. 그리하여 연애기간이 길어지면서 상대방의 열정이 사그라들면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하게 되고, 실망과 불만이 쌓여 결국 이별을 준비하곤 한다. 그리고 이별 후에는 상대방에 대한 애정과 애착의 빈자리를 느끼며 후회하고 괴로워하게 된다. 그러나 열정적 사랑은 완전한 사랑을 위한 첫 관문에 지나지 않는다. 완전한 사랑은 친밀감과 헌신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질 수 있다. 요컨대, 사랑은 식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연인의 열정적인 사랑이 사그라드는 것은 다음 단계의 사랑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All works ⓒ Jaehyun Ki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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