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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 Oct 06. 2015

야동과 칼리굴라

야매 심리학. 심리적 저항 이론

금지된 것들에 대한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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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금지'라고 적힌 화장실 문 안쪽이 낙서로 빽빽하다. '흡연 금지'라는 팻말이 적힌 화단 한편은 담배꽁초로 가득하다. 귀퉁이에 '19금' 딱지가 붙은 영상에 채널을 돌리던 손이 잠시 멈칫한다. '미세요'라고 적힌 문은 어쩐지 당겨보고 싶다. 라캉을 좋아하진 않지만 아주 어쩌면 그의 말마따나 인간은 필연적으로 금지된 것을 갈망하는  듯하다.


칼리굴라 효과(Caligula effect)

1979년 미국에서 <칼리굴라>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고대 로마제국의 3대 황제이자 천재적인 정치가였지만 폭군으로 타락하여 암살당하고만 칼리굴라(Caligula, 12~41) 황제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근친상간, 존속살해, 매춘 등을 다룬 다수의 잔인하고 선정적인 장면들로 인해 보스턴 시 의회로부터 상영금지 처분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상영금지 처분 소식이 퍼지자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이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심지어 보스턴 시민들은 인접한 다른 도시로까지 몰려 영화를 관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금지된 것을 갈망하는 심리 현상을 가리켜 '칼리굴라 효과(Caligula effect)'라 부르게 되었다. 비슷한 말로는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라고도 불린다.


CALIGULA, Malcolm McDowell (top) as Caligula, 1979, © Penthouse Films International/courtesy Everet


심리적 저항 이론

그런데 칼리굴라 효과 이전에도 금지된 것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이미 연구되고 있었다. 미국의 심리학자 브렘(Jack W.Brehm, 1928-2009)은 동료 와인트럽과 함께 세 살배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먼저 아이들을 그들의 어머니와 함께 실험실로 들여보냈다. 실험실에는 브렘이 준비해둔 세 종의 장난감이 있었는데, 첫 번째 장난감은 30cm 높이의 유리벽 뒤에 두어 아이들이 손을 뻗으면 얼마든지 장난감을 만질 수 있게 두었고, 두 번째 장난감은 60cm 높이의 유리벽 뒤에 두어 아이들이 유리벽을 돌아 건너편으로 가지 않으면 장난감을 만질 수 없는 위치에 두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장난감은 60cm 높이의 유리벽 바로 앞에 두었다. 이어서 브렘은 아이들이 어떤 장난감에 가장 많이 관심을 보이고 접촉하려 하는지 관찰했다.


Photo by Janine, Flickr (CC BY),https://goo.gl/0eE3Fh


실험 결과, 아이들은 의외로 60cm 높이의 유리벽 뒤에 있는 장난감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다. 아이들이 두 번째 장난감에 접촉하려 한 빈도는 유리벽 바로 앞에 있던 장난감보다 세 배가 높았는데, 브렘은 이 같은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제한되거나 억압되는 자유와 행위에 대해 심리적 저항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이를 '심리적 저항 이론(Psychological Reactance Theory)'이라 이름 지었다.


더불어 브렘의 실험에서 이러한 저항반응은 3세 이전의 유아에게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왜 하필 3세 이후로 이런 반응이 나타는 것인지에 대해 발달 심리학자들은 아이들이 3세 이후로 부모와는 다른 자신만의 세계와 자아를 처음 가지게 됨으로 인해 자연스레 자유의지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답한다.(Levine, 1983; Lewis & Brooks-Gunn, 1979) 그리고 이러한 자유 의지를 억압받거나 위협받게 되면 이에 대한 반발로 자유의 행위 혹은 이 행위와 관련된 대상을 더욱 강렬히 원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미운 세 살'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저항의 강도

관련 연구에 따르면, 심리적 저항의 강도는 세 가지 상황에서 더욱 거세진다. 첫째, 자유를 위협하는 강도가 높거나 권위적일수록 저항이 강해진다. 만약 <칼리굴라>의 상영을 금지한 게 보스턴 시 의회가 아닌 일개 아파트 부녀회였다면 그만큼 시민들의 관심이 증가했을까? 둘째, 억압받거나 위협받는 자유가 중요할수록 저항이 강해진다. 특히 식욕, 수면욕, 그리고 성욕과 같은 인간의 3대 욕구에 있어서만큼 저항이 더욱 강렬해질  수밖에. 마지막으로 위협받는 자유의 범위에 비례하여 저항 역시 강해지게 된다.


OO동 파출소도 아닌 무려 'FBI'의 경고


야동과 칼리굴라

'낙서 금지'라고 적힌 화장실 문 안쪽이 낙서로 빽빽한 이유. '흡연 금지'라는 팻말이 적힌 화단 한편이 담배꽁초로 가득한 이유. '미세요'라고 적힌 문을 어쩐지 당겨보고 싶은 이유. 그리고 귀퉁이에 '19금' 딱지가 붙은 영상에 채널을 돌리던 손이 잠시 멈칫한 이유. 더군다나 영상에 무려 FBI의 경고딱지가 붙어있다면, 리모컨을 잠시 내려 놓고 감상하는 일은 어쩌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일 수 있다. 우리는 단지 필연적으로 금지된 것들을 갈망하고, 억압되는 자유에 대해 저항을 표출하는 것이 아닐는지.



All works ⓒ Jaehyun Ki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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