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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짱 May 31. 2022

006 잘하고 있다는 실감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나는 늘 칭찬에 춤추는 고래였다.

태어나면서 성질이 그랬다.

칭찬을 받으면 가진 능력치의 몇 배를 발휘하는 사람. 이건 반대로 말하면 비판에 익숙하지 않고 칭찬이 없이는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내가 이렇게 된 데는 물론 가진 성정의 영향이 크겠지만, 늘 칭찬을 퍼부어주는 엄마의 덕이 컸다. 넌 대단한 사람이야. 넌 어차피 잘 될 건데 뭘 걱정해. 쓸데 없는 소리 하지마, 넌 멋져.  

지금도.


그런데 한 두달 혼자 일을 하다보니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지 실감이 나지를 않아서 그게 무척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생각해보니 회사를 다닐 때도 옆에 와 좋아요, 멋있어요, 이거 좋네요. 하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 물론 나도 주변에 계속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기도 했고. 그게 진짜로 잘 했던 건지 아니면 우물안에서 서로 자기위안을 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실감은 손에 쥘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제출한 이 기획이, 이 카피가 나쁘지는 않다는 실감이랄까. 어쨌든 통과는 했고, 출간은 되었으니까. 근데 혼자 사무실에 있다보니 그 실감을 느낄 수 있는 방도가 도무지 없다. 


나는 어릴적부터 불안이 많은 아이였다. 실패를 경험해본 일이 거의 없었다. 시도를 한 적이 적었기 때문이다. 무난하게 섞여서 적당히 하는 아이였다. 나는 늘 들킬까봐 무서웠다. 내가 별볼일 없는 사람인 것아 들통날까봐. 

중학교 때 까지는 대단한 척 기세를 피우고 다녔다. 뭐라도 되는 사람인 것처럼. 작은 고양이가 털을 세게 부풀리듯이, 스스로 보잘것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더 허세를 부렸던 것 같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중2병이 아니었을까 지금은 생각하지만, 사실 당시의 기억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고등학교 때는 2차 사춘기가 왔는지, 무색무취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말 공기같이,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다.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고 튀고 싶지 않았다. 그저 평범했으면 하고 나를 지우고 살기 급급했다. 그러다보니 정작 취미나 혼자 있을 때 하는 생각, 읽는 책, 듣는 음악은 점점 매니악해져갔고, 그와 반대로 어디서든 '보통'을 연기하는 포커페이스를 얻게 되었다. 사실 이 시절도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도 나는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아무도 나를 보지 못했으면, 하는 생각이 강했다. 

대학 시절부터는 스스로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지만, 불안은 계속됐다. 내가 하는 말에 누가 꺄르르 웃거나 '넌 정말 재밌어'라고 말하면 '아, 나 재미없는 사람인 거 들키면 어떡하지?' 하고 생각했다. '와 너는 정말 글을 잘 쓰는구나?' 하는 말을 들으면 '큰일이야 글 못쓰는 거 들키면 어떡하지?' 하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쓸데없는 고민이라는 생각이 들고 낮은 자존감과 허세가 합쳐지면 저렇게 되는구나 싶지만, 그 시절의 나를 욕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나도 여전히 비슷한 불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칭찬을 칭찬으로 받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칭찬을 받으면 '저 사람은 도대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칭찬을 하지?' 하고 삐뚤어진 생각을 했다. 나를 알게 되면 칭찬하지 않겠지, 나를 알게 되면 어떡하지? 들키면 어떡하지? 어떡하지? 이런 불안에 그나마 휘둘리지 않게 된 것을 나는 과장을 달았던 해, 33살이 되던 해로 잡는다. 아마 직급이 주는 안정감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나이가 들면서 덤덤해졌다는 생각도 든다. 불안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전처럼 심하게 흔들리지는 않게 되었다. 

이런 불안을 평생 안고 살았던 사람이다보니 잘하고 있다는 실감을 계속해서 느끼지 않으면 자아가 금방 무너져버린다(회복도 그만큼 빠르긴 하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그 실감을 주는 주변인들이 꽤 많이 있어서 '난 왜 이럴까' 내뱉는 순간부터 '또 시작이군' 하는 마음으로 나를 우쭈쭈 어르고 달래준다. 그래도  해결이 안되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일적인 부분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니까 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 하는 나쁜 마음이, 또. 


요즘은 불안의 모양이 조금 달라졌는데, '들키면 어떡하지' + '못하면 어떡하지'이다. 아무래도 외주로 일을 받아 일하고 있다보니까 클라이언트 마음에 들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는 것 같다. 작업물을 보내놓고 연락이 없으면,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러나? 내가 한 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나?' 하고 주눅이 든다. 엄마는 그런 건 그쪽 사정이고 그거까지 니가 생각할 게 아니라고 말하시는데, 사실 맞는 말 같어. 내가 신경쓸 일이 아니다. 의뢰를 받고, 일을 했고, 돈을 받으면 그만이다. 그래도...

잘하고 있다는 실감이 너무 절실하다. 프리랜서에게 잘했다, 좋다, 라는 말을 사람들이 잘 하지 않는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그냥 별로네요, 수정해주세요 하지 않으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려고 노력 중이긴 한데, 그래도 나는 잘한다는 말이 너무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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