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경험하는 가족의 모습과는 매우 다른 형태의 가족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우리가 태어났을 무렵, 그 것도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이민자로서 삶을 말 그대로 개척해나가야 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인데, 사실 우리와는 접점이 거의 없다. 가족의 이야기긴 하지만, 공감의 영역에 들어오지 않더라. 그런 동떨어진 감정 속에서, 영화 중반을 넘어가면서까지도 이 영화가 뭐가 대단한 영화인건지, 윤여정의 연기가 왜 뛰어난 건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런 생각들이 이어질 때 쯤, 영화를 10분 정도 남긴 시점에서부터, 왜인지 모를 울컥함과, 가슴저릿함이 이 영화의 여운을 두고두고 간직하게 만들었다. 바로 그 때, 영화 중간 중간 스쳐갔었던 씬들과 그 때 흐르던 음악들이 가슴에 박히게 된다. 참 신기한 영화다.
우리 가족 또한, 작년부터 올 해까지 참 많은 일들을 겪었다. 무너질 것 같은 위태로움 속에서도 기어이 버티어내는 수 밖에는 답이 없었다. 남들은 쉽게 사는 것 같은데, 우리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이렇게도 없을까. 그런 삶들을 관통하면서, 오랜 세월 내 삶을 지배해왔던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모토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원래 삶이란 건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었고, 나쁜 일이 있으면 또 좋은 일들이 생겼었는데, 가만 보니 그게 아니더라. 나쁜 일만 주구장창 계속 일어날수도 있더라. 삶이란건, 통제가 가능한 영역이 아니었다. 좋은 일이 있거나, 나쁜 일이 있는 건, 모두 다 내 통제 바깥의 일들이었던 거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모토는 그런 불가능한 영역을 '가능'의 영역으로 끌어당기는 교만함, 또는 어리석음에 가까웠다. 그래서 난 그 뒤로는 '새옹지마'라는 말 따위 하지 않는다. 삶은 언제나 불확실하고, 통제할 수 없다.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저, 몸을 맡길 뿐이었다.
그런 생각들로 알게 된 삶의 엄혹한 불확실성을 온 몸으로 체감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라스트씬이었다. 굳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아도, 이 영화를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그 막막한 불확실성과 두려움을 자연스럽게 체감할 수 있다. 그리고 결국 그 속에서 서로를 지탱해내는건 서로 밖에 없다는 사실을 마음 속 깊이 느끼게 해준다. 그 속에서 윤여정의 연기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이 영화에 대한 가치도, 윤여정이 왜 아카데미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인지도, 모두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결국, 가족을 구원하는 건 가족밖에 없다. 이 심플한 명제를 우리에게 이해시키는 건 이 영화가 가진 최고의 덕목이다. 어떤 혼돈 속에 있더라도, 우리는 우리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서로가 되어야 함을 우린 이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다.
문득 내맘대로 되는 일이 없다고 느껴질 때, 막막함에 절망할 때, 종종 이 영화가 생각날 것 같다. 그런 순간, 이 영화를 꺼내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것 같은, 그런 잔잔한 여운이 계속 남는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