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카이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백 Oct 22. 2016

동네도서관의 근사한 진화

1. 연남동, 카페꼼마 2페이지



어렸을 때는 도서관에 자주 갔었다. 냉정하게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는 책읽기를 좋아했다기 보다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좋아했던 것 같다. 넓고, 조용하고, 정돈된, 무엇보다 책이 보물이라도 되는 듯 소중하게 다루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 도서관에 있다보면 무언가가 읽고 싶어졌다. 서가의 수많은 책들중에 한 권을 골라 어른들 틈에 앉아 읽곤했다.


살다보면 가끔 책을 읽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때가 있다. '책'을 읽고 싶은 것인지 아무거라도 '읽고'싶은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쨋든 나는 오랜만에 부모님 집 근처 동네 도서관을 찾았다. 아파트 단지가 생기며 새로 지어진 도서관이었다. 실내는 깔끔했지만 환기가 잘 되지 않는 듯 공기가 무거웠고, 책은 많았지만 눈에 들어오는 책이 없었다. 잡지를 조금 들춰보다 실내가 답답하게 느껴져 두세권의 책을 빌려 가지고 나왔다. 책을 읽겠다고 부풀었던 마음은 쪼그라들었다.





읽기 좋은 공간, 읽고 싶어지는 공간

카페꼼마는 책 읽기 좋은 공간이며 읽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읽을 책을 발견하기도 하고 읽고 싶은 책을 샀을때 찾기도 한다.


공간에서 느껴지는 첫 인상은 넓고, 밝고, 책이 많다는 것 이었다. 4면 중 3면에 큰 유리창이 나 있어서 아침에는 기분좋은 빛이 실내에 가득하다. 본관 창가쪽에는 계단마다 층고를 달리 자리잡은 테이블이 있다. 앉는 곳마다 뷰(view)가 달라져 흥미롭다. 관련 인터뷰를 찾아보니 카페꼼마는 유럽의 노천카페를 모티브로 디자인 된 공간이라고 하던데 여름철 유리창을 열어놓을때면 정말 그런 기분이 든다.


 

흥미롭고 균형잡힌 신간소개

책장이 예쁜 인테리어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에게 책을 소개하는 채널이 되려면 큐레이션, 특히 신간에 대한 소개가 중요할 것이다. 카페꼼마의 신간 큐레이션은 장르별로 편중되지 않게 잘 관리되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신간 코너를 둘러보았을 때면 언제나 읽어보고 싶은 책을 한 권 이상 발견할 수 있었다.


본관에는 문학작품과 에세이 분야의 책이 있고 별관을 지나 회랑 올라가는 길에 사회과학, 만화 등 분야별로 책들이 정리되어 있다. 본관의 책장이 높아 사다리가 비치되어 있지만 아직까지 사람들의 시선을 등에 느끼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만큼의 용기를 내본적은 없다.



"유리잔에 준비해드려도 괜찮을까요?"

카페꼼마에서 음료를 주문하면 "음료를 일회용컵과 머그잔 중 어디에 드릴까요?" 가 아니라 "음료를 유리컵에 준비해드려도 괜찮을까요?" 라고 물어보는데 한마디에서 불필요한 일회용컵 사용을 최소화 하려는 고민이 묻어나온다.


자주 카페를 찾다보니 이곳의 세심하게 신경쓰는 부분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 다른 카페를 갔는데 음악이 별로라거나, 유난히 소란스러워 자리를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새삼 "카페꼼마는 사려깊고 세심하게 관리되는 공간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리버드 할인

카페꼼마는 평일이나 주말 가릴 것 없이 항상 사람이 붐빈다. 오전 10시 이전이나 밤 9시 이후에는 그래도 한산해져서 책 읽기 좋다. 평일 오전에는 (AM7:40 ~ AM11:00) 모든 음료를 반값에 판매한다. 아침에 여유가 있다면 책과 함께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여름에는 벽면의 통창을 열어놓을때가 있는데 그러면 정말 유럽의 노천카페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주변을 둘러보니 창가 자리에 앉아 전공서적을 펴놓고 노트북으로 레포트를 쓰는 사람이 보인다. 홀에는 동그란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어릴 적 기억을 다시 돌이켜보면 도서관에 있는 모든 사람이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험공부를 하러 온 학생, 자판기 앞 벤치에서 종이컵을 차며 노는데 열중인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저마다의 목적으로 도서관을 찾는다. 다만 모든 활동의 배경에는 책이 있다. 사람들은 약속을 기다리다 공부를 하다 머리를 식힐 겸 잠시 책을 들춰본다. 그러다 평소 관심을 두지 않던 의외의 분야의 책에 흥미를 느끼기도 한다. 책을 배경에 두고 생활하며 생각은 깊어지고 넓어진다.


나는 약속없는 금요일 저녁 카페꼼마에 앉아 '중국행 슬로보트'에 실린 단편을 읽고 있었다. 등 뒷편의 커다란 창문이 열려 있었다. 아직은 선선한 초여름의 바람과 역 앞에서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대 섞인 소음이 창 밖에서 섞여 흘러 들어왔다. 그때의 환기감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집 근처에 이런 공간이 있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을 했고 이 곳에 살고 있다는 기쁨에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45일의 DIY, 더하기 1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