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짱 Aug 30. 2023

뉴 마더 : 새로운 엄마의 출현

prologue_어느 밀레니얼의 엄마살이


에세이 제목인데 무슨 블록버스터 영화 제목마냥 너무 거창한 거 같아서 아직도 고민되지만, 더 나은 제목을 찾지 못했다. 세상에 나 같은 엄마도 있다고 말하는 게 주 목적이니, 그냥 둔다.


나는 88년생. 그 유명한 88올림픽 베이비다. 심지어 9월생이라 올림픽이 한창이던 기간에 태어난 찐 올림픽 베이비. MZ세대 중 M, 밀레니얼을 맡고 있다.


골드미스라는 단어가 나오고, 5포 세대를 넘어 7포 세대라는 말까지 나오던 나의 20대. 나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선택을 했다. 나이 스물일곱에 결혼을 결심했던 것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늦게 결혼할 사람으로 꼽히곤 했던 나의 이른 결혼 소식에 모두가 놀랐다.


의도치 않게 첫째는 결혼 4개월만에 찾아왔다. 스물아홉, 친구들이 취업하고 해외로 휴가를 떠날 때 집에 박혀 출산과 육아를 시작했다. 서른, 아는 사람이라곤 남편 한 명뿐인 동네에 이제 막 돌이 된 아기랑 이사를 했다. 서른하나, 시어머님을 떠나보내고 둘째를 맞이했다. 서른셋, 육아와 살림이 너무 맞지 않아 우울하던 중 대학원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서른다섯(으로 어려졌지만 올해 5월까진 서른여섯이었다), 일을 그만두거나 휴직할 정도로 손이 많이 간다는 아이의 초1에 거꾸로 일을 시작해 워킹맘으로 살고 있다.


이 정도면 '아주 특별하다' 정도까진 아니어도 '아주 평범한' 엄마살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덧 결혼 10년차에 이른 지금,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제발 밋밋하고 평범하게 살기를 바랬을 정도로 힘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의외로 생각지 못한 메리트들이 있었다.


어머님의 투병을 뒷바라지하고 장례식을 치룬 서른한 살의 나는 50-60대 분들과 대화가 통하기 시작했다. 시부모님 투병을 뒷바라지하고 떠나보내드리는 것을 이미 경험하신 분들의 공감과 위로는 엄청난 힘이었다. 내 또래에서는 드문 경험이었던 만큼, 또래들의 공감과 위로보다 한 수준 더 깊었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그분들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라는 사람의 스펙트럼이 갑자기 확장된 순간이었다.


육아와 살림 모두 체질상 맞지 않아 우울함이 극에 달하던 무렵, 6살과 4살 꼬맹이들을 맡기고 할 수 있는 일은 마땅찮지만 공부는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특수대학원 성격의, 토요일 하루만 수업을 하는 학교가 있었다. 입학하고 보니 주로 40대 중후반-50대 선생님들이 계셨다. 본인 직업은 따로 있으시고, 현재의 직업에서 은퇴한 후에 시작할 제2의 직업을 준비하고자 공부를 선택한 분들이었다. 선생님들 덕분에 나는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이 확장되었다. 자녀를 성인까지 다 키운 분들의 조언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던 인생 선배의 지혜였다. 마치 인생이 아이만 키우다가 끝나버릴 것처럼 생각하던 나의 좁은 시각은, 아직 뭐든 도전하고 시도해볼 수 있는 좋은 나이라는 시각으로 바뀌었다.


내가 선택하긴 했지만 친구들보다 이른 나이에 결혼과 출산, 육아에 뛰어든 것은 괴롭고 힘든 일이었다. 스물아홉의 나는 행여 아기띠에 매달려 자고 있는 아기가 깨서 울기라도 할까봐 커피를 테이크아웃으로 주문하고, 후다닥 집으로 돌아와 아기띠를 풀고 나서야 한 모금을 겨우 들이켰다. 한창 사회생활을 하며 핫한 카페와 맛집 투어를 다니고, 해외로 휴가를 떠나며, 커리어를 착착 쌓고 있는 또래들의 SNS 사진에 왠지 나는 초라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 내 마음이 꼬였던 탓이지만, 그만큼 육아가 힘들었다고 해두자.)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늘 우울했고, 한동안 SNS도 끊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찍 결혼하고, 일찍 아이 낳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요즘 나는 의도치 않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제 아이를 출산했거나 2-3살 정도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들에게 나는 이미 아이 둘을 낳는 숙제(?)를 마치고, 대학원도 나오고, 운동도 다니고, 일도 하는 부러운 엄마다. 첫째는 올해 초1. 지금 6살인 둘째가 초등학생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30대다. 대학원에서 제2의 직업을 준비하는 선생님들을 보며, 준비가 되었고 괜찮은 사람이 있다면 결혼을 일찍 하고 아이도 빨리 낳는 것이 오히려 100세 시대에 잘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일찍 결혼해 커리어가 쌓이지 못했지만, 젊은 나이는 새로운 커리어에 도전할 때 생각보다 강력한 무기였다. 최신 유행어까지 섭렵하진 못해도, 유행의 흐름 정도는 아직까지 읽을 수 있는 30대의 말랑말랑한 두뇌는 학부 전공과 전혀 달랐던 대학원 전공을 공부할 때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지금부터 10년 커리어를 쌓는다고 쳐도 40대 중반이다. 어차피 한 가지 일로 평생 먹고 살 수 없는 시대니, 인생의 숙제를 미리 훌훌 털고 남들보다 조금 더 젊은 나이로 오래오래 다양한 것에 도전하며 사는 것이 더 이득인 것 같았다.


이렇게 조금 특이한 엄마살이를 하면서 뜻밖의 메리트를 누리는 동안, 나는 나 자신과 기존의 '엄마'라는 통념 사이에서 무척 헤맸다. 이렇게 집에서 애나 볼 줄 알았다면 나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는 사람이 없는 동네로 이사했을 때, 아픈 내가 병원 진료라도 보려면 아이가 어려도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다. 하지만 돌쟁이를 어떻게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냐고, 이기적인 엄마라는 말을 들었다. 내 이름을 잃어버리고 '누구 엄마'라고 불리는 것도 너무 슬펐다. 사회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아빠들은 자녀 유무가 취직에 큰 영향이 없는데 비해 엄마인 나는 아이가 있으면 갖고 있는 경력이나 실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둘째 계획 있어요?'라는 면접 질문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요리와 살림은 왜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늘기는 커녕 스트레스만 받는 건지. 이 밖에도 여러 부분에서 나는 과거로부터 내려와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환상과 이미지와 부딪혔고, 그 환상과 이미지 속 엄마가 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내겐 맞지 않는 옷이었다.


나는 이제 우리 사회에 '새로운 엄마'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시대가 변했고, 교육이 변했고, 문화가 변했다. 하나로 고정되어 온 이미지-희생과 헌신의 아이콘, 현모양처 같은 ‘환상 속의 엄마'가 아니라 다양한 성향과 상황과 환경에 맞춰 나만의 스타일로 삶을 개척해가는 '뉴 마더'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거창하기 그지 없는 '뉴 마더 : 새로운 엄마의 출현'을 제목으로 삼은 이유다.


어쩌면 내 이야기를 읽으며 혀를 끌끌 찰 수도 있다. 나도 안다. 나는 그렇게 모범적인 아내나 엄마는 아니다. 상냥하고 다정한 아내와 엄마도 못 되고, 건강한 요리를 해주거나 집을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유지하는 아내와 엄마는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이상적인 이미지와 환상 속의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던 시절의 나보다, 조금은 다른 엄마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 훨씬 좋고 행복하다.


그래서 쓴다. 혹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있다면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아내와 엄마로 산다는 것은 과거처럼 아이나 가족에게 나를 쏟아부어 모든 것을 내주는 것이라기보다, 끊임없이 연단되는 삶을 통해 결국은 '좋은 나 자신'으로 만들어지는 특별한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어서. 그러니 다들 자기만의 스타일인 “뉴 마더”가 되어 자신에게 주어진 아내, 엄마로서의 삶을 개척하며 멋지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난중일기[낳-은중일기] (2018.2.1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