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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짱 Jul 18. 2016

난중일기[낳-은중일기] 2016.7.18

TV 말고 너

난중일기[낳-은중일기]는 지금 막 6개월이 된 딸 단풍이를 키우고 있는 저의 육아일기입니다. 이순신 장군님의 난중일기를 업신여기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으며, 매일 작은 일들까지도 일기로 적어가며 치열하게 살았던 장군님처럼 전쟁 같지만 행복하고 소중한 지금의 시간들을 매일 적어보자는 생각에서 지은 제목입니다. 육아일기에 관심이 없으시다면 조용히 지나가셔도 좋습니다. :-)




160718. TV 말고 너

행복한 엄마가 되겠다고, 글을 꾸준히 쓰는 게 목표라며 시작했는데 두 번째 글이 10일만이다. 매일까진 아니더라도(최종 목표는 매일 쓰는 것이지만), 최소 3일에 1번씩은 쓰려고 했는데 이렇게 된 이유가 있다. 지난번 글에는 단풍이 때문에 포기한 것이 많고, 그게 가슴 아프다고 썼는데 사실 내가 포기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TV였다. TV 때문에 글을 못 썼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이유다.


사실 나는 TV를 열렬히 사모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틀어져있으면 보고, 꼭 안 봐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출산 이후 나는 늘 TV와 함께였다. 어차피 단풍이를 보느라 내용의 반은 뭔지도 모르고 넘어가기가 일쑤인데도 TV를 틀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혼자 집에서 단풍이를 볼 때 찾아오는 고요함과 적막함 그리고 외로움이 싫었던 것뿐이다. 단풍이가 입원해 있었을 때 만난 한 엄마도 그렇게 말했다. "왠지 TV가 안 켜져 있으면 불안해. 이렇게라도 사람 소리를 들어야 뭔가 안심이 되더라고." 나는 그 얘기에 백 번 공감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는 단순히 사람 소리를 듣기 위해 TV를 켜는 수준을 넘어 TV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단풍이에게 장난감을 던져주고 재밌는 프로에 집중했다. 보고 싶던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보고 있는 중간에 단풍이가 잠에서 깨면 다시 재우고 싶었다. 대부분은 아쉬워하면서 단풍이에게로 눈을 돌렸지만, 잠깐이라도 틈이 나면 내 시선은 어김없이 TV에 가 있었다. 특히 수유할 때만큼 단풍이의 방해(?) 없이 TV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뽀로로와 타요의 위대함과 이들을 연속방송해주는 EBS U 채널에게 감사했다. 보통 아침에 집안일이 많은데, 뽀로로와 타요는 매트에서 일어서기만 해도 세상이 끝난 것처럼 울어대는 단풍이를 석상처럼 붙들어두는 마법이었다. 아직 너무 어려서 내용은 안 보고 오프닝송과 엔딩송이 나올 때만 초집중하지만, 나는 그 시간을 이용해 설거지와 빨래, 청소를 했다.

처음엔 애들 보는 만화영화 주제가가 외우기도 힘들게 왜 2절까지 있고 이리도 긴지 불평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엄마를 위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진짜 땡큐다. 게다가 시간대도 어린이집 등원 직전 시간이라니... 이건 정말 엄마들을 위한 편성이라고 개인적으로 확신한다.


그렇게 단풍이에게 뽀로로와 타요를 보여주면서 집안일이 일찍 마쳐졌을 땐 나도 앉아서 같이 봤다. 난 29살인데 뽀로로와 타요는 내용이 아주 좋다. 단풍이는 관심도 없는데 나 혼자 감동받은 적이 솔직히 꽤 많다.


그렇게 TV에 빠져살고 의존하다보니 저절로 생산적인 일들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글을 쓰는 건 보통 단풍이를 재운 밤에야 가능한데, 난 그 시간에 단풍이를 보느라 놓쳤던 TV 프로그램들을 봤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전에는 단풍이를 재운 뒤에 주로 책을 봤는데, 지금은 언제 마지막으로 읽었는지 가물가물하다. 해야 할 일은 매일 늘어났고, 그 목록을 꼼꼼히 적어두었지만 실행되지 않은 채로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당연히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나도 다 알고 있었다. 내가 TV를 보느라 단풍이에게 소홀해지는 것, 할 일을 다 마치지 못하는 것, 생산적인 일들을 외면해서 하루가 보람도 없고 오히려 스트레스만 쌓이는 것, 단풍이에게 TV가 유해하다는 것. 하지만 좀처럼 끊을 수가 없었다. TV 없이 생활하고 육아하는 데에 자신이 없었다. 그만큼 너무 편하고 좋았다.


그래서 나는 늘 합리화를 했다. 육아가 너무 힘드니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난 버틸 수 없다고. 엄마는 내가 티비 광고를 너무 좋아해서 광고들만 녹화해서 틀어줬는데도 잘만 컸다고 했으니 단풍이도 그럴 거라고. 이게 뭐 그렇게 큰 잘못인가? 매트에서 일어서기만 해도 우는 애를 그럼 어떻게 키워?


그러다 어젯밤 내린 결론.


큰 잘못 맞다. 끙.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랬다. 나는 단풍이보다 TV를 더 사랑하고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TV가 중한 게 아니었다. "나 자신"이 중요했던 거였다. 그게 큰 잘못이었다.


육아가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나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난번 글에 썼던 것처럼 겉으로 보기엔 단풍이를 위해 많은 걸 포기했었지만 육아만큼 내가 이기적이고 고집불통인 분야는 없었다. 그리고 TV에 의존하는 것만큼 "나"만 생각한 것도 없었다.


게다가 곰곰히 돌이켜보니 그건 나를 위한 길도 아니었다. 그 길은 행복한 엄마도, 행복한 나 자신도 될 수 없었다. TV를 끄고 단풍이에게 집중하고, 글을 쓰거나 책을 보면서 하루의 보람을 찾는 편이 훨씬 나를 위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TV 없이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지금 자고 있는 단풍이 옆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 하루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근사하고 훌륭했다.


나는 단풍이와 함께 정말 많이 웃었고, 할 일 목록의 3분의 2를 마쳤으며, 이유식을 만들고 빨래를 하면서 설거지를 밀리지 않고 다 끝냈다. (물론 아기띠를 한 상태로 한 게 절반 이상이지만 그래도 뽀로로와 타요 없이 해냈다!) TV 소리가 없어 허전한 집안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해 틀어놓은 노래가 채웠다. 좋아하는 노래들이라 따라부르기만 해도 기분전환이 되었다. 참, 단풍이와 함께 바깥 공기도 쐬었다. 오랜만에 카페를 찾아 좋아하는 커피도 테이크아웃해서 마셨다. 그리고 글도 쓰고 있다.

그 어떤 날보다 스트레스는 다운이고, 꽉 차고 알찬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에 보람은 업이다. 이제서야 진작 이렇게 할 걸, 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나"를 사랑하는 거고, 진짜 "단풍이"를 사랑하는 거다.


오늘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수유 시간이었다. 엄마의 시선을 따라 분유를 먹을 때 TV를 보던 단풍이가 나를 보면서 입을 오물거리는데, 이건 아무리 재밌고 감동적인 TV 프로그램과도 바꿀 수 없는 장면이었다. 신이 나서 말도 걸고 단풍이가 평소 좋아하는 소리도 내주었더니 먹다 말고 씨익 웃는다. 아, 이게 진짜지.


더 좋았던 건 이 글의 커버 사진이다. 오늘 단풍이는 내 손을 꼭 잡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기들이 엄마를 좋아하는 건 아주 당연한 거지만, 오늘 왠지 단풍이와 더 친해진 느낌. 그리고 나만큼이나 단풍이도 즐겁고 행복했을 것 같은 느낌. 더불어 이 순간이 나도 더없이 행복하다는, 오늘의 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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