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육성 시뮬레이션 기록 003
지난주 '한 주의 기록 정리하기 1'에서 노트에 기록한 일과를 데이터화 하는 작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 글에서는 그렇게 정리한 데이터를 가지고 원래 기록의 목표인 '나의 행동을 관찰'하는 작업을 어떻게 진행하는지 정리해보려고 한다.
내가 주로 기록을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나의 행동을 관찰하는 주기는 일주일이다. 하지만 일주일을 모아 정리를 하다 보면 시간만 보고 내가 그 시간에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바로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참고하기 좋은 것이 매일 작성한 일과 정리다. 사실 일과 정리의 목적은 하루의 성과를 기록하고(그날 한 일을 기록하는 것이지만, 매일 작지만 의미 있는 일을 했음을 상기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것을 모두 작은 성취로 생각한다.), 생활 패턴이 무너지지 않는지 확인하며 나를 다 잡기 위함이다. 여기에 더해 그 날을 정리하며 드는 생각을 함께 기록한다.
일과 정리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하루를 정리하는 부분과 다음날 할 일이나 일정을 짧게 정리해놓는 부분이다. 하루를 정리하는 부분은 '1) 업무, 2) 취미, 3) 하루를 마무리하며 드는 생각'으로 나눠서 정리하고, 업무와 취미는 각각에 할애한 시간을 분/시간 단위로 기록하고, 무엇을 했는지 간략하게 기록한다. 다음날 할 일이나 일정은 '내일 할 일'과 '내일의 취미', '내일의 약속'으로 나누어 중요한(혹은 해야 하는) 순서대로 기록해두고, 다음날 일어나서 일과를 시작할 때 다시 한번 훑어본다.
물론 가능하면 늘 이런 식으로 정리하려고 하지만, 일과가 밀려 늦게 잠자리에 들거나, 하루의 생활 패턴이 무너지면 이런 정리 없이 하루가 마무리되기도 한다. 이전의 기록을 훑어보며 그런 날이 자주 있으면 하루쯤 시간을 비우고 무엇이 문제인지 확인하기도 한다.
내 기록의 핵심은 결국 주간 정리다. 나의 주간 정리 방법은 우선 노트의 기록을 스프레드로 옮긴 뒤 그것을 통계 내고, A4 2~3 페이지 분량의 짧은 문서를 작성하여 완성한다. 기록을 스프레드시트로 옮기는 부분은 이전 글에서 자세히 정리했으니 바로 통계 내고, A4 2~3페이지 분량으로 정리하는 부분으로 넘어가 보자.
먼저 기록을 모은 스프레드시트에서 피벗테이블 기능을 이용해 한 주의 기록을 카테고리별로 모은다. 나는 주로 일요일에 주간 정리를 하기 때문에 이전 주 일요일부터 그 주의 토요일까지를 묶어서 한 주로 통계 낸다. 여기서 카테고리를 3단계까지 만들어둔 것이 효용을 발휘하는데, 소분류까지 적용한 카테고리 별 시간을 확인하고, 이를 큰 분류에 따라 합산한 뒤 일주일에 기록된 총시간으로 나눠서 비율을 계산한다. 기록을 하다 보면 하루하루를 꼼꼼히 기록하는 게 쉽지 않고, 가끔 일과나 휴식 등으로 퉁쳐서 1~20 시간이 기록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는 주간 정리에서 해당 부분을 적당한 카테고리로 나눠서 비율 계산에 반영하기도 한다.(일과에서 6시간을 차감한 뒤, 수면에 6시간을 넣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하루는 24시간이고 일주일은 7일이라 한 주는 168시간인데, 수면 시간이 언제 기록되느냐에 따라 전체 시간이 조금씩 바뀐다. (위 예시에서는 163시간 21분이 기록된 시간이다)
이렇게 비율을 확인한 것을 파이 차트로 그려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해 놓고 워드 작성으로 넘어간다.
주간 정리 문서는 파이 차트를 통한 비율과 실제 사용한 시간을 기준으로 각 분야별로 일주일간 한 일을 기록하고, 이에 대한 생각을 간단히 정리하는 식으로 작성한다.
우선 업무와 취미를 위해 사용한 시간과 해당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기록하고, 수면, 식사, 일과, 정리, 휴식, 외출, 계획 등을 기타로 묶어서 순서대로 작성한다. 이 양식은 처음 주간 정리를 할 때 대충 정한 것인데,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순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보면 나는 업무와 취미에 사용하는 시간이 적절한지, 그때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한 관심이 가장 크고, 충분한 수면을 취했는지, 식사 시간은 적당히 확보하였는지 (끼니를 열심히 챙기는 편이 아니라 신경 쓴다) 등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다. 순서상으로는 뒤로 밀려있지만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 일과나 주간 정리, 차주 계획에 적당한 시간을 쏟는 것도 역시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작성한 주간 정리 문서는 프린트해서 바인더에 순서대로 꽂아 두는데, 처음부터 바인딩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10주 이상의 기록이 쌓이니 파이 차트만 훑어도 시간을 어떻게 쏟았는지의 흐름이 보여 지금은 매우 만족하고 있다.
정리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월간 기록도 확인하고 싶어 졌다. 그래서 주간 정리의 포맷을 그대로 빌려와 월간 정리를 추가하였다. 월간 정리도 스프레드시트에서 피벗테이블을 활용해 월간 시간을 모두 합산하고, 파이 차트를 만드는 과정부터 시작한다. (한 화면에 담기지 않아서 스프레드시트 캡처는 생략한다) 기본적으로는 기록을 바탕으로 데이터를 만들지만, 주간 정리 시트를 확인하며 제대로 기록되지 않아 시간 기록을 사후 조정한 항목이 있는지 확인하여 월간 정리에도 같이 반영한다.
스프레드시트에서 정리가 끝나면 월간 정리 문서를 작성한 뒤 출력하여 바인딩한다.
주간 정리와 기본적인 형식은 같지만 모든 부분을 작성한 후 마지막에 젤 앞으로 돌아가 그 달에 대한 총평을 추가한다. 해당 월을 돌아보는 의미가 있으며 동시에 다음에 정리 문서를 펼쳤을 때, 한눈에 해당 월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시간이 많이 지난 상황에서 그저 시간 기록만으로는 당시의 시간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되었는지, 혹은 어떤 감정 상태, 어떤 흐름에서 한 달을 보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을 것 같아 이를 방지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1월에는 당장 해야 하는 정산 등의 업무가 있어 업무 시간이 꽤 많았고, 취미 시간도 적당히 확보했음에 반해, 2월에는 설 연휴를 핑계로 늘어진 날이 많아 업무에 할애한 시간이 확 줄어들었음이 파이 차트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3월은 마지막 주에 토일 양일간 유기견 봉사에 참석하느라 정리를 마무리하지 못했다ㅠㅠ)
월간 정리를 하며 파이 차트를 그리다 보니 시간 배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는 자연스레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고 이를 지키는 방법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즉, 수면 시간을 33% 이상으로 만들고 싶다던가 업무 시간을 25% 이상으로 만들고 싶다는 등의 목표가 생기기도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매일 혹은 매주 몇 시간이나 확보해야 하는지,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목표인지 등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이만큼의 정리로도 나를 관찰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예전에는 어렴풋이 하던 생각을 직접 확인하기도 하고, 지지부진하다고 느끼는 일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는지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많다. 시간을 큰 덩어리로 볼 수는 있지만, 작은 단위의 일에 얼마나 시간을 사용하는지 자세히 확인하기 어렵고, 특히 가장 확인하고 싶은 시간 사용의 패턴을 명확히 보기 어렵다.
내 생각에 나는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꽤 오랫동안 뭉개고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 마음이 준비되어야 행동이 시작되는 건데, 내가 가장 확인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 '마음이 준비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이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이런 목표를 위해서는 시간의 사용을 좀 더 잘게 나눠서 확인하고 그 흐름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프로그래밍에 투자하는 시간을 늘려나갈 계획이라, 손이나 엑셀만으로 하기 어려운 과정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많이 고민해볼 예정이다.
일과를 기록하고 정리하다 보니 나를 두고 여러 가지를 실험을 하고 싶어 졌다. 본격적인 셀프 육성 시뮬레이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인데, 그 시작에는 계획이 있다. 계획은 기록을 바탕으로 나를 위한 테스크를 설계하는 일이자, 그것의 수행 과정 속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행위의 출발점이다. 자연스레 기록과 정리는 계획으로 이어졌고, 계획을 세우고, 실패하는 과정에서 계획 세우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다음 글에서는 계획에 대한 나의 시도와 실패의 과정, 그 과정 속에서 느낀 것과 현재 내가 만들어가고 있는 방법론에 대해 한 번 정리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