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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군 May 03. 2019

하루를 무너뜨리는 것들

셀프 육성 시뮬레이션 기록 007

최근 머릿속이 복잡해 하루 일과가 쉽게 그리고 자주 무너지고 있다. 4개월 이상 지속하던 일찍 일어나는 패턴도 지난주엔 퍽 자주 무너졌다. 아침 8시에 자리에 앉는 것도, 저녁 10시에 잠자리에 드는 것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웹서핑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하루를 충실히 보내지 않았음에도 너무 쉽게 야구를 시청하거나, 유튜브 영상에 빠져 버린다는 점이다. 이 글도 어제 발행했어야 하는 것인데, 어영부영하다가 하루를 넘겨버렸다. 이렇듯 최근 나의 일상이 너무 쉽게 무너지고 있다.


일상은 어김없이 무너진다.


사실 생각해보면 하루가 무너지는 것은 꽤 자주 있었던 일이다. 다만 그것이 일주일, 한 달에 걸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최근의 흐름은 하루 이틀에서 끊기지 않고, 일주일 이상 생활에 지장을 주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도대체 왜 이렇게 일상이 쉽게 무너지는지 생각해보고, 어떤 점을 경계해야 할지 정리해보려 한다.


기분 문제


다른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분 문제다. 마음이 착 가라앉거나, 머릿속이 복잡하면 자연스레 눈앞의 일에 집중할 수 없고, 시간을 흘려보내게 된다. 나의 경우 외부에서 시킨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할 일을 찾고, 해당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진행해야 하다 보니 마음이 잡히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고, 그에 따른 여파가 일과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친구에게 여러 가지 생활 패턴을 시도했던 경험을 얘기하다가 새로운 계획이 보통 3주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듣던 친구는 '마음의 상태'가 계획에 반영되어 있는지 물어보더니, 자신의 경우엔 마음의 상태가 일과나 계획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의 감정 상태를 계획에 반영하고 싶었지만 사실 아직도 그 방법을 찾지 못했다. 다만 그 대화 후 기록을 이어가면서 감정 상태가 일과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여러 방식으로 확인할 뿐이다.


가끔 다시 읽기 위해 저장해둔 글 중에 7가지 '쌉숭' 테크닉이란 글이 있다. 이 글은 권태에 빠졌다 다시 활기를 되찾는 글쓴이만의 방법을 소개한다. 기분을 다스리는 문제는 권태에서 빠져나오는 것에 비해 더 큰 덩어리의 이야기일 수 있다. 권태도 기분에 영향을 미치지만 불안, 분노, 슬픔 등도 역시 권태만큼 혹은 권태보다 더 지독하게 일상에 영향을 주기 때분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며 기분을 전환을 위한 나만의 방법을 구축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기분 전환 도우미'라는 글을 찾아서 프린트해 놓은 것이 있는데, 서랍 어딘가에 넣어두고 잊어버렸었다.)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나만의 기분 전환 방법이라는 게 몇 개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법은 밖에 나가 햇볕을 쬐는 것이다. 나는 굉장히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날씨가 좋으면 밖을 잠시 거니는 것만으로도 꽤 기분 전환이 된다.(보통은 날씨가 좋으면 기분이 매우 좋아지곤 한다) 이것 외에는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이 있을 수 있고, 재밌는 소설책을 읽는 방법도 있다. (예전에는 기분이 가라앉으면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꺼내어 해가 질 때까지 읽곤 했다. 기분 전환이라기보다는 더 깊이까지 기분을 끌고 내려갔다가 그 반동으로 다시 올라오는 방법이랄까?)


날이 좋으면 기분도 덩달아 상쾌해진다.


다만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는 이런 방법이 떠오르지 않거나, 이런 행위에 시간을 쏟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머뭇거리곤 한다. 종종 '마음이 바빠서'라고 표현하는데, 말 그대로 머릿속이 복잡하면 마음이 바빠서 이런 활동에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하면, 이렇게 의식적으로 기분 전환을 하지 않고 있을 때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의미 없는 곳에 쏟아붓게 되고, 이는 곧장 일과가 무너지는 결과로 나타난다.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시간을 죽이는 것이 실제로는 더 많은 비용을 초래하는 것이다.


에너지 문제


에너지 고갈은 일상이 무너지는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이다. 조금만 의지를 발휘해도 물리칠 수 있는 유혹에 유독 쉽게 넘어갈 때가 있다. 해야 할 일이 가득해 부지런히 일하다가 지쳤다는 생각이 들 때나, 밤늦게까지 작업이 이어진 다음날 매우 피곤한 상태로 눈을 떴을 때, 그럴 때면 유혹이 쉽사리 승리하곤 했다. 마음의 저항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핑계가 많았고, 그저 모른 척 눈감고 정해놓은 계획을 어겨버리곤 했다.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않았을 때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과 눈 앞의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뒤엉키는 순간, 의지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무너지곤 했다. 이런 날에는 끼니를 챙기고도 다시 원래의 흐름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았는데, 끼니를 미룰 정도로 열심히 했다는 생각이 보상 심리를 불러일으켜 이후에 발생하는 유혹에 대한 저항을 누그러뜨렸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어떤 계획을 지속적으로 끌고 나가는 것이 순수하게 에너지의 문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한 책에서 유혹에 저항하기 위해서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다는 문구를 읽고, 역시 이 모든 것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의 문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즉, 나에게 충분한 에너지가 없다면 의지의 유무와 관계없이 작은 유혹에도 쉽게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에너지의 부족으로 유혹에 넘어가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업무에 쏟을 수 있는 에너지의 적정량을 파악해 그에 맞는 계획을 세우고, 에너지가 떨어질 즈음에는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업무의 영역을 전환하거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활동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해당 활동이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것인지 에너지를 보충하는 것인지는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


에너지에 관한 문제는 해결 방법이 지극히 교과서적이고 단순하다. 다만 '에너지'를 '느낄' 순 있지만 명확하게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 상황에서 에너지를 고려대상에 넣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기록을 통해 확인한 나의 업무 에너지 총량은 집중했을 때를 기준으로 6시간 정도인데, 이것도 다음날 혹은 일주일을 대상으로 봤을 때 유효한 값인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 수치이다. 여기에 휴식을 추가로 고려하게 되면 이야기는 더 복잡해진다. 경험상 웹서핑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는 등의 행위는 휴식이라고 볼 수 없을 것 같고, 심각하지 않은 독서는 휴식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 같은데, 이 기준도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이렇듯 에너지는 인식하고 있어도 다루기가 까다로운 부분이라 하루 혹은 일주일 계획을 세우는데 이 부분을 고려해서 넣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관성의 문제


관성 또한 일상을 무너뜨리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실 관성은 다른 요인으로 인한 균열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하긴 힘들 수 있는데, 관성이 작용하는 균열이라는 게 따로 원인으로 분류하기에 사소한 경우가 많아 관성을 대신 목록에 넣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소한 선택 + 관성'이 일상을 무너뜨린다. 즉, 아침 일찍 일어나 의미 없이 폰을 붙잡는 작은 선택과 관성이 맞닿으면 쉽게 하루를 스마트폰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보내게 되는 것이다.


유혹이라고 하는 것은 감각을 자극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자극에 노출되기 전에는 상대적으로 이 유혹을 이기기 쉽지만, 자극에 한 번 노출되면 더 큰 에너지를 쏟아야 겨우 이 유혹을 물리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위의 에너지의 문제와 연결이 되는 이야기인데, 결국 유혹에 넘어가는 선택이 몇 번 반복되면, 적은 에너지로도 이겨낼 수 있었던 유혹이 어마어마한 에너지로도 이겨낼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는 얘기다. '이거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작은 허용이 결국 눈덩이처럼 불어나 일상을 무너뜨린다.


관성이 작용하는 사소한 선택 중에 상대적으로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역시 아침 일찍 하는 선택일 것이다. 하루를 시작하며 하는 작은 선택은 그날 하루 온종일 영향을 미친다.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그렇기도 하거니와 경험과 기록이 증명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침 일찍부터 웹서핑을 시작하면 그 날은 어김없이 업무보다 웹서핑에 집중하게 된다. SNS를 쳐다보는 것도 비슷한 형태로 작용한다. 쳐다보지 않으면 궁금할 것이 적어 생각이 덜 나지만 한 번이라도 들춰보게 되면 그 이후로는 꽤 빈번히 또 다른 재밌는 이야기는 없는지 뒤적이게 되는 것이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의 선택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데, 이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함으로 인한 에너지 고갈의 문제와 연결되어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관성의 문제는 사소한 선택을 할 때 에너지를 조금 쓰더라도 유혹을 이겨냄으로써 관성의 힘에 끌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 방안이다. 사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아예 유혹을 접하지 않도록 하는 것인데, 유혹에 강한 사람은 타인에 비해 의지가 더 강한 것이 아니라 주변에 유혹의 씨앗이 없도록 환경을 잘 만든다는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가 이것이다. 여기에 조금 더 생각을 얹어 보자면, 하루를 시작할 때 하는 선택과 하루를 마감할 때 하는 선택에 조금 더 신중하면 사소한 선택의 실수에서 비롯되는 관성의 문제에서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기분과 에너지의 문제가 양면적인 측면이 있다면 관성의 문제는 단면적인 측면이 있다. 기분이 좋거나 에너지가 충만하다면 해당 부분은 일과를 꾸리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관성은 언제나 무질서도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 관성의 힘을 막기 위해서는 사소해 보이는 선택을 잘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 선택이 사소한 경우엔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이 문제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정리하며


개인의 상황, 외부와의 관계 등 각자가 처한 현실에 따라 이 외에도 일상을 무너뜨리는 요인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번 글에서는 주로 나의 일상을 무너뜨렸던,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패턴, 나름의 극복 방안과 어려움이 예상되는 부분을 정리해보고자 하였다.


무너진 일상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에 따른 판단이다. 누군가에게는 충실했던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불만족스러운 하루일 수 있다. 다만, 그 기준이 자신이기에 일상이 무너졌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는 부정적인 감정이 밀려들고, 이는 타인의 위로나 응원과는 무관한 감정 상태를 만든다. 게다가, 부정적 감정이 기분 문제로 전이되면 악순환이 시작될 수도 있기에 이를 벗어나는 것은 큰 흐름에서 일상의 패턴을 유지하기 위해 꽤 중요하다.


이 글이 그간 무너진 일상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데 있어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후 다시금 일상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참고할만한 글이 되었기를 희망한다. 분명 앞으로도 번번이 계획은 실패하고 유혹은 나를 이길 텐데, 가끔은 이 글에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조금 쉽게 일상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면 이 정리는 충분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분석, 정리와 별개로 하루씩 늘어지는 일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는 여유도 덩달아 챙기면 좋겠다. 하루쯤 대충 보낸다고 그간의 노력이 사라지진 않는다.


가끔은 마음 느긋하게 먹고 하루를 흘려보낼 여유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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