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개꽃 Apr 08. 2024

당근에서 산 에어컨을 일 년 만에 다시 팔았다

작년 이맘때쯤 당근에서 중고로 에어컨을 샀다. 한국에서 여름을 나는데 선풍기 만으론 어림도 없을 거라던 주변인들의 강력한 조언이 있었다. 여름은 두 번만 보낼 건데 에어컨을 꼭 사야 하는지 고민이었지만 샀다. 55만 원짜리 중고를 5만 원 깎아 50만 원에 샀다. 재래시장에 가면 “조금만 깎아주세요” 소리가 그렇게 안 나온다. 그런데 중고 플랫폼인 당근에선 깎아 달란 그 말이 참 잘도 나온다. 시장 경제 원리에 의해서, 비슷한 물건이 여러 개 나와있는 경우, 깎아달라는 말이 조금 더 쉽게 나오기도 한다. 반면 확실히 좋은 물건에 좋은 가격일 땐 “지금 당장 제가 살게요!”라는 자세로 셀러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작년 3월 말에 50만 원 주고 샀던 에어컨은 운반 및 설치비가 30만 원이었다. 처음엔 설치비가 너무 비싼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3시간 동안 작업하시는 기사님을 보니 30만 원은 들겠구나 싶었다. 줄을 하얀 테이프로 감아 벽안으로 집어넣어 실외기가 있는 곳까지 잡아 빼야 하는 작업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캐나다 살 땐 페이스북에 있는 당근 개념의 ‘마켓 플레이스’를 주로 사용했다. 한국에 와보니 중고 플랫폼은 ‘당근’을 사용하면 되었는데, 물건들의 퀄리티와 가격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새것 같은 물건을 새 물건의 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구할 수 있다니 참 행복했다.


온 가족의 옷과 살림살이 들을 당근으로 해결했다. 티브이, 커피 테이블, 아이 책상과 의자, 쿠쿠 압력밥솥 (캐나다에선 이게 두배로 비싸다), 토스터, 등을 당근에서 샀다. 그런데 지금부터는 온 가족의 물건들을 다시 당근에 내다 팔아야 한다. 중고로 산 물품들과 새것으로 산 침대와 식탁까지도 캐나다엔 가져가지 않기로 했다.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올 땐 장거리 이삿짐센터를 통해 큰 박스 8개 정도를 배로 미리 보냈었다. 이번에도 같은 서비스를 사용할까 고민했지만, 그 사이 짐 보내는 가격이 또 많이 올랐다. 우린 그냥 비행기 타고 갈 때 들고 갈 수 있는 최대치의 짐만 남겨두고 모두 정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다시 팔아야 하는 물품 중, 첫 번째로 에어컨을 팔기로 했다. 설치비 30만 원을 들여 샀는데 다시 팔려니 아쉬웠다. 재작년 9월에 들어와 두 번의 여름을 나고, 2년을 꽉 채운 후 돌아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완벽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몇 달 일찍 돌아가는 대신, 더 열심히 한국을 돌아보는 중이니 이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50만 원에 산 에어컨을 45만 원에 올렸다. 올리지 마자 누가 말을 걸어왔다. “연식이 좀 있는 것 같은데, 30만 원은 어떠실까요? 생각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실례였다면 죄송합니다.”라고 왔다. 나는 이제 막 광고를 올렸기 때문에 아직은 30만 원에 거래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다만, 생각이 바뀌면 알려주겠다고 대답했다. 역시 당근은 좀 깎아야 제맛인가 보다.


두 번째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역시나 “연식이 있는데, 좀 비싸네요. 이전설치 견적이 58만 원 나왔는데 좀 저렴하게는 힘드실까요?”라고 왔다. 나는 작년에 30만 원에 설치해 준 기사님이 생각나 잠시 기다려보라고 내가 아는 기사님께 한번 여쭤보겠다 했다. 그런데 두 번째 사람은 내가 올린 에어컨보다 연식이 좋은 건데 30만 원에 올라온 게 있다며 수고하라는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그사이 우린 작년에 에어컨 설치해 준 기사님께 문자를 보내봤다. 요즘 이전설비 비용 시세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기사님께 답장이 왔다. 얼마 전 직장암 진단을 받고 항앙치료 중이라 당분간 일을 못하니, 당근에 단골등록을 해 놓으면 다음번에 꼭 도와드리겠다고 했다. 작년에 딱 한번 본 사람이지만, 우리 집에서 세 시간 일해주고 가신 분이여서 그런가, 모르는 사람 같지 않았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기사님 인생에 직장암이라는 투병 계획은 없었을 텐데.. 역시 인생은 우리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꼭 쾌차하시길 바란다고 정중히 답장을 드렸다.


세 번째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느 정도 dc가 가능한지 물어왔다. 우린 처음 계획했던 데로 5만 원 깎아줘서 40만 원에 팔겠다고 답했다. 이번 사람은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다. 아파트 이름을 알려주며, 연락처라 함은 전화번호 말씀하시는 거냐고 물었다. 전화번호가 맞다고 한다. 잠시 고민했지만, 알려줬다. 전화 통화를 해 보니, 전세를 주려고 하는데 계약을 하려고 하는 세입자가 에어컨 설치를 요구해서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부동산 중개인이 이 물건을 추천해 줬다면서, 별문제 없이 작동이 잘 되는지 물어왔다. 나는 올해 들어 아직 작동시켜 보진 않았지만, 문제없이 잘 썼다며 예약을 걸고 싶으면 5만 원을 먼저 보내라고 했다. 그렇게 세 번째로 대화를 나눈 사람과 중고 에어컨 거래가 성사되었다. 요즘은 에어컨 철거와 설치 비용이 얼마인지 알아내진 못했지만, 저쪽에서 보내 준 기사님이 와서 잘 철거해 갔다.


에어컨을 시작으로 앞으로 계속 당근을 열심히 하게 될 것 같다. 캐나다를 떠나올 때 한번 해봐서 이번 이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감은 있다. 너무 천천히 움직여도 막판에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에 드는 건 모두 가져가세요"라고 하게 될 수도 있고, 또 너무 빨리 처분해 버리면 이사 갈 때까지 불편하게 생활하게 될 수도 있다. 이번 장거리 이사에 목표가 있다면, 각자 소유한 물건의 리스트를 확 줄여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직 잡히지도 않은 잡 인터뷰를 생각하며 정장 구두 한 켤레를 몇 시간 전에 샀다. 아무튼, 정말 물건의 가짓수를 줄이고 줄여서 가벼운 손과 마음으로 캐나다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몰입'을 방해하는 자는 누구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