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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Apr 17. 2024

잡티, 기미를 제거하려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과연 마음을 고쳐먹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요)

해외살이 중인 (여성) 한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꼭 하고 싶은 것들 Top 5를 고르자면 이럴 것 같다.


1. 맛집 탐방

2. 건강검진

3. 미용시술 (성형, 보톡스, 필러, 기미제거 등)

4. 미용실 방문

5. 각종 쇼핑


여론조사를 거치지 않은 개인적인 상상 속 리스트이다. 여기서 난 건강검진을 받았고, 미용실 방문을 했다. 맛집 탐방까진 아니지만, 어느 지역을 여행 가면 그 동네에서 인기 있는 식당을 찾아가기도 했으니 그것도 해봤다고 할 수 있다. 각종 쇼핑은 그때그때 필요한 물건을 샀지, 한국에 왔으니깐 이건 꼭 사가야지라는 물건은 없었다. 그러니 미용시술과 각종 쇼핑을 제외한 세 가지 것들을 한 셈이다.


한국생활 마무리 몇 달을 남겨두고 남편과 나는 피부과 예약을 고민했다. 기미와 잡티, 거슬리는 점 등을 제거하고 가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4년 전 토론토에서 기미 제거 시술을 처음 받아봤다. 딱 하나 제거했고 일회성으로 시술을 받았다. 거의 200불 가까이 비용을 지불했던 것 같다. 다행히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그때 그 시술은 자발적으로 받으러 간 것이 아니었다. 한국에 사는 언니와 영상통화를 하는데 매번 "어머머! 너 입술옆에 그거 기미야? 너 그거 점점 커지는 거 같은데? 얼른 피부과 가서 제거해 더 커지기 전에!"라며 나를 재촉했다. 그러고 보니 왠지 점점 커지는 것도 같았고, 매번 통화할 때마다 지적을 하니 내 얼굴에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이젠 거울을 볼 때마다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늘 아침 남편이 영어 알바를 가기 전 피부과를 한번 알아보라는 미션을 던져주고 갔다. 한 세 군데 전화를 돌려보니 기미, 잡티 제거에 대한 욕심이 점점 사그라들게 되었다. 예전과 달리 일회성 시술은 거의 없었고, 보통 8번에서 10번의 방문 패키지로 시술을 했다. 그 비용이 140만 원에서 190만 원까지 다양했다. 우린 10번 방문할 시간도 없을뿐더러, 피부에 그 정도 돈을 지불할 의향도 없다.


동네 피부과만 해도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방문자 리뷰 글과 개수도 많았다. 30대가 되니 피부 노화가 느껴져 시술을 받았다는 글들, 40대가 되니 주름이 생겨 방치하면 안 되겠다 생각했다는 글들을 읽었다. 그 글들을 읽으면서 나도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10년 전 사진을 가끔 구글 포토가 보여줄 때면 '어머 피부 정말 좋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자연스럽게 생기고 있는 주름들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펴달라고 하고 싶진 않다.


'그럼 주름 피는 건 별로고 기미 잡티 제거는 괜찮은 건가?'라는 생각이 따라왔다. 자연스러운 노화를 인정하고 살 수 없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고,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돈과 시간을 써서 그런 것들을 제거하려고 하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역시나 돈이 없어서 시술을 못 받으니 정신승리 하는 중이라고 누군가는 말할 수 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 때문에 반박의 여지가 없기도 하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생긴 데로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살자라고 마음을 고쳐 먹어 보려 한다. 시술받는 비용이 비교적 저렴했다면 그냥 가서 가볍게 받았을 것이다. 오히려 평균 150만 원을 넘어가니 포기가 한결 쉽다. 원장님이 아무리 친절하게 내 피부를 검사하고 이 까무잡잡한 것이 기미인지 잡티인지 검버섯인지 점인지 아니면 여드름 흉터인지 진단을 내려준다고 한들 비싼 비용을 선뜻 내진 못할 것 같다.


'아.. 그래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오른쪽 광대뼈 위에 기미..그거 딱 하나만 제거하면 좋겠는데..'라는 욕심이 완전히 사그라들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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