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 놓고 산다. 3년 전 회사를 퇴사하고 나면서 바꾼 습관이다. 핸드폰을 자주 확인하니 중간에 답해야 할 메시지나 이메일 또는 놓친 중요한 전화가 있다면 오래 걸리지 않고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몇 시간 동안 확인 못할 때도 있다.)
그날 아침에 저장 안 된 번호로 온 부재중 전화 한 통과, 카톡 메시지가 있었다. 전화는 유치원에서 온 거였고, 카톡은 작년 우리 둘째와 같은 반 아이의 엄마였다. 그 아이와 우리 아이는 유난히또래에 비해 키와 덩치가 큰 편이었다. 변기통 얘기를 할 줄은 몰랐는데, 그 아인 변기통이 불편해 화장실을 참다 지금 변비에 걸렸다고 했다. 그래서 유치원에 전화를 한 모양이다.
우리 아이도 한국에 오자마자 들어간 유치원에서 마주한 유아용 변기통을 처음부터 불편해했다. 어쩌다 잘못 앉기라도 하면 소변이 바지와 속옷에 뭍을 때도 종종 있어 더 싫어하는 눈치였다. 나도 진작에 유치원에 전화 한 통 걸어볼걸 그랬다. 전화 한 통에 바로 성인용 변기통을 설치해 주겠노라 약속했다 하니 말이다.
그 뒤로 며칠이 지났는데, 아직 설치가 끝난 것 같진 않다. 그래도 아이가 그 소식을 반가워했다. 이제부턴 새로 생긴 변기만 사용할 거라고 했다. 어른들도 변기의 높이나 크기에 민감한 사람들이 있다. 또는 집에서만 편하게 볼일을 보고 밖에선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이제 유치원 마지막 학년인 아이들은 더 이상 유아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 아이와 그 친구 같은 경우엔 어느 초등학교 1학년 아이보다 커 보일 때도 많다. 그러니 유아용 변기통이 얼마나 장난감 같은 느낌이 들었을지 이해가 된다. 아이들의 불편한 점을 바로 이해하고, 곧바로 개선해 주기로 한 유치원 측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꼭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 무언가 살아있는 동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것들을 키울 때 '똥'을 빼고 키우는 방법은 없다는 걸. 개나 고양이를 키워도 똥을 치워줘야 하고, 물고기를 키워도 똥물을 갈아줘야 한다. 이제 첫째는 똥에서 자유로워졌지만, 둘째는 아직도 나에게 똥검사를 받아야 한다. 얼마만큼 쌌는지, 모양은 어떤지, 색은 어떤지... 키워본 사람만 안다. 더럽단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참 이상하다. 우리 아이는 이제 똥 많이 싸고 잘했다고 박수받는 시절도 거의 지나가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캐나다는 유치원 아이들의 변기통이 어땠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한 가지 차이점은 선생님이 아이의 용변 뒤처리를 절대 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점심시간에 다 같이 양치하는 시간도 없다. 그리고 아마 학부모 전화 한 통으로 '변기통 업그레이드'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은 낯선 곳에 가서 적응해야 했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보다 공감할 것이다. 나는 이제야 그 로마법을 좀 알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아쉽기도 하다. 둘째가 캐나다 유치원에 가서 언어로 다시 고생할 생각 하면 가슴 어딘가가 조금 뻐근해지는 기분도 든다. 2년 전처럼,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응원과 격려뿐이라는 생각을 하며 걱정보단 설렘의 느낌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아이가 새로 들어오는 어른 변기통을 사용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잘 놀면서 행복하고 건강한 아이로 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