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에 돈이 들어왔다. 4년 만에 받는 월급이었다. 월급을 받고 보니 지난 4년간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고 자제하며 살았는지 실감 났다. 돈을 벌자마자 비싼 명품을 산다거나, 안 가던 호캉스를 간다거나 하느라 새삼 다시 돈 버는 걸 실감한 게 아니었다. 월급의 위력은 매우 사소하고 가까운 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매번 가던 슈퍼에서 장을 보는데 마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자각했을 땐 아직 첫 월급도 받기 전이었다. 돈을 실제로 만져보기도 전에, 앞으로 들어올 월급이 있다는 사실은 슈퍼에서 장 보는 나의 발걸음을 둥둥 떠다니게 만들기 충분했다. ‘아.. 내가 소비 욕망을 억누르고 사느라 힘들었구나.’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4년 전 일을 그만둘 때와 지금의 마음가짐을 비교해 보면, 내가 다닐 직장이 있다는 것에 좀 더 감사한 마음이 다시 생겼다는 점인 것 같다. 아직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것도 감사하고, 이젠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그것이 내 세상 전부가 아니라는 점도 더 확실히 알게 된 것 같다. 회사와 떨어져 있는 동안 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이번에 새 직장을 구할 때, 나의 눈높이를 어느 정도에 맞춰야 할지 테스트하는 시간이 있었다. 너무 새내기 포지션은 내 지난 경력을 고려했을 때 상대 쪽에서 부담스러워하기도 했고, 일주일에 70-80시간 일해야 하는 직종은 (여기도 야근과 영혼을 갈아 넣어야 성공하는 직종들이 있다) 내가 자신이 없었다. 어느 정도의 선이 적절한지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찾아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 내가 다시 일하게 되니 (둘 다 재택이긴 하지만) 한 달 사이 아이들은 더 씩씩해진 것 같다. 아침에 일찍 일이 시작하는 나는 눈 뜨자마자 커피 한잔 내려 마시고, 아이들 도시락을 후다닥 싼 후 서재로 들어간다. (나의 재택근무 시간은 토론토 시간 9-5에 맞춘 새벽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이다.) 아이들은 알람 시간에 맞춰 7시쯤 일어난다. 스스로 양치와 옷 갈아입기를 마친 후, 남편과 함께 아침을 챙겨 먹는다. 그리고 학교 앞까지 남편이 데려다주면 둘이 손잡고 학교로 걸어 들어간다.
다시 맞벌이 부부가 된다는 건 회사를 다니기 전보다 모든 가족 간의 배려가 많이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특히 남편과 나는 부족한 잠과 예민해진 감정 상태를 인지하고 서로에게 좀 더 상냥하게 대하려 노력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새벽 5시 기상 이틀 만에 날카로워진 나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잠 부족과 새로운 일에 관한 트레이닝으로 머리에 과부하가 걸려 오는 것 같았다. 잠 부족과 스트레스가 겹치면 상대방에게 짜증이 더 쉽게 올라오기 마련이다. 우린 틈나는 대로 서로를 안아주며 등을 한번 토닥여 주는 것으로 서로를 응원했다.
다시 일하니 좋다. 두둑한 월급이 생겨서 좋고, 다시 한번 튼튼히 미래를 설계할 수 있어서 좋다. 다음번에 퇴사할 땐 몇 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그땐 처음 도전의 아쉬웠던 점을 충분히 보완한 후 실행해 보리라 결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