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 야간 아르바이트 첫날의 기억
새파랗게 어린 놈이!
PC방 아르바이트 첫날이었다. 새벽 세 시가 조금 안 된 시간에 갑자기 손님들이 시끄러워졌다. 과거에는 흡연석이었던, 지금은 흡연 부스가 조금 더 가까울 뿐인 자리에서 한 아저씨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누군가에게 훈계를 하고 있었다. 엉거주춤 일어나서 보니 한 청년이 앉은 자리에서 담배를 피운 모양이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그 청년은 이 피시방 한정 요주의 인물이었다. 화가 난 아저씨는 내게 “블랙리스트 인수인계 안 받았냐.”고 쏘아붙였고, 나는 그저 “죄송합니다, 더 신경 쓰겠습니다.”라고 웃는 낯으로 굽실거렸다. 그리고 웃는 낯 그대로 청년에게 조용히 “흡연은 흡연실에서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나는 그가 피우고 버린 담배꽁초 두어 개가 들어가 있는 종이컵을 슬쩍 치워버렸다.
카운터 자리로 돌아와 앉으니 PC방이 참 휑하다. 나는 모니터로 듬성듬성 이름이 새겨진, 고작 여덟 명의 손님이 이곳에서 어떤 역사를 써나갔는지 대충은 알 수 있다. 나에게 한 소리 했던 아저씨는 이곳에서만 400만원 어치 돈을 썼고, 그 아저씨가 “새파랗게 어린 놈이!”라며 훈계했던 그 청년은 사실 88년생으로 새파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 150만원이나 썼다. 나는 이들을 보다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손님으로 기억해두기로 했다. 이 두 명의 단골 중 누구도 이 PC방을 떠나지 않도록 둘의 충돌을 중재하는 것 역시 내 일이었다.
내가 졸음을 쫓기 위해 매운 볶음면 하나, 자판기 커피 세 잔, 코코아 한 잔을 마시고 다섯 개비 째 담배를 태우는 동안, 흡연실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손님들 각각은 나름대로 가상의 시간을 열심히 살고 있었다. 앞자리 손님은 아이템을 사고 있었다. 그 건너편에서는 사냥터의 몹이 다시 생성되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옆에는 프로토스의 한 방 병력이 이제 막 출발한 참이었다. 그리고 내 친구는 계속해서 내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날렸다. “내 자기소개서 첨삭 하고 있어?”
공채 첫 도전에서 모 대기업의 최종면접까지 갔던 친구 녀석은 차라리 서류에서부터 떨어지는 것이 나았겠다는 말을 종종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들보다 쉽게 끝날 것 같았던 친구의 구직 여정은, 임원들 얼굴을 확인하는 영광스런 자리를 마지막으로 끝나버렸고 후유증은 꽤 길었다. “취업에 도전하자마자 최종면접까지 가다니!”라고 부러워하던 사람들과 똑같은 꼴이 되기까지는 금방이었다. 그냥 주변의 또래들과 마찬가지인 처지로,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리고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이 녀석의 자기소개서를 읽고 있다. 아침 여덟시가 되면 주간 아르바이트에게 자리를 넘기고 학교를 가야한다. 학교에서 나보다 어린 친구들과 부끄럽게도 기초 과목을 재수강해야 하고, 밥을 먹고 잠시 눈 붙였다가 다시 이곳으로 올 것이다. 내일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있던가. 카운터에 앉아 늘 같은 생활의 반복을 곱씹으며 돌아보면, 다들 가상의 시간을 사는 동안 나 혼자 냉정하게 현실에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도 나는, 딱히 잘 살아낸 것이 아닌 모양이다.
아까 역정을 내던 아저씨가 흡연 부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새벽녘에 PC방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면서 내게 말을 걸고는 했다. 보통 질문의 내용은 명절에 만난 친척들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아저씨도 내게 나이를 묻고, 학교는 어디인지 묻고, 취업 준비는 하고 있는지 묻고, 알바비가 얼마인지를 물었다. “나 대학 다닐 때는 등록금 직접 벌어서 다녔어.” “대단하시네요.” “방학 때 과외 두어 개 바짝 돌리면 한 학기 등록금이 나왔다고.”
나는 아저씨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듣다가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키보드에 손을 올려 친구 녀석의 자기소개서를 다시 읽고, 고쳐주다가, 문득 아저씨에게 묻고 싶어졌다. 나는 새파란 녀석입니까. 그래도 내가, 아니 우리가 젊은 줄은 알겠는데, ‘새파랗고 푸른 나이입니까.’라고.
어느덧 새벽 네 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 되었다. 눈앞에 파란 사각형 서너 개가 들어온다. PC방 운영 프로그램에 새파랗게 표시된 이름은 비회원이거나, 후불 손님이다. 이곳에 얼마나 머무를지 정해지지도, 가늠할 수도 없는 사람들. 43번 손님처럼 게임 한 번 안 하고 누가 자신을 필요로 하나 보는 사람들. 나와 내 친구처럼, 얼마나 더 제 자리일 것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 새파란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