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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Aug 02. 2022

이별한 자의 운동 단상 (Feat. 해장 운동)

그 시간은 오롯이 내 몸에 남았다.



햇수로 6년, 그 사람을 통해 운동을 배웠고, 그 사람과 함께 몸과 체력을 만들며 바닥까지 무너져있던 나를 일으켜 세웠다. 아마 그 사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각자 제일 고된 시간에 만나, 서로를 무너지지 않도록 같이 버티던 일이 생의 전부였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 운동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랑은 끝났다. 운동만 남았다. 운동을 하는 것이 다시 무너진 나를 일으켜 세울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적어도 한 때의 내게 운동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의 다름 아닌 일이었기에. 운동을 할 때마다, 과거에 두어야 할 모든 시간들이 되살아나는 모순적인 상황에 직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운동을 한다. 새로운 센터를 찾아 등록을 하고, 같이 해 주겠다는 운동 파트너들과 작은 팀을 꾸리고, 몸 구석구석 빠지는 곳 없이 골고루 움직이고 반복한다. 근력 운동, 강도 높은 유산소, 스트레칭까지.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분노가 일면 분노가 이는 대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여전히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내가 나아지고 있는 것인지 인지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지만,  놀랄 정도로 다채로운 감정과 감정의 변화를 느끼면서도, 매일매일 운동을 한다.


어제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하면서, 너는 요즘 어떠냐는 질문,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는 질문을 수없이 들었다. '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지금의 내 상태를 설명할 방도가 없기에. '전남친 개새끼'를 연발하며 그중 몇 가지를 이야기하다가, 문득 이 조각난 이야기들로는 그 시간을 결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긴 시간 농밀하게 쌓아온 수많은 순간들, 입으로 나눈 대화들, 눈으로 손으로 몸짓으로 주고받던 많은 비언어적 대화들. 그러한데 파편적이고 불충분한 말로 쏟아낸 그 시간들의 이야기가 대관절 누구에게 도움이 되며,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아침 일찍 눈을 떴다. 헬스장으로 가 간단히 스트레칭을 한다. 그 사람과 함께 다니던 예전 헬스장 단골이 보인다. '아 저분 여기로 옮기셨구나.' 하며 또 익숙했던 과거의 공간, 기억의 언저리에 잠시 머문다. 넷플릭스를 켜고 유산소를 시작한다. 20분 정도가 지나니 땀이 뚝뚝 흐른다. 어제 마신 술의 여파가 서서히 사그라든다. 아침엔 김치 육개장과 계란 프라이를 먹어야지, 출근해서는 긴급 자재 현황을 파악하고, 출장 계획 마무리해야지, 오늘은 독후감이 아닌 내 이야기의 글을 써야지, 동네 책방에 가 맛있는 아이스 라떼를 마셔야지. 몸을 움직이고 컨디션을 올리며, 나는 과거에서 다시 현재의 나로 돌아온다. 땀을 흘리고, 몸 상태를 느끼고, 미래의 일들을 계획하기 시작한다.



내 운동의 시작이 무엇이었건, 누구와 함께였건, 6년의 지루한 반복, 매일의 성실함을 이룬 건 나다. 그러니 이제 이 운동은 오로지 내 꿈이고, 내 인생이다. 운동을 통해 기억을 자극받고, 반복되는 고통을 겪을지언정, 나는 운동을 한다. 사랑은 가고 사람은 떠났지만, 그 시간은 오롯이 내 몸에 남았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이 모든 서사의 주인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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